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야생초들 중 가장 오랜 시간 피고지기를 계속하는 식물이 무엇인지 아나? 아마 민들레일 걸세.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는 애기똥풀과 괭이밥도 있지만 민들레보다는 늦게 피지. 제주도 같은 따뜻한 지역에서는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게 민들레야. 오늘은 이 땅 어디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민들레 이야기를 하고 싶네.

이른 봄에 양지바른 언덕, 도시의 골목이나 공원의 시멘트 바닥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노란 황금빛 꽃을 피우는 민들레들은 대부분 키가 작네. 그래서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많아. 늦은 겨울이나 이른 봄에 민들레들이 땅에 납작 엎드려 꽃을 피우는 이유가 뭘까? 아침저녁으로 부는 찬바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땅에 밀착해 있는 거지. 땅에서 올라오는 열기도 쐬고 바람도 덜 맞으려는 민들레의 ‘삶의 지혜’라고나 할까. 그래서 납작 엎드려 핀 민들레의 꽃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지만 애잔하기도 해. 자본과 권력의 폭력에 움츠리고 사는 민중들의 모습 같거든. 그래서 민들레는 서민과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꽃이야.

우리들이 도시에서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보는 민들레는 이른바 토종 민들레가 아니고 서양민들레일세. 봄에만 노란색 꽃이 피는 토종 민들레는 점점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만나기 쉽지 않네. 4~5월에만 피는 토종 민들레꽃은 너무 정숙(?)해서 다른 문중의 꽃가루만 기다리다가 그게 여의치 않아도 근친교배는 하지 않고 수정 능력이 없는 무성의 씨앗을 갖는 처녀임신을 한다네. 그래서 많은 식구들을 갖지 못하는 거지. '일편단심'을 고집하는 토종 민들레와는 달리 서양민들레는 자가수정도 하고, 수정과 상관없는 단위생식을 해서 번식력이 강하다네. 그러니 많은 유전자를 퍼트릴 수밖에 없지. 그게 100여 년 전에 들어온 유럽산 귀화식물 서양민들레가 토종을 축출하고 이 땅을 지배하게 된 이유야. 서울 근교에서 만나는 노란색 꽃 민들레는 십중팔구 서양민들레라고 보면 되네. 둘을 어떻게 구분하냐고? 토종 민들레는 비늘 모양의 총포조각이 곧게 서는 반면에 서양민들레는 그 총포조각이 뒤로 젖혀지네. 그래서 꽃을 자세히 보면, 토종 민들레는 얌전하면서도 꽤 야무지게 보이지만, 서양민들레는 좀 지저분하게 보여.

일편단심 토종 민들레가 사라지고 있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생각하기 나름일세. 이 땅에 잘 적응해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을 토종과 외래종으로 구분해서 배척할 필요가 있을까? 이 땅에서 오래 살면 서양민들레도 언젠가는 '토종'이란 말을 듣게 될 거야. 마치 200~300년 전에 이 땅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지금 한민족의 일원이 되어 이 땅에 살고 있듯이… 식물의 세계든 인간 세상이든 너무 '순결'만 고집하면 오래 가지 못하는 게 자연법칙일세. 귀화식물이 늘어나면서 이 땅에서 사는 식물들의 분포가 더 다양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

민들레는 노란 황금빛 꽃도 예쁘지만 꽃줄기 위에서 붙어 있는 둥근 열매가 정말 볼만하네. 흰 솜털이 달린 씨들이 공 모양으로 모여 있다가 하나씩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시름 다 달아나지. 할 수만 있다면 그 갓털 달린 꽃씨 하나 얻어 타고 멀리 멀리 날아가고 싶기도 해. 안도현의 <해찰>이라는 시에 나오는, 대열에서 이탈해 한눈 팔고 있는 병아리처럼, 민들레 꽃씨 톡 건드려 “햇빛을 타고” “허공에다 발자국을 콕콕 찍으며 하늘하늘”날아가고 싶어. 하늘 높이 날아오른 민들레 씨들은 실제로 40km, 즉 백 리를 날아가 새로운 곳에 자리를 잡고 살기도 한다네. 이러니 어디를 가든 민들레꽃을 만날 수밖에.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에 밟혀도 다시 피어나는 민들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주는 마음 넉넉한 식물이기도 하지. 어린잎은 나물로 먹고, 뿌리는 약재로 쓰거나 차를 만들어 마셔도 좋아. 그러니 고마울 수밖에. 강원도 원주 명봉산 기슭에서 야생초와 함께 살면서 겸허와 공생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는 고진하 시인은 산문집 『야생초 마음』에서, 친구의 농장에서 얻어온 흰민들레 뿌리를 가마솥에 덖으면서, 민들레에게 거듭 고맙다고 인사하고 있네. “고맙다, 민들레야./ 너는 들녘을/ 노란 웃음으로 물들여/ 기쁨을 선사해주고,/ 우리 마음의 공터에도/ 하얀 씨앗을 날려/ 조물주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밝은 마음을 지니게 해주고,/ 더욱이 오늘은/ 네 몸을 까맣게 태워/ 우리 몸을 살릴 영약이 되었구나./ 고맙다, 민들레야.”

나이 들어 육체가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마음까지 늙어서야 되겠는가. 산과 들에 나기기 힘들더라도 방에 혼자 앉아, 어둡고 으슥한 골목길에 낮게 피어 있는 황금빛 민들레꽃 떠올리면서, 씽긋 웃는 시간도 필요할 나이일세. 어디에 있든 자연과 교감하면서 살면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야. 세상사에 너무 분노하지 말고 가볍게 살아가기 바라네. 류시화 시인이 <민들레>일세.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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