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홍수’라고 불릴 만큼 많은 콘텐츠들이 미디어를 통해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전용 서비스 등의 보급이 아직까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최근 ‘콘텐츠의 홍수’라고 불릴 만큼 많은 콘텐츠들이 미디어를 통해 공급되고 있다. 특히 최신 IT기술의 발전과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따른 비대면 사회의 본격적 도래가 맞물리면서 OTT, 스트리밍 서비스 등 신종 미디어 플랫폼은 문화·여가 활동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하루가 다르게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시·청각 장애인들은 여전히 ‘갈증’을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전용 서비스 등의 보급이 아직까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OTT부터 스트리밍까지”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시·청각 장애인들 불편함은 ‘여전’

전문가들 역시 빠르게 변화·성장하는 미디어·콘텐츠 시장에서 시·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플랫폼 접근성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지난 2월 말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장애인, 모바일 앱 이용 실태조사’에서도 시각 장애가 있는 소비자들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나 OTT앱 이용 등에 여전히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쇼핑‧배달‧동영상 스트리밍 앱 이용 경험이 있는 시각장애인 193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앱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인 92.2%(178명)가 상품·서비스정보 확인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서비스 이용이 어렵다고 답한 이유로는 ‘대체 텍스트 미제공’이라고 응답한 소비자가 120명으로 전체 67.4%에 달해 가장 많았다. 시각장애인은 이미지 정보를 설명해주는 대체 텍스트가 없으면 화면 낭독기에서 음성정보로 전환되지 않아 해당 정보를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OTT와 스트리밍 등 VOD 서비스는 이제 가장 중요한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장애인, 모바일 앱 이용 실태조사’에서도 시각 장애가 있는 소비자들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나 OTT앱 이용 등에 여전히 불편함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 박설민 기자

또한 유튜브, 아프리카TV, 트위치 등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는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에도 시·청각 장애인들은 큰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청각장애인이 영상 콘텐츠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소리를 문자로 표시해주는 폐쇄자막‘(Closed Caption)’ 제공이 부족했다.

폐쇄자막이란 음성이나 소리 신호를 TV화면에 자막으로 표시하는 서비스다. 프로그램의 청각 메시지를 전자코드 형태로 변환 전송해 화면의 해설 자막으로 나타나게 하기 때문에 청각장애인들이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선 필수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동영상 스트리밍 앱 4개 중 1개 앱만이 동영상 콘텐츠 대부분에 폐쇄자막을 통해 대사를 포함한 모든 소리를 문자로 실시간 지원하고 있었다. 나머지 3개 앱은 일부 콘텐츠에 한해 대사만 자막으로 제공하는 것이 확인됐다. 

한국소비자원은 “현행 방송법이 실시간 방송에 대해 장애인 방송을 일정 비율 이상 편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것과 같이 VOD, OTT 등을 통해 제공되는 콘텐츠에 대해서도 청각장애인의 미디어 접근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디지털 전환 사회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도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새로운 장벽일 뿐이다. 사진은 네이버의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사진 위쪽)'와 SK텔레콤의 메타버스 서비스 '이프랜드(사진 아래쪽)'의 모습./ 네이버, SK텔레콤

◇ 시·청각 장애인들에겐 디지털 전환 핵심 ‘메타버스’도 새로운 장벽

최근 디지털 전환 사회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메타버스(Metaverse)’에서도 시·청각 장애인들의 접근성은 크게 떨어지는 실정이다. 현재 IT업계의 예상처럼 향후 메타버스 사회가 활성화될 경우, 시·청각 장애인들의 문화 및 사회생활참여는 더욱 제한될 수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국회입법조사처  박제웅 입법조사관도 지난 12일 발표한 ‘비대면 시대 시·청각장애인의 방송미디어 접근성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를 통해 “최근 IT 기술 발전과 인공지능, 가상 융합, 확장 가상세계(메타버스) 등 디지털 신기술콘텐츠가 빠르게 부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방송에서 이러한 신기술 활용은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장애인 관련 분야 전문가들은 현재 상용화돼 인기를 끌고 있는 SK텔레콤의 ‘이프랜드(Ifland)’나 네이버의 ‘제페토’와 같은 메타버스 서비스들에는 을 위한 지원 서비스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을 한다.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당장 만나’에서는 지난해 8월 시각장애인이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를 실제로 체험해보는 코너를 진행했었다. 이때 메타버스를 직접 체험해본 시각장애인 현학 씨는 “메타버스에서도 활동지원인(장애인들의 신체적 활동, 가사활동, 사회활동 등을 지원하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현학 씨와 함께 코너를 진행했던 신홍윤 씨도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저 같은 지체장애인(질병 또는 사고 후유증 등으로 인해 신체적인 활동을 하는데 제약을 받는 사람)들은 메타버스가 물리적 장벽들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긍정적인 반응이었으나, 시·청각 장애인분들의 경우 제한점들을 많이 느끼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시각장애인들은 본인이 뜻하지 않은 묘사가 전해지기도 하고, 그런 문제점들로 다소 ‘웃픈’ 상황도 발생했다”며 “기술의 발전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가장 기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빗겨나가며 발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메타버스 서비스를 운영하는 SK텔레콤의 관계자도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이프랜드의 경우 출시된 지 1년이 아직 되지 않은 서비스 초기 단계”라며 “사실 신규 서비스인만큼 서비스 안정 부문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초기 개발 계획을 차츰 진행하고 있는 단계여서 아직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전용서비스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물론 이에 대한 서비스를 향후 도입하기 위한 계획은 검토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당장 만나’에서 시각장애인이 메타버스 서비스 제페토를 실제로 체험해보는 코너를 진행했었다. 이때 유튜브 진행자 현학 씨(시각 장애인)는 "메타버스 서비스를 즐기고 싶은ㄴ데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당장 만나 유튜브 캡처 

◇ 해외, 장애인 접근성 확보 위한 제도 마련… 우리나라도 ICT 기반 서비스 준비 중

전 세계 시·청각 장애인 숫자가 10억명에 이른 현재, 우리나라 역시 미디어콘텐츠 이용에 불편함을 겪을 수 있는 시·청각 장애인들의 숫자가 적잖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시각장애인은 25만2,000명, 청각·언어 장애인은 41만8,000명에 이르고 있다. 때문에 이들을 위한 미디어·콘텐츠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정부와 기업들은 시·청각 장애인들의 최신 미디어·콘텐츠에 대한 이용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기술 및 서비스를 개발과 제도 개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 호주. 유럽 등 해외 선진국들은 시·청각 장애인의 ‘VOD’서비스 접근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 마련에 힘쓰는 추세다. 

VOD는 ‘주문형 비디오(Video On Demand)’의 약자로 사용자가 방송을 요청만 하면 동영상을 마음대로 볼 수 있는 서비스다. 주로 인터넷을 통해 PC나 스마트폰으로 이용 가능하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OTT서비스도 VOD에 포함된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경우 2010년 10월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 법(CVAA)’이 의회를 통과했다. CVAA 법안에는 시·청각장애인이 스마트폰 사용과 미디어 콘텐츠 시청을 더욱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TV와 OTT 등 인터넷 비디오 프로그램의 편성표를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재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는 CVAA 법안을 기반으로 청각 장애인들에게 필수적인 폐쇄자막 품질 관리 규정을 만들어 TV부터 OTT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들까지 적용하고 있다. 이를 어기는 미디어·콘텐츠 제공 기업에는 10만달러에서 100만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벌금도 부과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OTT플랫폼의 대명사인 미국의 넷플릭스는 현재 모든 영화와 TV 프로그램에 폐쇄자막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2016년부터는 미국 시각장애인협회(The American Council for the Blind, ACB)와의 협약을 맺고 OTT와 VOD 유명작품 560개에 오디오 해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IT강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도 다양한 ICT기술을 활용해 시·청각 장애인들의 미디어·콘텐츠 접근성을 높이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VR·AR(가상·증강현실)’와 ‘인공지능(AI)’가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 받고 있다.

VR기술은 시각 장애인들의 미디어 콘텐츠 접근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서울 하상장애인복지관 소속 시각 장애인들이 '삼성 패럴림픽 쇼케이스'를 방문해 저시력인용 시각장애 보조 애플리케이션 릴루미노(Relumino)를 체험하고 있는 모습./ 삼성전자

실제로 국내 대표 IT기업 중 하나인 삼성전자가 지원하는 사내벤처 육성프로그램 ‘C랩’에서 개발한 VR앱인 ‘릴루미노’는 잔존 시력이 남아있는 시각장애인들이 앞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지난 2017년 2월 열린 세계 IT·모바일 전시회 MWC 2017에서 처음 공개된 릴루미노는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안과학 진료용 소프트웨어’ 품목 허가를 받았으며, 현재 상용화 준비 단계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도 지난해 각각  ‘음성-자막변환기술’과 ‘장애인방송 시청 지원 감성표현 서비스’를 개발해 공개하기도 했다. 

TTA에서 개발한 음성-자막 자동변환 기술은 AI음성인식기술을 통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에서 음성을 자막으로 자동 변환 후 화면에 표시해주는 기술로 청각 장애인들에게 유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ETRI에서 개발한 장애인방송 시청 지원 감성표현 서비스는  아바타 수어로 음성·자막을 변환해 제공하거나 다양한 감정을 음성으로 변환해 시·청각 장애인들의 미디어·콘텐츠 접근성을 향상시킨다.

국회입법조사처 박제웅 입법조사관은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의 확산, 방송서비스 제공 방식 변화 등에 따라 시청각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의 방송접근성 환경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며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해야 하는 현 시점에서 시·청각장애인의 방송서비스에 대한 질적인 측면의 개선 요구와 그 필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장애인방송은 이러한 수요자 니즈의 변화를 정확히 인지하고, 양적 성장만이 아닌 방송미디어 접근성의 고도화를 위한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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