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16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대표가 16일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주문에 따라 ‘쌀값 폭락 지원 의무화법’으로 불리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범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에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 없는 날치기 처리였다”며 민주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상 뚜렷한 반대의 이유가 없어 궁색한 상황이다.

15일 이재명 대표는 본인의 SNS를 통해 “쌀값과 우리 농민의 삶을 지켜낼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첫 관문을 넘었다. 국민의힘이 전원 기권한 가운데 민주당 주도로 소위를 통과한 것”이라며 “국민의힘도 반대만 하지 말고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만큼은 함께 힘을 모아달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의 강행처리였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국민의힘이 협조하지 않았다’고 광고한 셈이다.

◇ 민주당‧농민‧도지사 한목소리로 ‘쌀 시장격리’ 요구

민주당은 꾸준히 ‘쌀값 안정화’에 집중해 윤석열 정부를 향해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정부가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면 양곡관리법을 개정하겠다고 예고해왔다.

이재명 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시장격리제도가 있는데 정부가 안 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민주당은 무엇을 할 수 있나”라고 물었고, 김성환 정책위의장은 “양곡관리법을 개정해서 (시장격리를) 의무화해야 하는데 정부·여당이 조응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80kg당 22만 3,000원에서 지금 15만원으로 떨어졌다. 대책을 세게 해야 할 것 같다. 기재부는 예산도 있을 텐데 왜 안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지금 당장 있는 예산을 집행은 안 하고 농민이나 농촌이 죽어가도록 방치하는데 약간의 의도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 대책을 단기적으로라도 급하게 세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농촌진흥청에서 금년도 작황 조사를 해 그걸 토대로 농림부에서 쌀 수급 안정 대책을 9월 말에 마련할 것”이라고 답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입장이다.

민주당은 곧장 행동에 나섰다. 15일 국회 농해수위 법안소위에서는 ‘시장격리 의무화’ 조항이 담긴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표결에서 기권하자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에는 현행 양곡관리법은 시장격리에 관한 규정이 있으나 임의조항이라 더 적극적인 시장격리를 위해서는 의무조항으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영록 전라남도 도지사를 비롯한 8명의 도지사들도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힘을 실었다. 이들은 국회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공공비축 물량 확대 △초과생산물량 신속한 시장격리 △논 타작물 재배사업 지원 정책 시행 △양곡관리법 개정 통한 쌀 수급 안정대책 의무화를 요구했다.

지방에서도 농민들이 단체 행동에 나섰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은 15일 전북도청 앞에서 대정부 투쟁 결의대회를 열고 나락을 청사 앞 대로변에 적재해 대정부 투쟁에 들어갔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산경남연맹은 함안 가야읍 소재 2,000여㎡의 논에서 다 익어가는 벼를 갈아엎으며 대정부 투쟁을 선언했다. 전남, 전북에 이어 세 번째로 벼를 갈아엎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에 쌀값 안정화를 요구한 내용의 SNS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에 쌀값 안정화를 요구한 내용의 SNS 캡처.

◇ 대통령 과거 발언으로 반박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단독 법안 처리에 제동을 걸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지금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믿고 여야 간 협치와 상생 정신을 저버린 채 각종 상임위에서 법안을 날치기 처리하고 있다”며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법안을 처리할 경우 대통령께 거부권을 행사하라고 저희가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권 원내대표는 “우리가 집권여당”이라며 “민주당에 의한 일방적 국회 운영에 저희는 절대 응하고 협조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국회 농해수위 여당 간사인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 또한 “김승남 (민주당) 간사는 합의, 공람되지 않은 대안을 여당 간사가 동의했단 식으로 소위 위원들에게 거짓으로 얘기하며 우리 당 의원들의 반대에도 날치기 통과를 시켰다”며 “국민의힘 농해수위 위원들은 민주당의 날치기 통과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 없이는 향후 농해수위 일정을 함께할 수 없다”고 동조했다.

하지만 전날 양곡관리법 개정을 요구한 도지사들 가운데 국민의힘 소속도 포함돼 민주당에서는 공연한 발목잡기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소위를 통과하자 곧장 전북으로 내려갔다. 이 대표는 16일 오전 전북 현장에서 최고위원회를 열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중심으로 소위에서 의무격리제도 도입이라는 법안이 통과됐다”며 “일각에서는 지나친 속도전 아니냐, 일방통행 아니냐고 말하지만 식량 안보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주곡 가격 유지를 위한 이런 활동에 여야가 어디 있겠냐”고 오히려 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본인의 SNS에 올린 ‘정부는 즉각 과잉 생산된 쌀을 매수해서 쌀값 하락을 막아야 한다. 또 미처 팔지 못한 쌀을 보관하느라 드는 비용이라도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라는 글을 가져와 “대통령 후보 때 이렇게 발언해놓고 지금은 어디 가서 뭐하느냐”고 질타했다. 또 국민의힘을 향해 “국민의힘은 쌀값 안정화를 반대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전북 김제시 농업인교육문화지원센터로 향해 농업단체 대표들을 직접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오다보니 여당 인사 한 분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건의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며 “저는 그러지 않으실 것이라고 본다”고 말하며 권 원내대표의 발언을 언급했다.

그는 “쌀값 안정이라고 하는 우리 국민 모두가 공감하는 일에 대해서 과거 대통령께서 후보 때 시장격리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상황과 시기에 따라서 말이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시장격리 자동개입 조항을 신속하게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말해, 과거 윤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압박했다.

한 야당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민의힘의 지지가 없는 상황에서 소위를 통과했기 때문에, 본회의에서 통과되는데는 분명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민주당이 이렇게 속도를 내는 것은 결국 정부‧여당을 움직이게 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33%까지 올랐지만, 박스권은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며 “여당의 내홍 또한 마무리 되지 못한 상황에서 민주당에 의해 민생을 외면하는 이미지가 쌓이게 둘 수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쌀값이 떨어지는 것을 손 놓고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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