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정의당의 심상정 대통령 후보가 1호 공약으로 ‘주 4일제’를 내세웠네.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말을 직접 들어보게나. “주 4일제 공약이 이렇게 뜨거운 반응이 있을지 몰랐다. 세계 10위권 선진국으로서 내 삶도 선진국이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반영된 거다. 주 4일제는 이미 대세가 됐다. 시대정신으로 정치가 받아들여야 한다.”유력 후보들이 네거티브 공방만 주고받고 있는 선거판에서 꽤 진취적인 공약 아닌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주 40시간제’도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주 52시간제’라고 불리고 있는 마당에 시기상조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진보정당의 대통령 후보라면 당연히 제기해야할 중요한 정치적 화두라고 생각하네. 그의 말대로 주 4일제는 ‘위드 코로나 전략인 동시에,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노동격차를 줄이며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전략’이니까.

유럽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여론조사들을 보면 주 4일 노동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임을 알 수 있네. 응답자의 절대다수가 4일 노동이나 그 이하로 일하기를 원한다는 여론조사가 많아. 코로나가 한창이었던 2020년 여름에 영국에서 나온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3%가 주 4일제를 지지했고, 반대한 사람은 12%에 불과했네. 보수당 성향의 응답자도 57%가 우호적이라고 대답했어. 산업계의 지도자들도 79%가 주 4일제에 ‘상당히’ 또는 ‘대단히 열려 있다’고 응답한 조사도 있네. 그 조사에서 부정적이라 응답한 사람은 17%뿐이야.

이른바 정치 선진국들에서는 주 4일제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정치인들도 많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의 행정수반인 니컬라 스터전은 기업체가 노동자에게 임금 삭감 없이 주 4일 노동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네. 스페인 부총리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뉴질랜드 총리 저신다 아던, 핀란드 총리 산나 마린, 미국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의원 등도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한 사회조건을 창출하고 유연 노동을 강화하기 위한 주 4일제나 노동시간 단축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지. 스페인과 아이슬란드처럼 이미 주 4일제 실험을 시작한 나라들도 있고.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대중들의 반응은 어떠냐고? 아직은 긍정과 부정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 같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인간다운 삶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주 4일제는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며 “장기적인 국가과제가 되겠지만 4차 산업혁명에 맞춰 가급적 빨리 도입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일세. 반면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주 4일제의 달콤한 가면을 찢으면, 임금 삭감과 함께 기업경영 환경 열화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당연하게 예상된다”며 2030세대의 표를 얻기 위한 매표 전략으로 평가절하하고 있네.

대중들의 생각도 아직 반반인 것 같네. 임금 삭감 여부와 연령대에 따라 주 4일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10월 중순에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리서치의 조사에 의하면,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에 대해서는 찬성이 51%로 반대 41% 보다 많았지만, 임금을 삭감하면 반대가 64%로 찬성 29%보다 두 배 이상 높았네. 전체 응답자의 반대 비율이 찬성보다 더 높았던 다른 조사(한길리서치)에서는 2030세대의 찬성 비율은 반대보다 훨씬 더 높았네. 60대 이상은 반대 69.7%로 찬성 19.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고.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오랜 시간 일을 하네. 일 년이면 독일 사람들보다 대약 3개월, 지리적으로 이웃인 일본 사람들보다는 1개월 더 일하고 있어. 노인이 되는 공식적인 나이인 65세 이후에 일하는 사람들 비율도 가장 높아. 비정규직 비율도 가장 높고 산업재해도 가장 많은 나라야. 외국 사람들이 일중독자라고 비웃어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지. 그러면서도 우리는 노동자로서, 아니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아. 하지만 이제 선진국의 시민으로 제대로 살고 싶으면 많은 걸 바꿔야 하네. 그 중 하나가 일에 대한 생각이야. 대다수 국민이 노동시간을 단축할 때가 되었어.

“새는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야. 새로운 세계를 원한다면,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단지 그렇게 하는 게 편했기 때문에 따라했던 관습과 관행을 깨뜨려야 한다는 뜻이지. 우리보다 훨씬 일찍 유럽과 미국에서 주 5일제로 토요일과 일요일을 쉬었던 것도 아주 옛날부터 그랬던 것은 아닐세. 더 자유롭고 더 안락한 삶을 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싸워서 얻어낸 사회적·역사적 산물임을 잊지 말게. 주 4일제 주장이 지금은 시기상조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케인즈가 예언했던 것처럼 언젠가는(케인즈는 2030년이면 가능하다고 했다)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이면 충분할 때가 올 거라고 믿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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