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21 19:25
[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핵과 미사일이 김정은 체제의 솔루션이 될 수는 없다
[이영종의 ‘평양에선 지금’] 핵과 미사일이 김정은 체제의 솔루션이 될 수는 없다
  • 이영종 북한전문 저널리스트
  • 승인 2022.01.2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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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북한전문 저널리스트(북한학 박사)
이영종 북한전문 저널리스트(북한학 박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2월은 잔인한 달이 될 듯하다. 체제 내부를 둘러봐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고, 바깥으로 눈을 돌리면 더욱 갑갑한 마음일 게 분명하다는 점에서다. 지난해 12월 집권 10년차를 넘기고 주민과 엘리트들에게 새로운 10년의 비전 제시를 통해 최고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시점이지만 사정이 녹록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초 비상방역 체제에 돌입한 이후 이어진 3년차 봉쇄는 가뜩이나 어렵던 북한 경제에 주름살을 더했다. 얼마 전 북중 변경 간 열차 운행 재개를 통해 일부 물자가 반입됐지만 민생을 지탱하는 산소호흡기 역할을 해온 장마당에 활기를 불어넣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오미크론 대유행은 가뜩이나 열악한 북한의 보건·의료 실태를 감안할 때 “뚫리면 끝장”이란 위기감만 더한다.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는 좀체 느슨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 1년을 맞았지만 평양 쪽으로 제대로 된 눈길을 준 적이 없다. 문재인 정부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개라는 선언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의미 있는 진전은 없다. 그냥 이대로 남은 임기를 채우고 물러나겠다는 심산은 아닌지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는 의심이 들 수도 있다.

이런저런 불만 끝에 김정은 위원장이 뽑아든 카드는 미사일 무력시위다. 지난 1월 5일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작으로 사흘이 멀다 하고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하지만 미국은 대북제재의 장벽만 더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서울은 연일 폭증하는 코로나19 확진자 문제로 대북 문제에는 정신이 없는 듯하고, 정치권도 3월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 가장 속쓰린 일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일 수 있다. 혈맹 관계를 과시해온 중국의 잔칫상을 구경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도쿄 올림픽 불참에 따른 페널티 형태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의해 베이징 행을 금지 당했고, 결국 “코로나로부터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참석 않기로 했다”는 체면치레용 성명을 냈다.

사실, 상황만 좋게 돌아갔다면 북한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참여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북한의 참가를 통해 한반도 정세의 긍정적 변화가 기대되는 국면이라면 IOC도 북한에 예외적 조치를 취했을 공산이 크다. 적어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간판 아래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도핑 문제로 제재를 받은 러시아의 전례처럼 북한 올림픽위원회 이름으로 베이징에 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며 보이콧을 선언했고, 일부 국가가 동참하면서 상황은 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밀어부치던 종전선언 관련 사안도 불발되면서 베이징에 대한 관심도는 급락했다. 한미 간에 종전선언과 관련한 조율이 상당 부분 진전됐다는 주장을 펼쳐온 한국 정부는 북한의 베이징 동계올림픽 불참 때문에 종전선언이 어려워진 것처럼 설명한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울화통이 터질 일이다. 

4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을 떠올려 보면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2018년 1월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평창에 북한 선수단을 파견하겠다고 깜짝 발표했다. 자신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을 개막식에 보냈고, 청와대를 방문해 친서를 전달했다. 4월과 5월 판문점에서 잇달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고, 6월에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그리고 9월에는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다시 만났다. 평창의 봄이 평양의 가을로 이어졌고 풍성한 수확이 기대됐다.

하지만 이듬해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이 북한 비핵화와 대북제재 해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파국을 맞으면서 상황은 급전직하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끝내 북미 관계의 복원 없이 퇴임했고, 북한은 문재인 정부에 화풀이를 해댔다. 잘못된 중재자 역할에 대한 감정적 조치로 남북관계는 다시 겨울이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겠지만 누구를 탓할 일이 아니다. 첫째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을 너무 몰랐다. 싱가포르에서 모든 걸 다 내줄듯 하던 트럼프는 하노이에선 달랐다. 김정은과의 회담 테이블을 깨버리는 게 더 언론의 주목과 여론 지지를 받는다는 계산이 이르자 트럼프는 주저하지 않았다. 백년숙적 미국을 대좌하면서 북한의 전략은 허술하고 안이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길 일이 아니다. ’운전자‘ 혹은 ’중재자‘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워싱턴의 분위기나 전략에 대해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을 수 있다. 하지만 최종 판단과 책임은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 그 참모들에게 있다. 회담이 깨졌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니 뭐니 하는 막말을 퍼붓는 건 경우가 아니다.

셋째, 봄날은 그리 길지 않다는 걸 북한 당국과 김정은 위원장은 간과했다. 비핵화 카드를 갖고 머뭇거리는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버렸고, 문재인 정부의 중재 노력도 한계에 부닥쳤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어게인 평창‘이란 분위기가 마련되길 원했을 수 있지만 호시절이 그리 자주 오는 건 아닌 것 같다.

잇단 미사일 발사는 김정은 위원장의 울분과 좌절의 표현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발사체로 미 본토 타격을 위협하고, 핵 버튼의 크기를 트럼프와 겨루며 유치한 사이즈 입씨름을 벌인 2017년으로 회귀해선 안 된다. 30대 청년 지도자의 열혈과 충동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핵과 미사일 도발행보가 김정은 체제의 솔루션이나 탈출구가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서있어야 할 곳은 2019년의 스톡홀름이다. 그해 10월 북한과 미국은 하노이 노딜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와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 간 실무회담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었다. 비록 성과는 없었지만 2차례 정상회담의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바통을 이어받은 바이든 행정부와 그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당장은 더 인내하며 한반도의 봄날을 기다는 게 맞다. 3월 한국 대선이 치러져 5월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 보다 전향적인 대북접근이 시작될 수 있다. 그 즈음 바이든 행정부도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 할 여지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판을 깨는 불장난이 당장은 시원해 보이겠지만 시간 지나 생각해보면 십중팔구 후회막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