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에 참석해 분향을 하고 있다. /뉴시스·광주전남사진기자회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에 참석해 분향을 하고 있다. /뉴시스·광주전남사진기자회

시사위크|광주=이선민 기자  제42주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여‧야를 막론한 의원들과 윤석열 대통령까지 참석해 ‘통합’의 광주 정신을 강조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와 광주시민들은 “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셨으면 한다”며 다소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18일 오전 일찍 도착한 광주 5‧18 국립민주묘지에는 입구부터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의 ‘민주주의는 전진합니다’ 정의당 경남도당의 ‘5‧18정신을 헌법 정신으로! 민주주의와 통합을 향한 광주의 약속’ 등의 플랜카드가 걸려 있었다. 또 공립단체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의 ‘대통령님 참배를 환영합니다’ ‘5‧18 대동정신으로 국민통합 이룩합시다’와 5‧18민주화유공자유족회의 ‘한번 아닌 지속적인 참배로 국민홍합 이룩합시다’ 등 윤 대통령을 향한 메시지가 담긴 플랜카드가 늘어져 있었다.

이날 일부 보수 유투버, 대통령 지지세력과 일부 광주시민들과의 마찰이 일기도 했다. 마이크를 설치하고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는 보수 유투버를 향해 일부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이들은 거친 말투로 “이게 광주식 민주주의냐, 이게 5‧18식 민주주의냐, 당신들은 5‧18을 40년이나 팔아먹고 있지 않냐” 등의 폭언을 쏟아내는 장면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삼엄한 경호와 상당한 인력의 경찰들로 인해 큰 충돌이 벌어지는 모습은 없었다.

5‧18민중항쟁추모탑으로 향하는 길목의 민주의문 앞으로 향할수록 경비는 점점 삼엄해졌다. 일부 방문객들은 당황한 듯 “시민들보다 경호 인력이 더 많다. 이게 무슨일이냐”고 웅성거렸고, “이렇게 다 못들어가게 할 거면 대통령 혼자오지 그랬냐”며 언성을 높이는 시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내부 입장권을 받거나, 행사장 밖 한켠에 마련된 중계스크린 앞에 자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주행 KTX 특별열차’를 함께 타고 온 새 정부 장관들, 대통령실 참모진, 국민의힘 의원 등 당정 인사들과 행사 10분 전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영접자들과 악수한 후 민주의 문 쪽으로 이동했다.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대통령님 여기 봐주세요”라고 외치자 빠르게 이동하던 윤 대통령은 잠시 손을 들어 인사를 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작성한 방명록./시사위크 이선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제42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작성한 방명록./시사위크 이선민 기자

윤 대통령은 방명록에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라고 쓴 후 기념식장으로 입장했다. 행사가 시작된 후 헌화와 분향을 했고, 추모공연을 시청했다.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오늘 민주화의 성지 광주에서 여러분을 뵙는다. 취임 후 첫 국가기념일이자 첫 지역 방문이다”며 “오월 정신은 보편적 가치의 회복이고,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다. 그 정신은 우리 모두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다”고 광주만의 5‧18이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는 오월 정신을 확고히 지켜나갈 것이다. 광주의 미래를 여러분과 함께 멋지게 열어갈 것을 약속드린다. 올해 초 여러분께 손편지를 통해 전했던 그 마음 변치 않을 것이다”며 “오월이 품은 정의와 진실의 힘이 시대를 넘어 영원히 빛날 수 있도록 우리 함께 노력하자. 오월의 정신이 우리 국민을 단결하게 하고 위기와 도전에서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한다”고 했다.

행사 종료 직전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에는 누구보다 윤 대통령이 앞장섰다. 옆 사람과 손을 잡고 마스크가 흔들릴 만큼 크게 제창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통적으로 주먹을 쥐고 투쟁하듯이 부르던 방식과 다른 모습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윤 대통령은 여권 인사들과 손을 맞잡고 제창했다. 역대 보수 대통령 중에서는 이 노래를 함께 제창한 첫 사례로 의미가 있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등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뉴시스·광주전남사진기자회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등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뉴시스·광주전남사진기자회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종률 사무처장이 전남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2년 5월 소설가 황석영 씨와 함께 만든 노래로 5·18 당시 전남도청을 점거하다 계엄군에게 사살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씨와 1979년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 사망한 그의 대학 후배 박기순 씨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다.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해왔으나,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 당시 참석자 전원의 제창에서 합창단 공연으로 바뀌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에서도 합창 공연으로 대체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17년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다시 제창되면서 논란이 일단락됐다. 이번 윤석열 정부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를 사전 배포하며 제창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야권과 광주 시민들은 아직 냉담한 반응이다. 기념식이 끝난 후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많은 국민의힘 의원님들이 참여하셨다. 다만 보여주기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그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행동으로 보여주실 것이라고 기대한다”며 “5‧18 정신을 왜곡했던 김진태 후보의 사퇴가 첫 번째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박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께서 ‘협치’를 말씀하셨다. 협치의 기본은 역지사지다”며 “그런데 어제 한동훈 후보자를 법무장관으로 임명하고,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윤재순 총무비서관을 임명했는데 협치를 말하려면 이들이 사퇴하는 것부터 되어야 한다. 그게 광주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고 비판했다.

윤호중 위원장 역시 본인의 학생운동 시절을 떠올리면서 “5‧18 광주의 정신을 폄훼하고 혐오의 발언을 일삼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지방선거에 출마하고 있다. 이런 분들부터 반성하고 후보에서 사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5‧18 광주 정신을 진정으로 계승해서 여야가 앞으로 개정 헌법을 논의할 때 5‧18 광주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헌법 전문에 추가되기를 희망한다”며 “아쉽게도 윤석열 대통령께서 오늘 기념사에 그 부분을 발언하는 것을 검토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포함되지 않아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뒤 열사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42주기 기념식에 참석한 뒤 열사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공동취재사진

야당 지도부 뿐 아니라 유족들도 윤석열 대통령의 관심이 일회성으로 끝날까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모든 행사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한 채 흰 한복을 입고 아들 이정연 씨의 묘지 앞에 앉아 있던 유족 구선악 씨(82)는 오늘 기념식 소감을 묻자 “우리는 독재에 질려버린 사람들이다. 내가 아들 죽고 자식이 죽었는데 사찰을 당하고 보름이나 징역을 살았다. 우리 아저씨도 광주 교도소로 끌려가서 한 달을 살았는데 이유도 안 알려줬다”며 “이 한을 어떤 사람들이 풀어줄지가 의문이고 누가 독재를 할까봐 항상 걱정이다”고 했다.

집 앞에 경찰들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가 장보러도 못가게 감시를 했다고 호소하던 구씨는 5‧18 정신의 헌법 수록에 대해서도 “헌법 수록해야지. 그게 맞는거 아니냐”며 “오늘 대통령이 오셨으니 그 말을 해줘야 하는데 그 말을 안해서 마음이 더 아프다. 그러니 이제 민주당에서 밀어붙여서라도 해줬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아들의 비석을 연신 손으로 쓸어내리던 구씨는 진상규명에 대해서도 답답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정호영 전 참모총장을 조사해야한다”며 “어떻게 해서라도 그 증언을 받아내야한다. 그게 내 소원이다. 기자들 모아 놓고 죄송하다 사죄해야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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