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03 11:55
[김재필 '에세이'] H에게- 기억 속에만 있은 ‘고향의 별’
[김재필 '에세이'] H에게- 기억 속에만 있은 ‘고향의 별’
  • 김재필 사회학 박사
  • 승인 2022.09.14 09: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이번 추석에는 여느 해보다 크고 둥근 보름달이 떴던데 잘 보았는지? 늙으면 명절도 시들해지는가 보네. 어렸을 때는 명절이 마냥 좋았는데 요즘은 설날과 추석에도 별로 흥이 나지 않아. 가슴 떨리는 설렘도 없고. 그래서 올해 추석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냥 담담하게 지냈네. 명절이면 일가친척들 다 모여 북적거리던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자식들만 조용히 다녀간 명절이 너무 한한(閑閑)하기는 했어. 그래도 김완하 시인의 <별들의 고향>을 읽고 또 읽으며 지금은 잃어버린 옛 고향 풍경과 어렸을 때 만났던 별들을 회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어서 좋았네.

“어머니는 집 가까운 콩밭에 김을 매시고 저녁이 되어서야 맨발로 호미와 고무신을 들고 들어오셨지요. 우물가 빨랫돌 위에 고무신을 닦아 놓으시고, 하루의 피로를 씻으시던 저녁, 땅거미가 내릴수록 더욱 희게 빛을 발하던 어머니의 고무신. 어머니의 땀 밴 하루가 곱게 저물면 이제 막, 우물 안에는 솔방울만한 별들이 쏟아지고 갓 피어난 봉숭아도 살포시 꽃잎을 사리는 것이었지요// 지금 우물은 자취없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싱싱한 꿈 길어 올릴 두레박줄 내릴 곳 없는데, 이제는 그곳에 서 보아도 뒷산 솔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나의 저 어린 시절 어머니의 흰 고무신이 빛나던 저녁, 우리 집 우물에서 솟아나던 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우물, 빨랫돌, 호미, 고무신, 솔방울, 두레박, 솔바람… 지금은 시골에 가도 쉽게 만날 수 없는 것들이지. 아마 이런 것들과 친숙하게 지냈던 분들은 대개 60고개를 넘긴, 시골이 고향인 노인들일 거야. 고무신 이야기가 나오니 운동화라는 걸 처음 신었던 때가 기억나는군. 초등(국민)학교 4학년 때 농촌에서 대처로 전학가면서 처음 운동화를 신어봤네. 등에 책보만 매고 다니다가 손에 들고 다니는 책가방도 처음 샀고. 검정 고무신을 신고 먼지 나는 신작로를 뛰어다니던 농촌 소년이 새 운동화 신고 보무도 당당하게 도회지 학교 교문에 들어섰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네. 진한 사투리로 첫인사를 해서 같은 반 동무들에게 받았던 ‘촌놈’이라는 놀림이 무의식에 작은 상처로 남아있어서 잊히지 않는지도 몰라.

요즘처럼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밤이면 내가 가장 보고 싶은 게 뭔지 아나? 동무들과 밤늦게까지 놀다 집에 돌아올 때 동네 골목과 들판에 쏟아지던 별들이야. 혼자 어둡고 좁은 고샅길을 걸으면서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들도 자주 봤어. 우주, 은하, 별, 행성 등에 관한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었던 소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똥별들을 보면 왜 마음이 아프고 슬프기만 했는지 몰라. 그래도 캄캄한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 보면서 걸었던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네. 지금도 그런 밤과 별들이 그립기만 하거든. 지금은 시골 고향에 가도 별 보기가 쉽지 않네. 전기가 들어오면서 어둠을 밀어내자 별들도 함께 떠나버렸지. 그래서 “우물에서 솟아나던 별들”도 볼 수 없는 거야.

하지만 이상국 시인은 <별에게로 가는 길>에서 “어둠의 거울이었던 고향집 우물”이 메워지고, 우리들이 사는 곳에서 별에게로 가는 길이 없어져서 별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별은 밤마다 떠올라 “기우는 집들의 굴뚝과/ 속삭이는 개울을 지나와” 아직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하네. 별들이 우리를 떠난 게 아니라 우리가 마음이 변해서 별을 찾지 않고 있다는 거지. 맞는 말 아닌가.

별 보면 섧다// 첫새벽 볏바리 가는 소 눈빛에 어리고/ 저물어 돌아가는 어머니/ 호미날에도 비치던 그 별// 어둠의 거울이었던/ 고향집 우물은 메워지고/ 이제 내 사는 곳에서는/ 별에게로 가는 길이 없어// 오래 전부터/ 내가 소를 잊고 살 듯/ 별쯤 잊고 살아도// 밤마다 별은/ 머나먼 마음의 어둠 지고 떠올라/ 기우는 집들의 굴뚝과/ 속삭이는 개울을 지나와/ 아직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작년 가을에 제천 호숫가에서 어렸을 적 내 고향 골목길과 들판을 가득 메우고 있던 별들을 다시 만났네. 별들도 오랜만이라 반갑다고 내 가슴으로 확 쏟아져 들어오더군. 황홀한 순간이었지. 그래서 알았어. 현대문명이 싫어 떠난 별들이지만 멀리 가지 못하고 날마다 우리를 섧게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올 가을에는 인공의 빛이 전혀 없는 깊은 산속에 들어가 어린왕자와 그가 키우고 있는 장미를 만나고 와야겠네. 남은 세월 다시 돌아가야 할 고향인 하늘의 별들과 더 친해지고 싶거든. 그러면서 내가 영원히 거주할 별도 찾고.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는 어린왕자의 별에서 가까운 곳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