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제안 TOP 10’ 중 우수제안 선정 못해

대통령실이 31일 특별감찰관 제도를 없애지 않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대통령실 청사. /뉴시스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TOP 10’ 투표에서 어뷰징이 발견돼 우수제안 3건을 선정하지 않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대통령실 청사.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대통령실이 전 정부의 ‘국민청원’을 폐지하고 야심차게 내놓은 ‘국민제안’ 제도가 어뷰징(중복·편법 전송)으로 인해 첫 투표부터 무효처리 돼 논란이 일고 있다. 대통령실은 당초 대국민 온라인 투표를 통해 ‘우수 제안’ 3건을 선정하기로 했지만 투표 진행 방식이 어뷰징에 취약했기 때문에 준비가 부실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지난 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민제안 TOP10 온라인 투표에 많은 시민이 호응해줬지만, 다수 투표에 어뷰징 사태가 있었다”며 “당초 얘기한 (우수제안) 3건은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은 지난 6월 23일 ‘국민제안’ 코너를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지난달 21일부터 열흘 간 국민제안 10개 안건을 두고 온라인 투표를 진행한 바 있다. 10개 안건은 온라인과 우편으로 접수된 1만3,000여건 중 ‘국민제안 심사위원회’가 △생활밀착형 △국민공감형 △시급성을 기준으로 선정했다. 

투표에 부쳐진 국민제안 10개 안건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9,900원 K-교통패스(가칭) 도입 △휴대전화 모바일 데이터 잔량 이월 허용 △최저임금 차등적용 △백내장 수술보험금 지급기준 표준화 △전세계약 시 임대인 세금완납 증명 첨부 의무화 △콘택트렌즈 온라인구매 허용 △반려견 물림사고 견주 처벌 강화 및 안락사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 △소액 건강보험료 체납 압류 제한 등이다.

대통령실은 이 가운데 득표가 많은 순으로 우수제안 3건을 선정해 정책화를 추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어뷰징으로 이같은 계획은 무산됐다. 

이중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교통패스 도입, 모바일 데이터 전량 이월 등 3개가 근소한 차이로 상위 3개에 포함됐다. 최다득표를 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는 57만7,415표를 얻었고, 최저득표를 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은 56만784표를 얻었다. 최다·최저 표차가 1만6,631표에 그친다는 것은 투표 변별력이 없다는 의미다. 

이 고위관계자는 “어뷰징을 통해 저희의 제안 제도를 방해하려는 게 아닌가 했다. 또 해외 IP로 들어오다 보니, 변별력 있는 온라인 투표를 방해하려는 세력이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라며 “(해외 IP) 통계로 잡진 않았고 다수 보였다. 차단하려고 했는데 우회적으로 다른 방식을 쓰고 그래서, 어뷰징 사태가 종반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해외 어느 국가의 IP인지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 그것까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해외 IP로 동시에 1,000회 투표한 것을 어뷰징이 일어났다는 근거로 봤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우수제안 3건을 선정하지는 않았으나 국민제안 투표 결과는 해당 부서와 공유했다고 한다. 또 당초 상위 3개 제안만 시상하려 했으나, 투표에 부쳐진 10개 제안 모두 시상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은 투표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한 개의 ‘1IP 1투표’ 방식을 도입했으나 어뷰징 등의 문제가 발견됨에 따라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정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어뷰징과 관련 업무방해 등 수사 의뢰 가능성에 대해서는 “수사 대상으로 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문제는 국민제안 투표 방식이 당초부터 어뷰징의 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국민청원의 경우 네이버·카카오·트위터 등 SNS 로그인을 해야 청원 서명이 가능했다. 다만 이 또한 한 사람이 각각의 플랫폼으로 로그인해 청원을 할 수 있었던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국민제안은 로그인이나 휴대폰번호 인증 없이 바로 투표를 할 수 있었다. 1IP 1투표 방식이라 PC와 휴대폰으로 투표를 한다면 한 사람이 두 번 투표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투표를 할 때 ‘찬반’을 묻는게 아니라 ‘좋아요’(찬성)만 있어 의견 수렴 과정 역시 왜곡이 발생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울러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은 민감한 사안임에도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 없이 국민제안 심사위의 결정을 통해 선정됐다. 대통령실은 상임위원장인 허성우 국민제안비서관 외의 심사위원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같은 민감한 사안을 심사위원의 ‘진정성’만을 담보해 투표를 진행했고, 결국 아무런 제안도 선정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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