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KB국민은행지부 노조원들은 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0명의 직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로 깎인 임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미정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KB국민은행 노사가 ‘임금피크제’를 놓고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노조가 4일 ‘사측의 불법적인 임금피크제 운영으로 노동자들이 임금삭감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하며 직원 40명과 집단 소송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번 소송은 지난 5월 대법원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이 나온 이후 금융권에서 제기된 첫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 노조, 임금피크제 관련 집단소송… “임금은 깎고 업무는 그대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산하 KB국민은행지부 노조원들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오후 40명의 직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로 깎인 임금을 지급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피크 연령)이 지난 장기근속 직원의 임금을 줄여서 고용을 유지하는 제도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08년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노조의 설명에 따르면 이후 노사는 임금피크 진입에 따른 업무 경감을 위해 ‘관리 또는 관리담당 등’으로 대상자의 업무를 후선으로 국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러한 노사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임금삭감에 준하는 만큼 업무량 혹은 업무 강도의 저감 조치가 있어야 함에도 상당수 임금피크 직원들이 이전과 같은 업무와 업무량, 업무 책임을 짊어진 채 근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류제강 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은 “노사는 임금피크 직원의 직무를 ‘관리 또는 관리담당 등’ 후선 업무로 국한하기로 했으나 사측은 이러한 합의를 위반하고 적지 않은 직원들에게 현업 업무를 그대로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업에서 임금피크 진입 전·후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만 56세가 되면 임금의 40%를 삭감하며, 매년 5%씩 추가 삭감을 통해 만 58세부터는 50%를 삭감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노조 측은 이 같은 문제를 놓고 그간 사측과 공방을 이어왔다. 올해 초 노사협의회에서 해당 사안이 쟁점사항으로 떠올랐다고 한다. 그러나 사측에선 임금피크 직원에 대한 업무 배정과 관련해 “노사합의에 위배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노사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고 게 노조의 설명이다.

해당 쟁점은 대법원이 지난 5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임금을 삭감한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시 대법원은 임금피크제 효력 판단 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근로자가 입는 불이익의 정도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 △감액된 재원이 임금피크제 도입의 본래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을 제시했다.

노조는 이 같은 기준 중 ‘임금 삭감에 대한 대상 조치의 도입 여부 및 그 적정성’에 주목했다. 노조 측은 “당시 법원은 ‘원고(임금피크 대상자)에게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의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임금삭감에 준하는 만큼 업무량 혹은 업무 강도의 저감이 있어야 적법한 임금피크제라는 얘기인데, 안타깝게도 KB국민은행에서 해당 조건에 부합하지 않은 임금피크제로 피해를 보고 있는 직원들은 한두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후폭풍… 금융권 전체로 번질까 

이날 류 위원장은 “임금피크제를 적용 중인 직원 343명 중 40%인 133명이 임금피크제 이전 업무를 동일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특히 영업점에서 창구 업무를 수행하는 임금피크 직원들 중에서도 이러한 사례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류 위원장은 “충분한 입증 근거가 있고 소송 의지가 있는 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집단 소송인단을 꾸렸다”며 “1차적으로 40명의 근로자가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며, 추후 입증 근거가 명확하고 소송 의지가 근로자들이 추가로 있다면 지원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집단 소송에 대해 KB국민은행 측은 “아직 소장을 전달받지 못한 상황으로 추후 원고들의 주장을 법리적으로 검토한 후 소송 절차 내에서 대응할 방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소송은 지난 5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금융권에서 제기된 첫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이다. 업계에선 KB국민은행을 시작으로 다른 은행들에서도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관련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된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한진 전국금융산업노조 사무총장은 “KB국민은행 뿐만 아니라 국책은행에서도 임금피크제 도입 직원들이 상당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금융노조는 KB국민은행 지부를 시작으로 다른 지부들과 함께 소송 등을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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