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시민단체 “비정규직 노조 파업 불법으로만 규정… 사측 손배소로 정당한 요구 묵살돼”
재계·여당 “불법파업 면책으로 파업 과정 중 폭력‧파괴 행위 빈번 예상…재산권 침해도 우려”

지난 15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노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은주 의원실
지난 15일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노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은주 의원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이은주 정의당 의원을 포함한 정의당‧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 56명이 발의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노동계‧재계‧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등장했다.

노동계와 야당은 “사측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상대로 한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재계 및 여당은 “불법쟁위행위에 면죄부를 부여해 헌법상 기본권인 재산권을 침해하려 한다”며 맞서고 있다. 

앞서 지난 1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노동현장의 손배소는 하청과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집중돼 있다”며 “노동시장의 약자라 할 수 있는 하청과 특수고용, 플랫폼 등 비정형·간접노동자들의 노동3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노란봉투법’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올해 8월말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7월말 발생한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473억여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노조 임원을 상대로 473억여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어 현대제철은 작년 8월말부터 10월 중순까지 비정규직 노조가 당진제철소 통제센터를 불법 점거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이달 초 노조원 1인당 1,000만원씩 총 246억원여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이밖에도 2009년 5월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하면서 총 77일간 파업을 펼쳤던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은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관련 1‧2심에서 패소한 상태로, 현재 대법원 판결만 앞둔 상황이다. 

◇ ‘노란봉투법’, 원청에 사용자 의무 부여… 특수고용노동자 등 근로자에 포함

‘노란봉투법’의 주요 골자는 기존 사용자와 근로자의 정의 변경, 폭력‧파괴 행위를 제외한 정당한 쟁의행위에 손배소 제기 불가 등이다.

우선 ‘노란봉투법’에서는 노조법 제2조상 근로자를 ‘노무를 제공하고 해당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사람, 그밖에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 등’으로 규정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 등을 근로자에 포함시켰다.

또한 사용자를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이나 수행업무에 대해 사실상의 영향력 또는 지배력을 행사하는 자’로 정의해 원청에게도 사용자의 의무를 부여했다.

이와 함께 노동쟁의를 근로조건‧노동관계 당사자 사이의 주장의 불일치로 인해 발생한 분쟁상태로 규정해 노동쟁의의 대상이 되는 행위의 범위를 확대했다.

사용자가 손배소를 제기할 수 있는 쟁의행위는 ‘폭력‧파괴 등으로 인해 직접 손해가 발생한 경우’로 한정했고 쟁의행위 등이 노동조합에 의해 계획된 것일 경우 개별 근로자에게는 손배소를 청구할 수 없도록 했다.

또 근로자‧노조의 위법행위로 인해 직접 발생한 것이 아닌 손해도 손해배상 대상에서 제외했고 쟁위행위 등으로 손해배상 책임이 있더라도 노조의 존립이 불가능한 경우 손배소 청구를 허용하지 않토록 했다.

손해배상액의 상한은 조합원수‧조합비‧노조의 재정규모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아울러 손해배상 의무자는 법원에 감면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법원은 쟁의행위의 원인‧경과, 배상의무자의 재정상태 등을 고려해 감면할 수 있도록 했다.

◇ ‘노란봉투법 찬성’ 노동계·시민단체 “사측의 무분별한 손배소 노조의 정당한 요구 저해”

야당을 주축으로 ‘노란봉투법’이 발의되자 노동계 및 시민단체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양대 노총 중 한 곳인 민주노총 관계자는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쟁의로 인한 회사의 손실을 보전한다’는 당초 목적과 달리 노동자와 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가로막고 헌법에서 보장한 노동 기본권을 심각하게 제약·훼손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노란봉투법’을 통해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모든 노동자들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확대·보장하는 것이야 말로 사측의 악질적인 손배소 청구, 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는 필수적인 조치”라고 부연했다.

또 다른 양대 노총인 한국노총 관계자는 “그동안 사용자는 거액의 손해배상 및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한 경제적 압박으로 노조의 활동을 잠재우려 했고 노조원 개개인에 대한 손배소로 노조해산·내부분열 등을 유도했다”고 문제 삼았다.

이어 “올해 정기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반드시 입법화해 더 이상 노동자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관계자는 “현행 노조법 등은 헌법상 기본권에 속하는 노동 3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실제 하청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등은 원청과 단체교섭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이들의 단체행동은 항상 ‘불법파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또 그는 “이제라도 정치권에서 ‘노란봉투법’을 입법화하려는 시도가 있어 다행”이라며 “ILO(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에 따른 후속조치와 국제노동기준에 맞는 노동권 실현을 위한 차원에서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은주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과 함께 ‘노란봉투법’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뉴시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과 함께 ‘노란봉투법’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뉴시스

◇ ‘노란봉투법 반대’ 재계 “불법파업에 면죄부 부여… 사용자 재산권도 침해”

반면 재계는 ‘노란봉투법’이 불법파업에 면죄부를 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파업 과정 중 폭력‧파괴 행위가 빈번해 질 것이라며 강경하게 반대했다.

지난 14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재계‧경영계의 반대 의견이 담긴 서한을 전달했다.

당시 손경식 회장은 “‘노란봉투법’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법”이라며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된다면 앞으로 불법 쟁의행위까지 면책돼 사용자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곧 헌법에서 규정한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또 “불법 행위자가 피해자에게 손해를 입히면 이를 보상하는 것이 법 질서상 기본원칙”이라며 “‘노란봉투법’이 시행된다면 우리 경제의 근간이 심각히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이에 한발 앞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도 건의하겠다고 시사했다.

이동근 부회장은 최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강성 파업을 더욱 부추기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노조원에 속하지 않은 근로자도 함께 피해를 보게 된다”며 “만약 법안이 통과된다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경제 6단체 중 한 곳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19일 ‘균형적 노사관계 확립을 위한 개선방안’을 고용노동부에 건의했다.

개선방안에는 △쟁의행위 시 대체근로 허용 △직장점거 금지 △부당노동행위 제도 개선 △비종사근로자가 사업장 출입시 관련 규칙 준수 △단체협약 실효성 확대 △쟁의행위 투표절차 개선 △위법한 단체협약 행정관청의 시정명령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추광호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들과 달리 사용자의 방어권은 미흡해 노조의 쟁의행위가 발생하면 기업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노사갈등에 따른 산업피해를 최소화하고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면 국제 규격에 맞는 노조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노란봉투법’ 국회 통과 난항 예상… 국민의힘 “윤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 요구할 것” 

이처럼 노동계와 재계가 첨예하게 대립 중인 ‘노란봉투법’이 국회를 통과할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야당이 국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21대 국회 전반기 때와 다르게 모든 법안을 다루는 법제사법위원회의 위원장직을 국민의힘 소속 김도읍 의원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재계 등의 의견을 받아들여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높다.

15일 정의당이 ‘노란봉투법’을 발의하자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기업이 손배소를 제기할 수 없다면 노조의 이기주의적이고 극단적인 투쟁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냐?”며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을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장도 “‘노란봉투법’은 민주노총 방탄법”이라며 권성동 전 원대표 주장에 동조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노란봉투법’의 거부권을 요청하는 방안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회 재적 3분의 2 이상의 의원이 찬성해야만 재의결할 수 있다. 때문에 정의당‧더불어민주당 등을 포함한 야당의 단독처리는 불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7월 발생한 대우조선해양 파업사태 때 “산업 현장이나 노사 관계에 있어서 노든 사든 불법을 방치하거나 용인돼서는 안된다”며 불법파업에 대해 엄정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입법화를 위해 정의당을 포함한 야당 모두 공조해 적극 노력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정부‧여당의 극렬한 반대가 예상됨에 따라 법안 처리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야당의 ‘노란봉투법’ 입법시도는 경제위기 상황으로 현재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의 발목에 사슬을 채우는 행위”라며 “더군다나 이는 헌법으로 규정한 기본적인 재산권마저 부정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뒤이어 “정부‧여당은 민생을 더욱 어렵게 할 수도 있는 ‘노란봉투법’ 입법 저지를 위해 총력을 다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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