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올 여름은 무척 무덥고 긴 시간이 될 듯하다. 안팎으로 체제에 위해가 되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는데다, 해법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다. 

우선, 한반도와 주변 정세가 북한에게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불쾌지수를 가장 올려버린 건 윤석열 정부의 대북 관련 행보다. 미국과 일본은 전통적으로 핵 문제를 비롯한 대북대응에 채찍을 휘두르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윤석열 정부의 출범이란 사태가 벌어지면서 판이 커져버렸다.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북한의 핵 문제와 미사일 발사 등을 거론하며 공동대응에 의기투합했다. 이전 문재인 정부가 미·일의 대북압박에 어느 정도 브레이크 역할을 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맞장구를 치는 형국이다.

나토 정상회의 기간 중인 지난 29일 남북한이 나토 문제를 둘러싸고 정면충돌한 것도 북한의 불편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남조선 당국은 화난의 근원인 나토의 검은 손을 잡음으로써 매우 고통스러운 중증 안보위기를 경과하게 될 것이며 치유 불능의 안보불안 후유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냈다. ’총알받이‘라는 거친 표현까지 쓰며 ”나토는 미국 패권 전략 실현의 하수인이자 현지 침략도구“라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북한의 보도가 나온 지 반나절 뒤에 윤석열 대통령은 나토에 대해 ”자유와 법이 지배하는 세계질서를 만들자는 것“이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고 회의 연설 등을 통해 북한에 대한 강경입장의 압박 메시지를 언급했다. 평양발 나토 비난 발언을 일축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을 정조준 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더해 한·미·일 3자의 찰떡 대북공조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북한 체제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3국 정상이 나토를 무대로 한 회동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 됐다.”(윤석열 대통령) △“북한이 지속해서 핵 실험을 할 것이란 우려 갖고 있다.”(바이든 미국 대통령) △“북핵 실험 시 공동훈련을 포함한 대응을 함께하자.”(기시다 일본 총리)며 향후 대북 압박을 구체화 할 것을 예고했다는 점에서다.

한·미·일 정상회의에 이어 같은 날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7번째 연설자로 나선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 이끌기 위해서는 북한의 무모한 핵 개발의 의지보다 국제사회의 비핵화 의지가 더 강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무모한 핵개발‘ 등 몇몇 표현에서 북핵 문제를 대하는 깐깐한 입장이 드러난다.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기간 중 내놓은 메시지를 종합하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전통적 가치인 민주주의와 인권 외에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입장이다. 이를 대북정책의 세 축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법치‘를 강조한 건 대북 이슈와 관련해 어물쩍 넘기는 일은 없을 것이란 점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후속조치가 따를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문제는 북한 내부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4월 말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북한 코로나는 최대 일일 환자 발생 숫자가 30~40만 명대에 이르다가 최근 1만 명 이하로 줄어든 것으로 북한 국가비상방역위원회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500만 명 가까운 환자발생에도 불구하고 누적 사망자 숫자가 70명대인 것으로 발표돼 통계의 조작이나 축소 의혹이 일고 있다.
 
실제 북한 내부와 소식이 닿은 대북 소식통들은 ”평양은 어떤지 몰라도 지방의 경우 코로나 환자가 속출하고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는데 대책이 없어 거의 손을 놓은 상황“이라고 다급한 국면임을 전하고 있다.  

여기에 6월 들어 황해남도 해주시와 강령군 일대에서 수인성전염병으로 추정되는 질병이 돌아 북한 당국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과 이설주 부부는 물론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권력실세인 당 비서 조용원·이일환도 부부동반으로 해당 지역에 보낼 의약품을 준비하는 장면이 관영 매체를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그만큼 권력 핵심부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또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평양은 물론 사리원과 남포 등 북한 주요 지방도시는 물난리를 겪고 있다. 지난 25일 내린 비로 곡창지대인 황해도 농촌지역의 농작물이 유실되는 등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상황이라는 게 북한 조선중앙TV의 보도다. 본격적인 비가 내리고 장마가 이어지면서 피해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여 북한 당국이 대책에 부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면초가에 몰리는 형국이 될 경우 김정은 위원장은 핵 버튼을 만지작거리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7차 핵 실험을 위한 준비를 마무리한 상태며, 언제든 감행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핵 실험까지 도발수위를 극대화 하지 않더라도 올 들어 지속해온 산발적인 미사일 시험발사나 화성-17형을 포함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도발에 나서는 쪽으로 나설 공산도 있다.

휴전선 인접 지역에서 소형 전술 핵 배치와 관련한 위협적 움직임을 보이며 단계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올리는 카드도 북한으로선 고려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 주재로 지난 23일 끝난 노동당 중앙군사위 제8기 3차 확대회의에서는 ‘전선부대 작전 임무에 중요 군사계획을 추가’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이는 지난 4월 신형전술 유도무기 시험발사 당시 북한이 언급했던 ”전술 핵 운용“을 실전배치하는 의미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이런 도발을 통해 내부의 위기나 체제불만을 잠재우려 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인민생활은 어려운데 핵 실험이나 도발만 한다“는 쪽으로 주민 여론이 쏠릴 경우 자칫 체제유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핵 실험이나 ICBM 시험발사 등은 미국 주도의 대북제재 강화를 자초하는 국면을 부른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일 공조 하에 이뤄질 군사적 압박이나 경제제재에 맞닥뜨려야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마냥 북한 편을 들기에는 각자 복잡한 사정이 너무 많고 여유가 없다.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생존전략은 북핵 포기를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핵무기만 거머쥐고 미국과 서방 국제사회를 상대한다는 건 너무 버거운 일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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