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의성과 기자 주진우가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로 감독에 도전했다. /(유)주기자
배우 김의성과 기자 주진우가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로 감독에 도전했다. /(유)주기자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촛불은 승리의 역사이고, 자부심이다.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었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

배우 김의성과 기자 주진우가 뜨거웠던 ‘그날’을 다시 기억한다. 2016년 10월부터 2017년 4월까지, 총 23차례에 걸쳐 이어진 비폭력 평화혁명 촛불집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촛불’을 통해서다. 

오는 2월 10일 개봉하는 ‘나의 촛불’은 진보와 보수의 인터뷰이들과 함께 촛불광장의 비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 과정, 그리고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담하면서도 생생하게 담았다.    

광장에 모인 촛불 시민들은 물론, 당시 정치권의 주역이었던 인터뷰이들이 총출동해 이목을 끈다. 전 더블루K 이사 고영태 씨부터 현재 대선후보인 윤석열, 심상정 그리고 손석희‧유시민‧추미애‧박영수‧김성태‧이혜훈‧박지원 등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다양한 인물들이 인터뷰에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번 다큐멘터리를 통해 첫 감독 데뷔에 나선 김의성과 주진우는 24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훌륭한 시민”이라며 작품의 의미를 짚었다.  

촛불집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나의 촛불’. /(유)주기자
촛불집회를 기록한 다큐멘터리 ‘나의 촛불’. /(유)주기자

-‘나의 촛불’을 기획, 제작한 계기는.
김의성 “내가 주진우에게 먼저 제안했다. 2018년 여름이었던 것 같은데, 여행지에서 라디오 시사프로에 우상호 의원이 나와 탄핵과 관련된 정치권 뒷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너무 재밌더라. 이런 비화와 증언들을 모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진우 “촛불에 대해 우상호 의원과 추미애‧심상정‧박지원 등 다른 의원들의 버전이 달랐고, 촛불을 든 시민들의 생각도 다르다는 게 흥미로웠다. 자신만의 촛불이 있다는 생각을 먼저 나누다가 영화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기자들을 만나거나 외교관을 만났을 때 촛불에 대해 굉장히 놀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는데, 과연 우리가 제대로 기록했나 생각이 들었다. 이런 내용들을 담고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했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개봉을 하게 됐는데. 
김의성 “원래 2020년 봄에 개봉할 예정이었다. 촛불 정국 이후 3년 정도 지난 시점이라 그때쯤 되새기는 게 괜찮겠다 생각해서 그렇게 정했는데, 개봉 직전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극장으로 오라고 하기 미안한 상황이라 머뭇거리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러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왔고, 선거가 끝나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텐데 그렇게 되면 전전 정부의 이야기가 되지 않나. 그러기엔 너무 오래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정부가 바뀌기 전에 공개하자고 결정했다. 시기가 이래서 마치 5년 동안 대선에 맞춰 준비한 것 같은 상황이 됐는데 그건 오해다. 5년이나 버틸 힘도 돈도 없다.(웃음)” 

-상영관을 잡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김의성 “개선되고 있는데 어려운 상황이긴 하다. 초반에는 극장 측에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것 아닌가, 민감한 소재가 아닌가 꺼려 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그래도 열심히 설득하고 영화를 보여주고 하니 어느 한 쪽 편을 드는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데 욕심에는 못 미친다. 1,500개 스크린에서 걸고 싶은 마음이다.” 

-연출과 구성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나. 
김의성 “일단은 시간순으로 하고 싶었다.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들을 여의도와 광화문이라는 공간에 대비하는 방식을 취하고 싶었다. 여의도에서는 어떤 일일 벌어졌고 그 사건들이 광화문에 나온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 광화문의 촛불에 여의도는 어떤 영향을 받고 리액션을 취했는지, 촛불집회로부터 탄핵까지의 과정을 구성해 보고 싶었다.”

주진우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결국 시민의 힘이었다. 광장의 힘이 정치를 움직이고 역사를 썼다는 부분에 대한 생각이 컸다. 국민이 얼마나 위대한가 생각도 했다. ‘사람들이 소리친다고 바뀌느냐,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말도 있었잖나. 그래도 촛불은 승리의 역사이고 기록될 만한 역사였기 때문에, 국민이 어떻게 나라를 움직였고 왜 나라의 주인인지, 그 부분에서 시작하고자 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촛불’. /(유)주기자​
촛불을 든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나의 촛불’. /(유)주기자​

-정치인부터 시민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는데, 섭외 기준과 과정이 궁금하다. 
주진우 “촛불을 든 시민이 가장 중요한 섭외 대상이었다. 그리고 촛불의 외침을 정치권에서 들었잖나. 그때 정치권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당시 중요한 위치에 있던 분들이 섭외 대상이었다. 모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다 모으고자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주변 사람들도 다양하게 모셔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많은 정치인들이 인터뷰를 하겠다고 해놓고 나중에 거절한 경우도 많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당시 촛불의 힘을 거역하지 못해 해준 것 같다. 주요 언론사들도 큰 역할을 했다. 촛불과 태블릿 PD에 대한 손석희 사장의 첫 인터뷰 영상이 담겼고, 박영수 전 특검도 촛불에 대한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에 응했다.”

김의성 “만약 지금 모으라고 했다면 굉장히 어려웠을 거다. 촬영 당시 지금보다 긴장감이 덜한 시기였고, 주진우 기자의 문어발 같은 인맥이 크게 작용했다. 시민들의 경우 주진우와 나의 개인 SNS를 통해 촛불과 관련된 기억과 사연을 받았다. 그중 특이한 경험을 갖고 계신 분들, 예를 들어 대가족이 광장에 나갔다거나 집회를 통해 사랑이 싹트거나 한 재밌는 사연을 가진 분들을 섭외해서 인터뷰했다.”  

-이제는 대선 후보가 된 정치인(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김의성 “안철수 후보는 사진으로 나왔고, 나머지 세 분은 영상으로 나오는데 그중 대선후보가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심상정 후보뿐이다. 어떻게 하다 보니 우연히 대선 계절에 대선 후보들이 모두 저희 영화에 출연한 셈이 됐다. 약이 될지 독이 될지 잘 모르겠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들이 대선 후보가 돼 있고, 인터뷰한 분들 중 두 분(고 박원순 서울시장, 고 정두언 의원)이나 세상을 떠나 계시지 않는 걸 보면서 한국의 정치가 정말 역동적이구나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구나 생각도 들었다.”  

-대선 후보들의 인터뷰 장면을 다시 본 소감도 궁금하다. 
김의성 “윤석열 후보도 마찬가지고, 2018년 연말부터 2019년에 걸쳐 인터뷰할 때 개인적으로 존경한 분들이었다. 이분들을 인터뷰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윤석열 후보가)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나서게 돼서 참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저희 영화가 그분(윤석열 후보)에게 누를 끼치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분의 정치적 행보가 우리 영화에 별로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진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어차피 다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저희 영화의 재밌는 점은 5년 전 일어난 일에 대해 3년 전에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는 점이다. 시간 차이가 주는 감정적인 거리감이 있고, 그 감정이 어느 순간 확 다가오는 아이러니가 있다. 정치에 과몰입하는 분들은 이 영화가 윤석열 후보에게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야기를 하는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윤석열 후보는 영화에서 굉장히 작은 요소다. 엑스트라다. 주인공은 광장의 촛불, 즉 시민들이다. 정치인들은 작은 역할을 맡아 배치돼 있는 것뿐이다. 그런 오해를 의도하지도 않았고, 영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나의 촛불’을 통해 촛불의 의미를 되새긴 주진우(왼쪽)과 김의성. /(유)주기자​
‘나의 촛불’을 통해 촛불의 의미를 되새긴 주진우(왼쪽)과 김의성. /(유)주기자​

-정치적으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했을 것 같은데, 객관적 중립성을 위해 어떤 고민과 노력을 했나.
김의성 “이 영화를 만들 때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의도는 아니었다. 좌우 한복판에 있는 눈으로 사건을 바라볼 것인가는 아니었다. 중립이라기보다 객관적이고 싶었다. 가능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분들을 인터뷰하려고 했다. 정치적 입장은 아니지만, 당시 촛불의 반대편에 있던 전경(전투경찰)을 통해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생동감 있게 담아보고 싶었다. 역사적 사실의 주역으로 참여한 분들의 입을 통해 촛불에 대해 생생하게 듣고 싶었지, 정치적 중립성을 갖기 위한 노력은 아니었다.”

주진우 “촛불 정국에서는 좌와 우가 없었다. 정치권에서도 한목소리를 내줬다. 탄핵도 마찬가지였다. 보수가 탄핵의 길로 접어들면서 완성된 거였다.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주변에서 끝까지 옹호하고 옆에 섰던 최측근들과도 아주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채우진 못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좌나 우, 진보나 보수, 여야가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다면. 
김의성 “정치인들이 공통적인 이야기를 했는데 인상적이었다. ‘광화문의 촛불이 여의도로 옮겨붙어 타죽을 것 같아 두려웠다’는 말이다. 결국 촛불 혁명의 주역은 광장의 시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주진우 “담지 못한 정치인들의 이야기도 많다. 영화를 몇 개는 더 만들어도 만들 수 있을 만큼 재밌다. 그럼에도 시민들의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민들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역사의 주인은 시민이구나 계속해서 생각했다. 시민 인터뷰가 끝날 때마다, 국민이 옳았구나 생각이 들었다. 국민이 주인이고 정치를 움직이는구나 확신이 들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훌륭한 시민들이다.”  

-개봉이 밀려 긴 시간을 기다리며 편집 방향이나 영화 내용이 바뀐 부분도 있나. 
김의성 “바뀐 부분은 거의 없는데, 솔직히 말하면 여러 편집본 중에 당시 성남시장인 이재명 후보가 연설하는 장면이 빠져있는 게 꽤 있었다. 그런데 대선의 계절에서 어떤 분은 나오고 어떤 분은 빠져있는 게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떻게든 넣기는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다시 하는 건 논리에 맞지 않더라. 어떤 인터뷰는 3년 전에 하고 어떤 인터뷰는 지금 하면 그것이야말로 불공평하잖나. 그래서 자료를 찾아봤는데 다행히 촛불 광장에서 명연설을 하는 장면이 있어서 기쁘게 넣었다.”  

김의성(왼쪽)과 주진우가 승리의 역사를 기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주기자​
김의성(왼쪽)과 주진우가 승리의 역사를 기억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주기자​

-‘나의 촛불’을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 
김의성 “여러 제목을 두고 생각하다가 제일 직관적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인터뷰한 분들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이 ‘촛불은 당신에게 무엇이었습니까’다. 나의 촛불은 무엇인가, 나에게 촛불은 어떤 의미였나 영화를 통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두 감독에게 촛불은 무엇이었나. 또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새롭게 추가된 의미도 있을까. 
김의성 “그 당시에는 촛불이 내겐 조금 가벼웠다. 마음은 뜨거웠을지 모르지만 몸은 가벼웠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매주 광화문에 가서 촛불 집회를 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일찍 빠져나와 맛있는 집에 가서 막걸리를 마셨다. 내게 촛불은 토요미식회였다.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들면서 다른 의미들이 많이 생겼다. 가장 큰 부분은 소위 ‘국뽕’이라고 하는 것이 차올랐다.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나. 상대적으로 상당히 고도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모여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대통령을 바꾸는 게 가능한가, 그것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유리창 한 장 깨지지 않고 말이다. 민주주의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마어마한 ‘국뽕’을 한 사발 들이킨 기분이었다.  

주진우 “촛불은 역사였다. 그리고 자부심이었다. 촛불집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갔는데, 국민들이 이렇게 세상을 바꾸기도 하는구나 생각을 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국민은 바보이거나 천재’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왜 항상 바보 같은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역사의 가장 중요한 때, 정말 아무도 생각해 내지 못한 천재적인 결정으로 벼락같이 이 나라를 살렸다. 그 생각을 촛불집회에서 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시민들 하나하나의 위대함에 놀라고 감탄했다.” 

-영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주진우 “국민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 촛불 시민, 들지 않은 시민들이 영화를 보고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구나,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었구나 기억했으면 좋겠다. 정치의 계절이라 나뉘어 싸우는데, 그것조차 이 나라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에 고민이 있어서 싸우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함성, 목소리로 아름다운 일을 만들었다는 촛불의 기억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기억하지 않으면, 쳐다보지 않으면 이런 농단이 있을 수 있구나 알았으면 좋겠다. 정치의 계절, 나라에 대해 그리고 나에 대해 ‘나의 촛불’과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국민들에게 보내는 저희들의 편지다.” 

김의성 “제작자 입장에서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겨서 돈을 조금 벌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2년 넘게 기다려준 투자자들에게 원금도 되돌려주고 고생한 스태프들에게 조금 더 보상해 주고 싶다. 우리 영화는 전체관람가다. 5년 전 너무 어려서 촛불광장에 나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부모들이 ‘이런 멋진 현장에 엄마, 아빠가 있었다’고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다. 덧붙여서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하자면, 대선 국면에서 상영을 하게 됐는데 어떤 식으로든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면 보람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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