얼마 전 지방 취재를 나섰을 때 경험한 일이다. 시골 마을의 허름한 상가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저기 ‘컴퓨터 세탁’이라는 녹슨 간판이 달린 세탁소들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드는 생각은 ‘컴퓨터 내부를 청소해주는 기업인가’라는 생각했다. 

궁금한 마음에 세탁소 주인 분께 물어본 결과, 1980년대 유행했던 전자동 세탁기에 당시 최신 IT트렌드 용어였던 ‘컴퓨터’를 붙여 ‘전자동 세탁기를 운영하는 최신식 세탁소’라는 것을 강조했던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다소 어려워 보이는 정보통신기술(IT)용어는 일반인들에게 ‘전문가’들의 인증을 거쳤을 것이라는 신뢰감을 주곤 한다. 또한 새로운 산업 트렌드를 이끌어나갈 분야라는 기대감도 주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대유행을 타곤 한다.

이는 최근에도 마찬가지다. IT용어의 유행은 2016년 알파고에서 시작된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넘어 ‘메타버스(Metavers)’로 이어지고 있다. 현실세계와 가상세계가 융복합된 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는 이제 IT업계에서 사용되던 용어를 넘어 교육, 문화, 정치 등 사회 전반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메타버스 유행에 대해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여기저기 ‘메타버스’, 혹은 ‘메타’만 붙여 새로운 IT트렌드처럼 용어를 남발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실제로 대다수 IT기업들이 메타버스 서비스를 앞 다퉈 쏟아내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진짜 ‘혁신’인지에 대해선 확답을 하기 어렵다. 너무나 어설픈 3D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아바타와 음성채팅 서비스만 탑재한 채 ‘메타버스’라고 주장하는 서비스를 보고 있자면 차라리 고사양의 3D게임 속에서 음성채팅을 하는 것이 더 실감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 지경이다.

또한 메타버스라고 주장하는 서비스들을 보면 이미 기존에 나온 서비스들과의 차이점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VR·AR기반으로 실시간 음성채팅을 하는 것은 이미 2017년에 출시된 VR챗 서비스와 다를 것이 없다. 무엇보다 실시간으로 여러 사람이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은 ‘인터넷’이 있다. 

물론 메타버스가 새로운 IT분야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은 메타버스 분야에 대한 가능성을 엿보고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메타버스가 게임·미디어 콘텐츠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부터 금융, 스마트팩토리 등 산업 분야까지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제 메타버스는 단순한 용어의 유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진짜 IT산업 분야의 패러다임을 바꿀 트렌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 따라서 메타버스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IT업계에서는 현재 다소 부족한 기능들의 향상과 메타버스가 기존 서비스와 어떤 차별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 어디에서 응용될 수 있는지를 확실히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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