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 동화약품 거쳐 간 CEO 8명… ‘CEO 무덤’ 오명 씻어야
입사 5년 만에 상무 오른 윤인호, 부사장까지 4년 초고속승진

동화약품이 50억원 규모의 불법 리베이트가 적발돼 곤혹을 치르고 있다.
동화약품이 최근 정기임원인사를 발표하며 윤도준 회장의 아들인 윤인호 전무의 부사장 승진을 알렸다. / 뉴시스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동화약품 오너 4세 윤인호 전무이사(COO·최고운영책임자)가 부사장으로 승진한다. 상무로 승진한 이후 4년 만에 부사장 자리까지 오른 것이다. 윤인호 부사장의 승진을 두고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의 입김이 다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향후 대표이사의 거취에 관심이 쏠린다.

동화약품은 이전부터 많은 전문경영인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나 ‘CEO의 무덤’이라 불린다. 시작은 2008년 대표이사로 선임된 조창수 전 사장이다. 조창수 전 사장은 한 차례 임기를 마치고 연임에 성공했으나 2012년 3월, 임기를 1년 남짓 남기고 낙마했다. 조창수 전 사장 후임으로 선임된 박제화 전 사장도 2012년 3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약 1년 6개월간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자진 사퇴했다.

이어 △이숭래(2013년 10월∼2015년 9월) △오희수(2015년 9월∼2016년 3월) △손지훈(2016년 3월∼2018년 3월) △유광열(2018년 3월∼12월) △이설(2018년 12월∼2019년 3월) 등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전문경영인의 줄사퇴에 일각에서는 윤도준 동화약품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의 가족경영 구조를 버티지 못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이어진다.

이러한 지적에 2019년 윤도준 회장이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나고, 베링거인겔하임 출신 박기환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단독 대표 체제를 시행했으나, 박기환 전 대표 역시 2022년 3월까지였던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지난해 3월 중도하차 했다.

이를 두고 오너 일가의 경영 간섭이 여전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더욱 깊어졌다. 윤도준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으나, 윤도준 회장과 윤길준 부회장은 미등기 상근 임원으로 여전히 동화약품의 경영총괄을 맡고 있다. 재계에서는 오너일가 상당수가 미등기 임원으로 경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모습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어 윤도준 회장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최근 임원 승진인사 발표에서 아들인 윤인호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해석된다. 윤인호 부사장의 초고속 승진이 윤도준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의 영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동화약품이 오너 4세 윤인호 전무(사진)의 부사장 승진을 알리며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에 돌입했다. / 동화약품
동화약품이 오너 4세 윤인호 전무(사진)의 부사장 승진을 알리며 본격적인 경영권 승계 작업에 돌입했다. / 동화약품

윤인호 부사장은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2013년 8월 동화약품에 재경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2014년 4월 재경/IT실 차장, 2015년 4월 중추신경계(CNS) 1지점 부장, 같은 해 9월 전략기획실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2016년 4월에는 생활건강사업부 이사로 승진했고, 2018년 1월 일반의약품(OTC) 총괄사업부 상무로 입사 4년 4개월 만에 임원 자리까지 뛰어올랐다.

특히 2019년 3월에는 등기임원에 오르고, 4월 전무이사로 승진하며 이사회에 합류,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냈다. 이후에도 2020년 4월 최고운영책임자(COO)에 이름을 올렸고, 2년이 지난 2022년 3월 부사장 자리를 꿰찼다.

그는 지난 2020년 COO 자리에 오른 후 전면에 나서 사업을 진두지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료기기 업체 메디쎄이 인수합병(M&A) 등 일부 투자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윤인호 부사장은 앞서 2018년 비비비와 필로시스에 각각 20억원 투자를 주도한 바 있는데, 2020년 들어 모두 코로나19 진단키트 등 관련 사업을 추진한 업체로 알려지며 눈길을 끌었다. 또한 2020년 4월에는 동화약품이 그간 천식치료제로 개발을 이어오던 ‘DW2008’을 활용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두 기업에 대한 투자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DW2008를 활용한 코로나19 치료제 DW2008S 개발은 동물실험에서 유의미한 효능을 보여 동화약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임상2상 시험계획(IND)을 제출해 승인을 받고 임상 참여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임상 참여자 모집 과정에서 시간이 다소 소요돼 임상2상은 지난해 8월에야 개시됐고, 올해 4월 임상 종료를 앞두고 있다. DW2008S의 인체 임상에 대한 결과물은 아직 없는 셈이다.

이와 함께 보툴리눔톡신 사업에 진출하기 위해 2020년 4월 에스테틱 기업 제테마와 보툴리눔톡신 제제 공동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동화약품의 보툴리눔톡신 개발과 관련된 소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동화약품이 보툴리눔 톡신 사업에 제동을 걸었다고 평가한다. 현재 국내 보툴리눔 톡신 시장은 휴젤과 대웅제약, 메디톡스 3개사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휴온스와 종근당이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 가세했다. 여기에 애브비(엘러간)의 보톡스와 멀츠의 제오민 등도 굳건히 버티고 있다.

동화약품이 보툴리눔 톡신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라, 사업에 제동을 건 것은 신중을 기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코로나19 치료제와 보툴리눔 톡신 제제 관련 사업의 성과가 없는 셈이다. 특히 보툴리눔톡신 사업은 동화약품이 신사업을 모색한 끝에 척추 임플란트와 함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꼽은 분야임에도 2년이 지날 동안 결과물이 없다는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다.

/ 동화약품
동화약품이 CEO 무덤이라는 오명을 떨쳐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 동화약품

그나마 2020년 당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대폭 개선된 점이 긍정적인 대목이다. 동화약품의 지난 2018년, 2019년 실적은 2년 연속 3,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음에도 100억원 내외의 영업이익을 올리는데 그쳤다. 당기순이익도 비슷한 수준이다.

이후 윤인호 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2020년 결산 실적은 매출이 약 10% 정도 줄어 2,721억원 수준을 기록했으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232억원, 287억원 등을 기록해 수익률이 상당부분 개선된 점을 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매출이 약 7.7%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2.8% 정도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이 31.8% 감소한 이유는 기타수익 등의 감소(전년도 유형자산처분이익 및 법인세환입이 존재함)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화약품은 윤인호 부사장 승진으로 경영권 승계의 발판을 더욱 견고히 다지게 됐다. 그러나 미래먹거리를 명확히 마련하지 못한 점은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볼 수 있다. 동화약품은 125년 역사의 국내 최고(最古) 제약기업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있지만, 소화제 까스활명수와 상처치료제 후시딘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블록버스터 제품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매출 등 경영 성적표는 국내 주요 제약사들에 비해 다소 낮은 수준이다.

신사업 발굴 등을 통해 사업 영역이나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그간 동화약품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가족경영’이나 ‘CEO 무덤’과 같은 수식어를 지워내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대표이사인 유준하 부사장과 합을 잘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유준하 부사장은 대표이사 연임이 확정됐다. 유 부사장은 1989년 11월 동화약품 마케팅부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후 대표이사까지 승진한 원클럽맨 인사로 꼽힌다. 올해가 재직 33년째인 유 부사장은 누구보다 동화약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만큼 윤인호 부사장과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