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7 14:17
[김재필 '에세이'] H에게-한운야학(閑雲野鶴)의 경지
[김재필 '에세이'] H에게-한운야학(閑雲野鶴)의 경지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2.06.1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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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 며칠 동안 친구들과 제주도에서 놀다왔네. 서귀포에 머물면서 아침이면 일찍 법환 포구에 나가 바다에 떠있는 섬들(새섬, 문섬, 범섬, 지귀도)과 멀리 북쪽 하늘에 우뚝 솟아있는 한라산 백록담 위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구름들을 실컷 보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지. 쉼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구름들의 형태와 색깔이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지…… 200년 전 구름에 이름을 붙어주었던 영국의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의 말처럼 ‘구름은 여전히 찬미해야할 자연이며,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절대 정복할 수 없는 상징’이었네. 요즘 내가 구름 사진을 찍고 있어서 하워드의 말이 더 실감났다고나 할까.

구름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법과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있는 헛된 욕심들 다 내쫓고 가볍게 사는 법을 구름에게서 배우고 있네. 이해인 수녀가 <꼭 말하고 싶었어요>라는 시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가볍게 살다가 미련 없이 사라지는 연습을 날마다 해야 한다는 걸 깨닫고 있어. “지나가는 세상 것에/ 너무 마음 붙이지 말고/ 좀 더 자유로워지라고// ​날마다 자라는 욕심의 키를/ 아주 조금씩 줄여가며/ 가볍게 사는 법을 구름에게 배우라고// ​구름처럼 쉬임없이 흘러가며/ 쉬임없이 사라지는 연습을 하라고/ 꼭 말하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의 구름이라면…”

고희에 가까운 나이 때문인지 푸른 하늘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구름을 보면서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생명의 짧고 덧없음에 관해서도 생각하게 되네. 끊임없이 나타나 시시각각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다가 유유히 사라지는 구름을 보면 자연스럽게 생명체들의 삶과 죽음이 떠오를 수밖에 없어. 죽음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삶의 한 순간일 뿐이라는 장자의 말이 옳다는 걸 확신하게 돼. 장자는 『장자』 외편 「지락」에서 원래 생명(生), 형체(形), 기(氣)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네. “어둠 속에서 무언가에 섞여 있다 그게 변해 기가 생겨났고, 기가 변해 형체가 생겨났고, 형체가 변해 생명이 생겨났다. 지금 그것이 또 변해 죽음이 된 것인데, 이는 사계절의 운행 원리와 같다.” 삶과 죽음의 이치가 이러니 주검을 앞에 놓고 시끄럽게 울고불고 하는 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거지. 그래서 아내가 죽었을 때도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거야.

푸른 하늘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구름을 보면서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무르는 것은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네. 그래서 남은 시간 더 열심히, 즐겁게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고. 함께 모여 있다가 흩어져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조각구름들을 통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도 다시 마음에 새기지. 언젠가는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믿으니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 해줄 수밖에 없어.

고려시대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자신의 호를 백운거사(白雲居士)라고 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했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 뜬구름 잡는 소리라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구름처럼 살려고 애쓰다 보면 그 언저리에는 갈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해. “만약 구름을 사모하여 배운다면 세상에 나가서는 만물에 은택을 주고 집에 머무를 때는 마음을 비워, 그 하얀 깨끗함을 지키고 그 정상에 거하겠지. 그리하여 아무 소리도 없고 색도 없는 자유의 세계(無何有之鄕)로 들어가면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알 수 없을 것이네. 이와 같다면 옛사람이 얻고자 했던 실제와 가깝지 않겠는가?”

누구나 소욕지족하면 언젠가는 흰 구름이 되어 매인 데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는 한운야학(閑雲野鶴)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싶네. 그땐 정말 내가 구름인지 구름이 나인지 알 수 없을 거야. 대붕(大鵬)같은 큰 구름이 되어 하늘 높이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조금 더 갖겠다고, 자기만 옳다고 좁은 땅에서 아웅다웅 다투는 인간들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을 걸세. 기껏 날아봐야 느릅나무 높이밖에 날지 못하는 매미나 어린 비둘기가 보는 세상과는 아주 다른 풍경일 수밖에 없어. 모든 경계와 구별이 사라진,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많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일 걸세. 그래서 오늘도 헤르만 헤세의 <소리 없는 구름>의 시구처럼 구름이 하얀 바람을 이끌고 나의 푸른 꿈속을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마냥 황홀해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