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한국영화 연출작 영화 ‘브로커’로 관객과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CJ ENM
첫 한국영화 연출작 영화 ‘브로커’로 관객과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영화 ‘브로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사람이 익명으로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베이비 박스’를 둘러싸고 관계를 맺게 된 사람들의 예기치 못한 특별한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로 제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고, ‘어느 가족’(2018)으로 제71회 칸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첫 한국영화로, 배우 송강호‧강동원‧배두나‧이지은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함께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완성했다. 버려진 아기와 함께 뜻밖의 동행을 거치며 차츰 하나가 돼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한 가족, 그리고 ‘생명’의 의미에 관한 화두를 던지며 묵직한 울림을 안겼다. 감독 특유의 따뜻한 시선과 통찰이 묻어난다. 

지난달 제75회 칸영화제 공식 섹션 경쟁 부문에 초청,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돼 호평을 얻은 데 이어, 지난 8일 개봉해 국내 관객과 만난 ‘브로커’는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본격적인 흥행 행보를 시작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기대도 되고 불안한 마음도 있다”고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브로커’가 생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영화로 끝을 맺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따스한 시선과 통찰이 묻어난 ‘브로커’. /CJ ENM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따스한 시선과 통찰이 묻어난 ‘브로커’. /CJ ENM

-한국영화로 한국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 기분이 어떤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아니라서 한국 관객이 봤을 때 외국인이 만든 작품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 베이비 박스와 그것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의 취재를 최대한 많이 했다. 일본에서도 영화를 찍기 전에 많은 취재를 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가능한 더 다양한 각도의 의견과 목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베이비 박스를 옹호하는 입장과 비판하는 입장이 존재하는데, 각 입장에 대해 최대한 많은 취재를 했고, 보육원 시설 관계자들에 관한 이야기도 들었다. 각본을 쓰기 전 단계에서 다양한 리서치를 하며 취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대사 하나하나에 대해 배우들과 많은 소통을 하며 의견을 나눴다. 토론도 꼼꼼하게 이뤄졌다. 한국 관객들이게 어떻게 다가갈지 기대하는 마음도 있고, 여전히 불안한 마음도 있다.” 

-전작들과 어떤 부분은 맞닿아있고 어떤 부분은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한 생각은. 
“아직은 영화를 본 분들의 감상에 대해 많이 접하지 못했지만 직접적인 대사가 많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듣긴 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의도적으로 한 부분이기도 하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견과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시설에 맡겨지고 그곳에서 어른이 된 인물을 만났는데, ‘내가 태어난 게 잘한 것인가?’ 본인의 생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갖고 있고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어른이 된 감정을 접했다. 그때 그렇게 느끼게 한 책임이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격려라고 할 수 없지만 생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됐다. 소영(이지은 분)을 통해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직접적인 대사를 건네는 장면을 넣었다. 평소에는 쑥스러워서 그런 대사를 쓰지 않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 유형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CJ ENM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 유형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CJ ENM

-취재 과정에서 왜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 더 많이 나타났다고 생각했나. 무엇을 느꼈나. 
“또 다른 편견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다. 영화 속 이야기와 실제 베이비 박스와는 구분해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당부를 먼저 드리겠다. 미국에서 낙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고, 일본에서도 낙태를 할 때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자칫 이 영화가 낙태에 대해 부정적인 가치관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조심스럽기도 하다. 

베이비 박스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아기의 생명을 구해줬기 때문에 아이를 맡긴 어머니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는 반면, 명백한 육아 포기이자 영아 유기이고 그것을 조장하는 원인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에서 수진(배두나 분)이 차 안에서 ‘버릴 거면 낳지 말아야지’라는 말을 한다. 그것이 아이를 버리는 어머니를 향한 편견을 대변하는 모습일 거다. 그런 견해를 가진 목소리를 포함해서 이 이야기를 만들어나갈 생각으로 임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났을 때 수진이 안고 있던 편견이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엄마의 문제뿐 아니라 주변 다른 사람들, 어른들의 책임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 여러 유형의 가족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브로커’ 역시 감독의 전작들과 연결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어떤 하나의 사회가 큰 가족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고 해석해도 될까. 
“만드는 입장에서는 내가 만든 과거의 작품들과 지금 작품이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결코 의식한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의 큰 가족을 머릿속으로 그렸던 것은 아니고, 세 가지 박스를 있었다. 첫 번째는 우성이 버려지는 작은 박스, 베이비 박스고, 두 번째는 인물들이 유사 가족이 돼가는 차량, 공간 안에서의 박스다. 그리고 세 번째는 우성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이뤄낸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박스가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상징적인 의미에서 세 가지 박스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브로커’ 주역 (왼쪽부터) 강동원‧송강호‧이지은‧배두나‧이주영. /CJ ENM
‘브로커’ 주역 (왼쪽부터) 강동원‧송강호‧이지은‧배두나‧이주영. /CJ ENM

-한국의 톱스타들을 대거 캐스팅했다. 차별화 전략인가.  
“처음부터 올스타 캐스팅을 의도해서 준비했던 것은 아니었다. 각각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배우들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이런 작업이 실현됐다. 정말 감사하고 있다. 내가 이미지로 그렸던 배우들이 그대로 다 나와 줬다. 배우들 뿐 아니라 각 파트의 스태프들도 다 정상급이 참여했다. 그들 덕에 완성도가 높아졌다. 꿈같은 일이 실현된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현장에서 송강호(상현 역)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송강호의 듬직함은 거의 매일 느꼈다. 한국말 자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대사의 의미와 표정, 대사의 리듬 등 카메라 안에 담긴 것뿐이었다. 송강호가 항상 곁에 와서 전 테이크가 더 좋았던 것 같다는 등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이야기를 해줬고, 그 의견들이 편집을 할 때 굉장히 도움이 됐다. 또 나는 촬영 끝나면 그날 찍었던 것을 편집으로 연결하는데, 송강호가 다음날 아침 와서 연결된 편집본을 보고 의견을 줬다. 어떤 장면은 좋았고, 어떤 장면은 유심히 비교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솔직하게 말을 해줬다. 

그러면서도 감독의 선택이니 참고삼아 확인해 보라고 말을 해줘서 큰 도움이 됐다. 촬영이 끝난 뒤에도 편집 작업을 보러 왔는데, 어떤 장면에서 일련의 대사를 쭉 이어가는 식으로 편집을 했더니 본인의 대사를 중간에 끊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줬다. 그래서 실제로 해보니 압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게 좋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하면 이 작품 전체가 더 좋은 작품으로 갈 수 있는지 생각하는 배우라고 느꼈다. 나 역시 드문 경험이었고 정말 감탄했다.”

-한국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어떤 재미를 느꼈나. 
“뛰어난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언어의 차이를 넘어 매력적인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송강호와 함께 하면서도, 배두나와 함께 하면서도 느꼈다. 예를 들면 상현이 다시 가족들과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걸 깨닫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에서 상현이 ‘나는 아빠니까’라고 하니까, 딸이 ‘진짜?’라고 되묻는다. 그때 송강호 안에서 밀려오는 감정을 눈앞에서 보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또 수진이 차 안에서 남편과 전화로 대화하는 장면 촬영이 시작됐을 때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정말 특별한 장면이 되겠구나 바로 직감했다. 언어의 차이를 넘어 느낄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흥분되고 멋진 일이었다.”  

고레에다 감독이 일본영화의 침체기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CJ ENM
고레에다 감독이 일본영화의 침체기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CJ ENM

-TV 드라마부터 다큐멘터리, 극영화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작품을 만들 때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장이 즐거운 것. 가장 어린 막내 스태프까지 빨리 현장에 가고 싶다, 오늘 촬영은 정말 즐거웠다고 느낄 수 있는 현장이 제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현장을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물론 현장이라는 게 의견 대립이 있을 수 있고 웃으면서만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현장에 왔던 아이들이 어른들의 모습을 봤을 때 즐거워 보인다고 느꼈으면 좋겠는 마음이 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처음 접하는 일하는 어른의 모습이잖나. 어린  아이들이 봤을 때 영화라는 게 정말 재밌는 거구나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 왜 어른들은 항상 화가 나 있고 못되게 굴까 하는 느낌을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일본영화가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의견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긴 영화역사가 있으면 그런 흐름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오히려 과거 자산 위에 우리가 있고, 영화를 만들고 있는 상황에 감사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밖에서 봤을 때 일본영화가 침체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사실일 거다. 하지만 재능 있고 잠재력을 가진 배우나 창작자들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제작 환경이나 시스템이 구태의연한 것도 사실이다. 무언가에 도전할 때 시간적으로나 자본적으로 부족한 게 당연해져서 새로운 창작물이 나오기 힘들어진 상황이기도 하다. 구조적인 개혁이 잘 일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일본영화의 부족한 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으면서 일본영화에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지 배운 부분이 있다. 그걸 갖고 돌아가서 일본에서 개선하는 노력을 하고 싶다.”  

-일본영화계에서 한국 배우, 한국 작품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흥행에도 영향을 줄까.  
“솔직히 모르겠다. 흥행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창작자들이 흥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함께하는 것은 아닐 거다. 분명한 것은 일본 연출가와 배우 송강호가 함께 작업했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지 (일본에서도) 관심이 뜨거운 것은 사실이다. 최근 개봉한 ‘유랑의 달’을 홍경표 촬영감독이 찍었는데, 우리가 보지 못한 일본의 풍경과 배우들의 모습을 담아내 굉장히 신선하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들 재밌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형태의 협업이 계속해서 이어졌으면 좋겠고, 교류가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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