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차 보조금, 가격·주행거리 기준만 존재… 자국 산업 보호 소극적
美, FTA 미체결국 원료·배터리 사용 전기차 ‘보조금 혜택 제외’
中, 자국 배터리 장착·30만 위안↓ 충족 시 보조금 지급

/ 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규제가 적은데, 이를 두고 국부유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중국의 BYD 전기버스. /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제갈민 기자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자국의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고 강화하기 위해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이 단순히 가격에만 국한돼 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책을 두고 중국산 전기차 및 전기차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배만 불리는 것이라는 지적과 함께 국내 전기차 보고즘 제도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최근 발표한 ‘2022년 상반기 자동차 신규 등록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산 전기상용차(버스·화물) 판매는 지난해 상반기 159대에서 올해 상반기 1,351대를 기록하며 749% 증가했다. 중국산 전기버스는 상반기에만 436대를 판매해 시장점유율이 48.7%에 달했다.

중국산 전기버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성장하는 추세다. 최근 3년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전기버스 판매대수는 △2019년 143대 △2020년 343대 △2021년 480대 등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고, 같은 기간 시장 점유율도 26.1%, 34%, 37.6% 등으로 확대됐다.

여기에 국내에서 조립한다는 이유로 ‘국산’ 딱지를 붙이고 있는 에디슨모터스의 전기버스 모델까지 포함한다면 ‘중국산 버스’의 비중은 상당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에디슨모터스의 전기버스 대부분은 중국 리브콘(LVCON)의 전기모터를 사용하고, 배터리셀도 중국 ETP사 제품을 탑재한다. 또 국내 유통되는 초소형 전기차 대부분이 중국산 플랫폼에 의존하고 있다.

협회는 저렴한 가격과 다양한 모델을 판매량 증가 요인으로 꼽았지만, 국내산과 수입산에 이렇다 할 차별을 두지 않고 있는 보조금 정책이 중국산 점유율을 높인 핵심 요인으로 지적된다.

현재 국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은 승용 모델(초소형 포함)의 경우 기본 모델 판매가격을 기준으로 5,500만원 미만은 보조금 지급 비율을 100%, 5,500만원∼8,500만원은 50%로 적용해 지급한다. 8,500만원이 넘는 승용 전기차 모델에는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이 외에 다른 기준은 아직까지 없다.

전기버스의 경우에는 성능(전비·최대 주행가능 거리) 및 차량 규모를 고려해 △중형 최대 5,000만원 △대형 최대 7,000만원 국고보조금을 지원한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최대 규모도 중형 5,000만원, 대형 7,000만원 지급된다. 전기버스의 구조가 저상형이라면 국토교통부의 보조금도 9,200만원 받을 수 있다. 가격이나 주요 부품의 원산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국산’으로 알려진 에디슨모터스 전기버스가 수도권 버스 회사에 속속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에디슨모터스 전기버스의 전기모터와 배터리셀 등 주요부품이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 기업 제품으로 알려져 겉만 국산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 뉴시스
미국 상원은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사진은 중국산 전기모터와 중국산 배터리셀을 사용하는 에디슨모터스의 전기버스로, 미국에서는 향후 이러한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 지급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 뉴시스

반면, 완성차 양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은 자국 자동차 기업에 유리한 보조금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다.

미국 상원에서는 지난 7일(현지시각)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채굴·가공된 핵심 광물(리튬·니켈·코발트 등)을 일정 비율 이상(2024년 40%→2026년 80%) 사용해 만든 배터리를 탑재하고, 북미에서 제조되는 배터리의 주요 부품(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비율이 50% 이상 충족해야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북미지역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포함한다. 사실상 미국 정부는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을 선언한 셈이다. 미국의 이러한 조치는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현재 자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 기준을 ‘30만위안(약 5,770만원)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자국 배터리를 탑재해야 보조금을 지원한다. 중국 시장에서 수입차 브랜드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시장에 판매하는 모델과 달리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주요 수입차 브랜드에서는 중국 시장에 판매하는 모델에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테슬라가 대표적이며, 메르세데스-벤츠, 스텔란티스에서도 중국 CATL(닝더스다이)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중국 현지 전략형 모델에도 CATL 배터리가 탑재된다.

미국과 중국은 자국 자동차 기업 및 자동차 기업 협력사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제도 마련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전기차의 주요 부품을 중국산으로 사용하는 모델 및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무분별하게 보조금을 지급하면, 계속해서 중국산 부품 및 전기차를 구매하기 위해 비용이 지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중국산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국내 기업들이 위축되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는 점에서는 우려가 되는 대목이다. 이는 자국 산업 및 기업 보호가 허술하고, 국부유출을 초래한다는 지적으로도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BYD 한국 법인은 최근 ‘씰(Seal)’ ‘돌핀(Dolphin)’ ‘아토(Atto)’ 등 7개 차종의 상표를 출원한 것으로 알려진다. 향후 중국산 전기차가 국내에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국부유출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서는 상호주의에 입각해 ‘한국산 배터리셀 및 전기모터를 탑재해야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만기 KAMA 회장은 전기상용차 시장의 중국산 점유율 급증과 관련해 “수입산과 국내산의 무차별 원칙은 지키되 국산과 외산 간에 차별 대우를 하는 중국 등 일부 국가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대책 마련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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