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연구 결과에 의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관한 것이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22%는 사소한 사건들에 관한 것이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고작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들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곧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의 96%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것이라는 애기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는 쓸데없는 것이라는 뜻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어니 J.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 나오는 통계일세. 현대인은 누구나 근심 걱정이 많고 대개 불안하게 살고 있네. 걱정과 불안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 불완전한 인간들이 주인 행세 하면서 자연을 망가뜨렸으니 불안한 게 당연하지. 그래서 어느 나라나 불안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점점 증가하고 있네. 특히 젊은 환자들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른 나라가 많아.

하지만 젤린스키는 우리가 하는 걱정의 96%가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하네. 그에 의하면 나머지 4%도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네. 왜냐고?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일이니까. 결국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 100%가 다 쓸데없는 것이라는 결론이야.

선거철을 맞아 또래 노인들 모임에 가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네. 나름 다 애국자들이지. 자기가 반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폭망’할 거라고 열변을 토하는 사람도 많아. 그런 분들에게 일부러 묻네. “망하는 게 뭐여?”그러면 대부분 더 이상 합리적인 설명을 못하고 피하더군.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에도 노인들 중에 막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네. “이제 대한민국은 망했어. 빨갱이 대통령이라니…”그들 말대로 문대통령 임기가 다 끝나가는 지금 대한민국이 망했는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가장 선방하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라는 국제적인 평가가 많네.

나라가 망할 거라는 터무니없는 걱정은 일종의 기우(杞憂)일세. 하늘이 무너져 내려앉고 땅이 꺼져 몸 둘 곳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기(杞)나라 사람처럼 많은 노인들이 심리학에서 파국화(catastrophizing)라고 부르는 인지적 오류 상태에 빠져 있어. 재앙화라고도 부르는 파국화는 “부정적 사건이 비합리적으로 과장되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지왜곡현상”을 말하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망할 거라고 꽤 진지하게 걱정하면서도 그 이유나 과정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사람은 없어.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한 나라가 망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가?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한 나라가 망하거나 흥한다면 그 나라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걸세.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야. 우리나라도 이젠‘삼권 분립’으로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꽤 잘 이루어지고 있거든. 게다가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과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거야. 우리는 이미 촛불 집회를 통해 권력을 오용하고 남용한 대통령을 쫓아낸 역사를 갖고 있어. 나라가 망할 정도로 문제가 많으면 다시 쫓아내면 되는 걸세. 그러니 비현실적인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미리 걱정하지 말게나. 쓸데없는 짓이야.

지금까지 우리나라 노인들은 나태주 시인이 <오늘의 약속>에서 말한“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만 많이 했네. 우리들 이야기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나라 걱정, 정치인 이야기만 했어.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제 대다수 노인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예전의 가난한 나라도 아니고,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는 허약한 나라도 아닐세. 지금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선진국 중 하나야. 그러니 이제 제발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그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만 하면서 살다 가세.

조그맣고 가벼운 우리들의 이야기가 뭐냐고? <오늘의 약속> 전문일세. 천천히 읽어보게나. “덩치 큰 이야기, 무거운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조그만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아침에 일어나 낯선 새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든지/ 길을 가다 담장 너머 아이들 떠들며 노는 소리가 들려 잠시 발을 멈췄다든지/ 매미 소리가 하늘 속으로 강물을 만들며 흘러가는 것을 문득 느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남의 이야기, 세상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이야기, 서로의 이야기만 하기로 해요/ 지나간 밤 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든지/ 하루 종일 보고픈 마음이 떠나지 않아 가슴이 뻐근했다든지/ 모처럼 개인 밤하늘 사이로 별 하나 찾아내어 숨겨놓은 소원을 빌었다든지/ 그런 이야기들만 하기로 해요// 실은 우리들 이야기만 하기에도 시간이 많지 않은 걸 우리는 잘 알아요/ 그래요, 우리는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오래 헤어져 살면서도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해요/ 그게 오늘의 약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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