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제도 개선 관련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 없어… 여러 부작용 등 고려”
전문가 “정부, 무순위 청약 대폭 완화 아닌 부분적‧일시적 완화 예상”

/뉴시스
지난달 말 국토부가 무순위 청약 제도 개선을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금리인상 여파로 주택거래가 줄고 미분양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무순위 청약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이달 초부터 무순위 청약 제도 개선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무순위 청약 제도 대폭 완화 보다는 일부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개선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했다.

◇ 금리인상 영향 못 피한 서울, ‘청약불패 신화’ 깨져… 무순위 청약 건수 증가

무순위 청약 제도는 기존 입주자 모집공고가 났던 아파트 분양 과정에서 청약 당첨 후 계약을 포기하거나 부적격 사유로 당첨이 취소되는 등 미계약으로 발생한 잔여세대를 대상으로 추가 청약을 받아 무작위로 입주자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주택청약 1순위 조건, 청약통장 및 예치금 등이 필요치 않아 이른 바 ‘줍줍’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해 국토교통부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안을 개정‧공포함에 따라 작년 5월 28일 이후 무순위 청약을 신청하려면 무주택 세대주, 만 19세 이상 성인, 해당 주택건설지역 거주자 등의 조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또한 무순위 청약에 당첨된 자는 투기과열지구 10년, 조정대상지역 7년씩 각각 재당첨 제한이 적용된다. 이같은 재당첨 제한은 무순위 청약 당첨 후 계약을 포기한 자들도 포함된다.

최근 계속된 금리인상 여파로 주택 거래가 급감하고 미분양이 늘면서 청약시장은 얼어붙고 있다. 이에 건설사들의 무순위 청약 실시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그동안 ‘청약불패 신화’로 일컬어졌던 서울에서도 미분양이 발생하면서 건설사들의 무순위 청약은 덩달아 늘고 있는 추세다.

실제 지난달말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월말 기준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4,456가구로 5월에 비해 25.1% 증가했다. 

이 중 작년 12월 54가구에 그쳤던 서울 미분양 주택은 6월말 719가구까지 급증했다. 이는 강북구(318가구), 마포구(245가구)의 소규모 아파트 단지 등에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했기 때문이다.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올 6월말 기준 서울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15가구로 이는 지난 5월 37가구 보다 481%(178가구↑) 증가한 수치다.  

이달 초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중 약 60% 가량은 미분양 및 미계약 등으로 인해 무순위 청약을 실시했다. 

이 기간 동안 서울 장안동 ‘브이티 스타일’은 무려 9회에 걸쳐 무순위 청약 공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신림동 ‘신림스카이’는 8회, 숭인동 ‘에비뉴 청계 I’은 6회,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4회씩 각각 무순위 청약을 시행했다.

◇ 건설업계 “경기하락 시기 무순위 청약 제도 보다 선착순 제도 필요”

현 시장상황에 대해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일단 무순위 청약제도가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주택시장이 과열됐을 때에는 무순위 청약으로 가는 게 맞지만 지금처럼 경기하락 시기에는 전혀 맞지 않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리인상 등으로 주택매수심리가 저조한 상황에서 최초 청약 경쟁률이 평균 1대 1을 넘었다는 이유로 무순위 청약을 1차, 2차, 3차 순으로 연달아 진행하면서 추가 비용‧시간이 계속 투입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흔히 언론 등에서 무순위 청약제도를 ‘줍줍’이라고 칭해 일부 소비자들은 아무 요건도 따지지 않고 시도하면 되는 줄 알고 있다”며 “이로 인해 멋대로 무순위 청약에 지원했다가 요건에 해당되지 않아 청약을 포기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가 쌓이면 결국 추가 무순위 청약을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잦은 무순위 청약으로 인해 늘어나는 시간·비용 부담도 우려했다.

그는 “건설사들은 법규정상 무순위 청약을 반드시 한국부동산원을 통해 공고해야 하는데 이때 1차로 800만원의 수수료 비용이 들고 미분양 등으로 인해 2, 3차 공고까지 하게 되면 각각 400만원, 100만원의 추가 비용이 지출된다”며 “여기에 회차당 모집을 마치는데 3주 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 같은 경기하락 시기에는 이마저도 부담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여러 요소를 고려해 볼 때 무순위 청약 1회차 이후 선착순 제도로 변경해 입주자를 모집하는 것이 공급자인 건설사와 수요자인 소비자 모두 윈윈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항간에서는 선착순 제도 도입시 다주택자만 좋은 일 시킨다며 투기를 우려하는데 무주택자로 한정해 선착순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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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전국 미분양 주택이 증가 추세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토교통부

◇ 정부, 무순위 청약제도 개선 논의 착수

정부도 무순위 청약제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지난 7월말 국토교통 규제개혁위원회는 무순위 청약 공급방법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국토교통부에 권고했다.

당시 규제개혁위는 “부적격·계약해지 등으로 발생한 잔여물량을 사업주체가 무한 반복적으로 청약홈을 통해 공개 모집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시간이 과도하다”며 “일정 횟수 이상 공개 모집시 사업주체가 임의 처분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에 국토부는 올해 12월까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에 개정된 내용을 마련해 포함시킬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직까지 무순위 청약 제도 개선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사항은 없다”며 “다만 과도한 무순위 청약 반복으로 인한 부작용, 선착순 제도 도입 시 예상되는 문제점 등 모든 부분을 종합 고려해 개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무순위 청약 제도를 완전 개편이 아닌 부분적·일시적 완화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했다.

한 부동산분석기관 전문가는 “아직까지 정부가 검토‧논의 중인 사안으로 확정해 말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개인적으로는 정부가 무순위 청약 제도 개선과 관련해 거래 위축 지역 중심으로 완화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뒤이어 “기존 청약제도의 근간을 손보는 것이기에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으로 보인다”며 “아마 전년 대비 거래규모가 급감했거나 미분양 주택 수가 대폭 증가한 지역 위주로 무순위 청약제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 번에 다 완화하지 않고 횟수 제한 등 일시적 완화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다주택자 등의 투기 우려에 대해선 “선착순 제도 도입 시 투기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있지만 이미 취득세 중과 및 전매제한 등의 규제가 있어 이는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아울러 이미 거래량이 급감해 미분양 주택이 속출하는 지역이기에 투기 수요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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