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금강산에 자리한 아난티 골프장은 빼어난 경치와 코스 설계로 골퍼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천하절경이라는 금강산을 바라보며 9홀을 라운딩 하고 나면, 해금강을 향해 나머지 9홀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14번 코스는 깔때기홀이라 불리는 이벤트 홀이 있어 그린에 올리기만 하면 곧바로 홀인원이 되는 즐거움이 있다. 이런 이유로 언젠가는 한 번 아난티 금강산 코스에서 골프를 즐기고 싶다는 사람들의 기대가 높아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골프장이 완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8년 5월 문을 닫아야 했다. 북한군 경비병에 의해 우리 관광객 박왕자 씨가 피격당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관광이 중단된 것이다. 북한은 우리 당국의 진상조사와 사과, 재발방지 요구 등에 제대로 응하지 않았고 남북관계는 꼬였다.

이후 방치된 골프코스는 잡초가 무성해졌고 어디가 골프장인지 숲인지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북한 당국은 최소한의 관리를 위한 우리 인력의 현장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급기야 아난티 측은 지난 4월 중순 금강산 관광특구의 골프장(18홀)과 리조트(96실) 자산 507억원을 손실처리 한다고 발표했다. 전체 자산이 1조3,000억원에 이르는 회사가 500억원 규모의 북한 골프장에 발이 묶여 이미지 손상 등을 겪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아닌티의 판단이라고 한다.

때마침 북한이 금강산 내 아난티 골프장의 리조트 시설을 며칠 만에 모두 철거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8개 동의 건물과 외벽이 모두 해체된 모습이 위성사진에 고스란히 포착됐다. 현대아산이 북한으로부터 50년간 임차한 부지 168만5,000㎡(51만 평)에 지어진 아난티 골프장은 우리 기업의 자산이다. 그런데 북한은 아무런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없애버렸다.

북한은 현대아산이 금강산 관광객 숙박을 위해 600억원에 구입해 현지에 투입한 선상호텔인 해금강호텔도 해체해버렸다. 7층 높이의 선박형태 호텔은 고철더미로 변해버렸다. 통일부가 나서 “우리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방적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냈지만 북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북한의 이런 막무가내식 행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019년 10월 금강산을 돌아본 자리에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또 같은 해 12월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2020년 2월까지 철거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협의절차 등에는 응하지 않았다. 최근에도 우리 정부가 북한의 철거 움직임에 대해 설명과 논의를 요구했지만 북한은 묵묵부답이다.

금강산 내 남측 시설은 현대아산을 비롯한 우리 기업들이 관광 사업을 추진을 위해 투자한 민간 자산이다. 이산가족면회소 등 북한의 요청에 따라 우리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지은 시설도 있다. 그런데 북한이 이를 일방적으로 철거하고 몰수·동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이 이를 주도한다는 건 매우 실망스럽고 남북관계의 기본 틀을 해치는 무모한 조치다.

김정은 위원장이 ’너절한 남측시설‘ 운운한 대목도 이해하기 힘들다. 금강산 현지의 편의시설이나 리조트, 숙박 시설 등은 남북 간 합의에 따라 지어진 것이다. 1998년 11월 첫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이래 우리 관광객 수 백만 명이 이를 이용했다. 2008년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 이후 북한이 몰수·동결 등의 조치를 취하면서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못한 채 방치됐다. 자신들 때문에 오랜 시간 녹슬고 망가진 현장을 돌아본 뒤 ’너절하다‘는 등의 말과 함께 철거를 지시한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다.  

금강산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개성공단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125개 기업이 남겨두고 온 설비와 자재 등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공단 내에서 화재가 발생한 사실이 우리 군 당국의 관측에 의해 드러난 일도 있다. 

2020년 6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주도로 벌어진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폭거였다. 백주에 우리 세금으로 지은 남측 시설에 폭발물을 설치해 무너트린 상황을 김정은 위원장이 몰랐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북한은 남측과의 사업을 접고 중국 등 해외관광객을 받아들이는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대북제재 국면에서 핵 개발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연일 벌이고 있는 김정은 체제에 대해 국제사회는 추가 압박의 고삐를 죄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의 경우도 인프라가 열악한 금강산에 매력을 느끼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계획대로 되기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투자자산을 하루아침에 몰수하거나 일방적으로 철거하는 북한 당국의 행태에 해외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우려를 가질 수 있다. 경제제재 상황에서 가뜩이나 투자유치가 어려운 상황인데, 김정은 위원장이 주도하는 철거조치는 “북한에 투자했다가는 쪽박을 차기 십상”이란 이미지만 한국 기업과 국제사회에 광고하는 꼴이다.

북한도 언제까지 핵과 미사일을 짊어지고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지탄 속에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북제재의 굴레를 벗고 개혁과 개방의 길로 지속가능한 체제를 만들어야 하는 건 필수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일방적이고 무도한 행태를 보여서는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기 힘들다. 

관광은 제대로 된 산업기반이나 자원이 없는 북한 입장에서 중요한 외화획득 원천이다. 김정은 위원장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듯 금강산 인근 원산공항을 수억 달러를 들여 현대화하고 마식령스키장 등 시설을 건설했다. 그런데 투자유치를 꺼리게 만드는 행동으로 국제사회에 큰 실망감을 주고 있으니 문제다. 자충수에 불과한 무모한 행보를 접고 협력과 상생의 길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이 나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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