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작년 1월에 큐어넌(QAnon)을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의 열렬 지지자들이 연방 의사당에 난입했던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은 음모론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지? 미국인 39%가 미국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지배하는 딥스테이트(deep state)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고, 17%는 아동 성매매를 하는 사탄 숭배 엘리트들(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지 소로스,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미국 정치와 언론을 지배하고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40%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의 한 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고 믿고,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믿는 미국인도 절반을 넘는다고 이야기했지. 그러면서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극성을 부리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정상이 아니라는 말도 했어. 음모론의 유행은 한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징후이니까.

그런데 그런 음모론 유행이 미국만의 질병이 아닌 것 같아 걱정일세. 야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가 요즘 자주 음모론적인 주장을 하고 있네. 지난 22일 충남 홍성 내포신도시에서 있었던 유세에서 윤석열 후보는 “많은 사람들이 주택의 소유자가 되면 안정적인 보수화가 된다고 해서, 많은 국민들이 집을 못 갖도록, 집값이 천장으로 올라가게 해서 국민들을 임차인이 되게 만드는 것이 이 정부의 목표이기 때문에 박원순 서울시장 때부터 재건축·재개발 전부 취소시키고 주택 공급 안 했다”고 주장했네. 정부 여당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집값을 일부러 폭등시켰다는 거야. 그는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유세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28번의 주택정책으로 계속 실패를 거듭했지만 실수를 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집 없는 사람이 민주당을 찍게 하려고 일부러 악의적으로 집값을 폭등시켰다”고 주장했어. 무주택자이고 못사는 사람이 많아야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니까 정부가 일부러 아파트값을 올리고 양극화도 방치하고 있다는 거야.

윤석열 후보는 지난 18일 대구 달성군 유세에서 민주당이 광주에 복합쇼핑몰이 생기면 민주화 투쟁력이 떨어질까 봐 못 들어오게 막았다고도 주장했네. “대형 쇼핑몰에 있는 좋은 물건들, 명품들 이런 것에 도시인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 자기들의 정치 거점 도시에 투쟁 능력, 투쟁 역량이 약화된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네. 같은 날 전북 군산에서도 “자기들의 집권 유지에 호남의 기업 유치가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라며 “이 지역을 계속 발전을 안 시키는 것이, 자기들한테 지속적으로 의지하게 만들고 어려운 경제 여건 때문에 민주당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는 독점 정치의 폐해를 보여주는 게 아니면 도대체 온다는 기업을 왜 막느냐”는 말도 했어. 윤석열 후보의 말을 요약하면, 광주를 포함한 호남지역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이유가 민주당의 정치적 음모 때문이라는 거지. 가난해야 민주당을 찍는 사람이 많고, 가난해야 민주당과 함께 투쟁도 한다는 거야. 그런 음모론의 증거가 있냐고? 물론 없지.

윤석열 후보의 음모론은 미국 뉴햄프셔 다트머스 대학의 정치학자인 러셀 뮤어헤드가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자인 낸시 로젠블럼과 함께 저술한 책 『A Lot of People are Saying: The New Conspiracism and the Assault on Democracy』에서 말하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음모론과 비슷하네. 과거와 달리 최근의 새로운 음모론들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자주 그랬던 것처럼, 확실한 증거도 없이 무조건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있다는 거야. 책 제목인 ‘사람들이 그러는데(A lot of people are saying)’라는 말이 유일한 근거라고나 할까. 요즘 국민의힘도 ‘부동산 민심’, ‘호남 민심’ 등 실체가 없는 ‘민심’타령으로 음모론을 정당화하고 있네.

윤석열 후보는 선거공보 책자에서 ‘정의와 상식이 무너진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대통령이 되면 ‘나이, 가치관, 여당, 야당 구분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밥 먹으며 편안한 대화를 하고 싶다’고 했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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