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문장으로 정보를 취득하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 홈페이지와 각종 동영상·이미지 콘텐츠 등을 통해 정보를 얻는 일이 많아지면서 장문보다는 단문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런 ‘장문 기피’ 현상이 문장 독해력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세 줄 요약 어디?’ ‘너무 길어서 비추천’.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댓글들의 모습이다. 장문 글의 경우 읽기 힘들기 때문에 짧게 세 줄로 요약한 글만 보고 싶다는 커뮤니티 누리꾼들의 의사가 잘 드러난 댓글이다.

이 같은 ‘세 줄 요약’ 문화가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빠르게 확산된 배경은 스마트폰과 같은 IT기기들의 급격한 보급이 요인으로 꼽힌다. 책이나 신문 등을 통해 긴 문장으로 정보를 취득하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 홈페이지와 각종 동영상·이미지 콘텐츠 등을 통해 정보를 얻는 일이 많아지면서 장문보다는 단문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장문 기피’ 현상에 대해 우려의 시각을 보내고 있다. 장문의 글을 읽는 것보다 짧고 자극적인 단편적 콘텐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는 자칫 디지털 세대의 ‘문해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수원시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A씨(31)는 최근 학생들의 독해력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뉴시스

◇ “문장을 이해 못해요”… 스마트 기기 사용 증가, 독해력 감소 영향

“이 친구들이 말로 설명하면 알아듣는데, 가르칠 내용이 글씨로 바뀌면 알아듣지를 못해요.”

경기도 수원시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A씨(31)는 기자에게 이렇게 푸념했다. 말로 교과 내용을 설명하거나 문제 풀이를 할 때는 모든 학생들이 척척 알아듣다가도 칠판에 적어주거나 교과서의 공식 등을 읽어보라고 하면 갑자기 말문이 막힌다는 것이다. 

A씨는 아마 최근 들어 짧은 문장만 타이핑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와 게임상의 채팅, 유튜브 등 OTT의 발달이 학생들의 독해 능력에 악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놀랍게도 A씨의 추측은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최근 사람들의 문장 독해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기우(杞憂)’가 아니다. 앞서 소개한 것과 같은 실제 사례뿐만 아니라 의학적 연구 결과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지난 1월 31일 국제 과학 연구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논문 ‘Reading on a smartphone affects sigh generation, brain activity, and comprehension’에 따르면 스마트폰 등 IT기기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의 뇌가 장문을 읽는 능력이 하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들에 따르면 스마트폰으로 장문으로 구성된 글을 읽을 경우 전전두엽 피질이 과도하게 활동하고, 문맥을 읽는 동안 숨을 고르는 횟수가 줄어들어 독해력이 저하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로 글을 읽게 될 경우, 종이에 써진 글보다 문맥의 이해력이 줄어들게 돼 점점 더 장문의 글을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논문의 저자인 일본 쇼와대학교 의과대학 Motoyasu Honma 박사는 “스마트폰 등 IT기기들의 편의성은 매우 높지만 우리가 하는 일들 중 많은 부분에서 종이를 대체하는 것은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스마트폰과 종이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장문 읽기’의 경우엔 가능하다면 종이를 권하고 싶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등 IT기기 사용량 증가가 문장 독해력 감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31일 국제 과학 연구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논문 ‘Reading on a smartphone affects sigh generation, brain activity, and comprehension’에 따르면 스마트폰 등 IT기기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의 뇌가 장문을 읽는 능력이 하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시스 
전문가들은 스마트폰 등 IT기기 사용량 증가가 문장 독해력 감소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 1월 31일 국제 과학 연구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 등 IT기기의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사람들의 뇌가 장문을 읽는 능력이 하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픽사베이

◇ 韓청소년들, 문해력 하위권… 전문가들, “디지털 사회서 문해력은 더욱 중요해”

특히 디지털 사회에서 문장 읽기 능력이 저하되는 우리나라 세대는 ‘청소년’ 세대다. 스마트폰 등 IT기기에 접근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세대보다 책이나 신문 등 장문으로 구성된 문서를 읽은 경험이 더욱 적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경우 읽기 영역에서 OECD 37개 회원국들 중 주어진 문장에서 사실과 의견을 식별하는 능력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 학생들의 경우 평균 식별률이 47%였으나 우리나라 학생들은 25.6%에 그쳤다.

역설적이게도 전문가들은 향후 디지털 사회가 본격화될수록 오히려 문장의 독해력을 높이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디지털 사회에서는 더욱 많은 양의 정보가 쏟아져 나올 것이고, 이때 올바른 정보와 잘못된 정보를 제대로 이해·학습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은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 저널 제46호에서 “정보사회는 갈수록 정보량이 많아지고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이라며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딥페이크와 메타버스처럼 가상과 현실의 뒤섞임이 불가피한 미래다. 단순한 정보 접근과 수용으로는 점점 복잡해질 현실의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를 연결하고 선택하고 분석하고 적용하는 능력은 예전보다 훨씬 복잡해질 것이라고 본다”며 “디지털 기술이 우리에게 손쉬운 정보 접근과 이용법을 알려주는 편리함이 거꾸로 이용자들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리터러시 능력을 요구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지표연구실 김나영 부연구위원도 ‘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2021)’ 리포트에서 “로나19로 인해 가정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고 온라인 수업 위주의 교육을 받게 되는 ‘C세대(Generation C)’에게는 기초소양으로서 디지털 리터러시가 더욱 강조될 것은 자명하다”고 전망했다.

이어 “학교에서의 디지털 문해력 교육이 학생들의 디지털 리터러시 함양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및 프로그램 운영, 교사 연수 등에 관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교육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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