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으로 돌아온 박해일. /CJ ENM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으로 돌아온 박해일. /CJ ENM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해준 역에 박해일 외에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고, 맞춤형으로 각본을 쓰다시피 했다.” 박찬욱 감독이 특정 배우를 두고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그렇게 완성된 ‘헤어질 결심’을 보고 나면 박 감독이 왜 새로운 방식을 택했는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헤어질 결심’ 그리고 해준은 박해일을 만나 마침내 완전해졌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 ‘아가씨’(2016)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 ‘살인의 추억’ ‘괴물’ ‘최종별기 활’ ‘덕혜옹주’ ‘남한산성’ 등 사극부터 액션, 드라마까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입증해 온 박해일은 극 중 해준 역을 맡아 첫 형사 연기에 도전했다. 

해준은 시경 사상 최연소로 경감의 직위에 오를 만큼 유능한 형사로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만난 후 수사 과정에서 의심과 인간적인 관심을 동시에 품게 되는 인물이다. 늘 단정한 옷차림과 청결함을 유지하는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로,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상대를 대한다.  

박해일은 기존 장르물 속 형사 캐릭터와 차별화된 해준을 완벽하게 소화해 호평을 얻었다.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담백한 매력은 물론, 단단한 연기 내공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혼란이 깊어지는 내면의 복합적인 감정까지 입체적으로 표현했다는 평이다. 탕웨이와의 케미스트리도 흠잡을 데 없다. 별다른 대사 없이도, 미세한 표정 변화와 눈빛만으로도 서래를 향한 미묘한 감정 변화를 담아내 몰입을 높인다. 

박해일이 칸영화제 방문 소감을 전했다. /CJ ENM
박해일이 칸영화제 방문 소감을 전했다. /CJ ENM

최근 박해일은 <시사위크>와 만나 ‘헤어질 결심’ 출연 과정부터 촬영 비하인드, 칸영화제 초청 소감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이번 작품으로 박찬욱 감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그는 “배우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나오기도 하는구나 몸소 느꼈다”고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당시 기분이 어땠나. 
“박찬욱 감독님이 전작들을 통해 멋진 선배, 매력적인 배우들과 칸영화제에 가서 수상을 해왔잖나. 나라는 배우가 참여한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수상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나도 일조한 거란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웃음) 폐막식 참석 소식을 듣자마자 안도했다. 뭐라도 받겠구나 하는 기대가 생긴 거다. 심지어 송강호 선배가 남우주연상(‘헤어질 결심’)까지 받으면서 국내 영화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순간이었다.” 

-한국콘텐츠의 높아진 위상을 체감했나. 
“칸영화제에 처음 갔는데 한국영화를 좋아하고 찾아보는 게 일상이 됐다는 게 느껴졌을 정도다. 배우의 연기상과 감독상이 동시에 이뤄졌다는 것도 그 방증이다. 처음 가는 영화제조차 익숙하기 수월했고, 낯설지 않은 시선으로 한국 영화인, 작품을 반겨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반가울 따름이다. 과거에는 소수의 작품이나 영화인들이 어렵게 세상에 알려졌는데, 지금은 신인배우가 단숨에 할리우드에서 연기를 해낼 수 있는 시대다. 전 세계 관객이나 시청자가 열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덕인 것도 같고, 박찬욱‧봉준호 그리고 임권택 감독님, 최민식‧송강호 선배를 비롯한 많은 영화인들이 정성을 들이고 땀을 흘려서 일궈낸 결실이기도 한 것 같다.”

-이번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 결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배우의 생각은 어떤가. 
“모든 작품이 그렇진 않겠지만, 박찬욱 감독님의 전작 대부분이 관객들 곁으로 다가가 감정의 스크래치를 내는 방식의 톤이었다면, ‘헤어질 결심’은 관객이 곁으로 다가와 지켜보고 듣지 않으면 재미가 없을 방식의 태도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두 인물이 미세하게 눈빛을 주고받고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다가오게 만드는 작품이 아닐까. 담백하기도 하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형사 캐릭터를 완성한 박해일. /CJ ENM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형사 캐릭터를 완성한 박해일. /CJ ENM

-박찬욱 감독이 시나리오 기획 단계부터 박해일을 두고 해준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고 했다.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어떤 장점이 있었나.  
“박찬욱 감독님의 평소 작업 방식은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캐스팅을 하는데, 이번에는 작품을 준비할 때 탕웨이 배우의 캐스팅이 완벽하게 돼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고, 더불어 나도 물리적으로 가능해야 촬영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 아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걸로 알고 있다. 캐스팅이 먼저 된 상황이라면 창작자 입장에서는 그 배우가 갖고 있는 기질을 더 활용할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생각보다 잘 읽혔다. 물론 질문도 많이 생겼지만 자연스럽게 읽히는 부분이 꽤 있어서 이 인물이 되고 싶은 생각이 더 많았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촬영할 때도 내가 하는 연기,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 감독님이 지지를 해줬고 나 또한 감독님이 원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구현하고 싶었다. 만족스러운 촬영이었다.”

-중점을 둔 부분은.  
“해준은 기존에 없던 형사 캐릭터였다. 많은 부분에서 180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형사스러운 부분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면서 서래로 인한 감정의 파도까지 겪는다. 감정의 깊이와 넓이를 끌어안고 해내야 하는 상황들이 가장 큰 숙제였다. 박찬욱 감독님은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에두르지만 차오르는 느낌을 감독의 방식대로 보여준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어렵고 괴롭기도 했다. 결국 배우로서 내가 해내야 하는 숙제였다. 결과적으로는 만족하지만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다. 탕웨이 또한 그 어려운 과정을 잘 헤쳐나갔기 때문에 영화적 결과물을 즐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사 톤도 독특했다. 어떻게 잡아나갔나.  
“감독님이 해준 캐릭터를 만들 때 ‘덕혜옹주’ 김장한을 참고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김장한이) 고전적인 맛이 있다. 그 시대에 어울리는 클래식한 말투를 쓰기도 하고, 품위 있는 캐릭터라는 설정도 거기에서 소스를 가져왔다고 했다. 그래서 해준의 문어체적이고 다소 시적인 말투가 낯설거나 어렵지 않고, 오히려 매력 있게 잘 소화하고 싶다는 호기심이 더 강했다. 게다가 해준은 형사잖나. 일반적으로 보이는 형사의 모습과 충돌해서 더 매력 있고 재밌지 않나 생각했다.” 

-해준과 서래의 문어체적 대사가 이 영화만의 분위기와 색깔을 완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송서래가 중국인이고 한국말을 잘 못한다. 낯설어하면서 내뱉는 말들이 우리가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다. 그게 이 영화의 질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감독님도 그 부분을 잘 활용해서 드라마적으로 확장한 것 같다. 서래가 사용하는 ‘마침내’ ‘단일한’ 등의 단어를 해준이 받아서 쓰게 되는 상황이 있다. 그것은 반대로 해준이 서래라는 인물에게 다가가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런 부분이 참 흥미로웠다.”

부드럽고 단단한 매력의 박해일. /CJ ENM​
부드럽고 단단한 매력의 박해일. /CJ ENM​

-박찬욱 감독 특유의 과감한 앵글과 색감, 상상하기 힘든 독창적인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촬영하면서 배우도 감탄한 지점이 있다면. 
“감독님의 연출은 순간순간 포착하는 배우의 눈빛과 한 얼굴이 하나의 열쇠가 되고, 사건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핵심 장치가 된다는 게 색다른 경험이었다. 어떤 날은 감독님이 ‘잘생긴 해준 얼굴 찾기 해볼까’라고 하시더라. 찾기 쉽지 않은 마스크인데, 민망하더라.(웃음) 그만큼 감독님이 결과를 내는데 스타일도 중요한 수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가 이렇게 매력적으로 나오기도 하는구나 하는 걸 몸소 느꼈다.” 

-구체적인 장면을 꼽아 본다면. 
“송서래를 의심과 관심으로 쳐다보게 되는 장면이나 위를 올려보게 되는 순간적인 해준의 얼굴, 바닷가에서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되면서 보여주게 되는 감정의 룩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며 헷갈려 하고 궁금해했던 부분을 풀어주는 얼굴과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만의 방식대로 해석하게 되는 지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경험을 해봤다.”

-해석할 여지가 있는 작품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우선 시나리오와 콘티가 정말 공들여서 준비된 내비게이션 같은 느낌이었다. 가장 최적의 경로와 막히지 않게 잘 짜놓은 지도 같았다. 그래서 그것을 잘 구현하고 싶다는 태도로 촬영에 임했다. 탕웨이도 잘 짜인 콘티가 신기하다고 하더라. 이런 방식이 처음이었고 중국 영화계에도 알려주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한국 영화 제작 방식에서 쓰이는 매력적인 방식이라는 걸 나도 새롭게 알았다.”

-현장에서 박찬욱 감독은 주로 어떤 디렉션을 줬나.  
“명확한 테두리 정도는 이야기를 해주되, 배우에게 맡겨서 유연하게 그러나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보는 방식으로 결과물을 얻어냈다. 그래서 한 장면 한 장면 찍을 때마다 희열감이 있었다. 익숙함 보다 낯선 것들을 발견해서 만들어내려고 하다 보니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희열감이 더 큰 작업 방식이었다. 상대배우 탕웨이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에너지가 좋다. 먼저 마음을 열고 나라는 배우를 맞이해줬고, 미세한 감정과 호흡을 느낄 수 있게 열정적으로 해줬다. 고마울 따름이다.” 

탕웨이와의 케미스트리도 흠잡을 데 없다. /CJ ENM
탕웨이와의 케미스트리도 흠잡을 데 없다. /CJ ENM

-탕웨이는 촬영할 때 박해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어떤 도움을 줬나.    
“리딩을 할 때 중국어와 한국어, 영어 대본까지 세 권을 놓고 준비를 하더라. 한국어로 감정 연기까지 해야 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그래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봤고 해준의 한국어 대사의 녹음을 정중히 부탁하더라. 할 수 있는 선에서 녹음을 해줬다. 그런 김에 나도 서래의 중국어 대사 녹음을 부탁했고, 정성스럽게 녹음한 파일을 줬다. 그 녹음을 들으며 작품의 톤도 잡고 해준 역할도 준비할 수 있었다. 고마웠다.”

-서래뿐 아니라 아내 정안과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이정현과 호흡은 어땠나. 
“일단 나는 이정현의 팬이다. 만나자마자 쑥스럽게 이야기했다. ‘꽃잎’때부터 매력적인 배우로 생각했고,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배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고. 노래를 부를 때도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이 정말 대단하잖나. 부채(무대 소품)가 되고 싶었다는 농담도 하고 그랬다. 그만큼 작품으로 만나고 싶었던 배우다. 심지어 중요한 관계인 아내 역할이었다. 이미 박찬욱 감독과 작업한 경험이 있어서 굉장히 여유롭게 대해줬고, 서로 만족스러운 부부 연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안에서 큰 환기가 됐고, 촬영하면서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최근 2세를 출산했는데, 정말 축하한다. 이번 작품에 경사가 그렇게 있다.” 

-맡은 역할마다 특유의 우아한 매력이 녹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평가에 대한 생각은. 
“우아하다는 단어는 항상 쑥스럽다. 나라는 사람보다 캐릭터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캐릭터는 창작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다음 창작자가 전작에서 활용하는 부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해준도 ‘덕혜옹주’ 김장한이 작게나마 활용됐다고 하지 않나. 앞으로도 나의 장점이 유연하게 잘 활용되길 바랄 뿐이다.” 

-눈빛이 매력적이고 잘 활용하는 배우라는 평가도 많다. 스스로 자신이 가진 강점을 어떻게 작품에 녹여내려고 하나.  
“내 강점을 활용하는 순간 실패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것은 연출자가 온도와 에너지를 조절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그것을 활용하려고 하는 순간 조절이 안 될 것 같다. 물론 이번 영화를 보고 ‘연애의 목적’ ‘살인의 추억’ 속 눈빛이 미세하게 보였다는 이들도 있긴 했다. 내가 해온 작품의 흔적일 수 있고 내가 가진 지점 안에서 활용된 부분이니,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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