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애플‧퀄컴‧마이크로소프트‧AMD 등 글로벌 IT 기업 1,000여개와 거래
미국 등 주요국가 경쟁당국 반대 대비해 인텔 등과의 컨소시엄 구성 예상
증권가 “최대주주 소프트뱅크, ARM IPO 추진… 업체별 지분 확보 경쟁 전망”

영국 출장 중인 이재용 부회장이 ARM 인수를 추진할 지 여부에 이목이 집중됐다. /뉴시스
영국 출장 중인 이재용 부회장이 ARM 인수를 추진할 지 여부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뉴시스

시사위크=김필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국을 공식 방문하면서 삼성전자의 ARM 인수설이 또 다시 불거지고 있다.

지난 8일 멕시코와 파나마를 방문한 이재용 부회장은 최근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에 도착했다.

재계 등에 따르면 이재용 부회장은 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참석 이후 부산엑스포(EXPO) 유치를 위한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다만 반도체 업계는 이재용 부회장이 이번 영국 방문을 통해 ARM 인수를 논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내다봤다. ARM 인수시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 초격차’ 전략이 더욱 강화되기 때문이다.

◇ ARM, 모바일 AP 설계 분야 절대 강자… 세계 시장점유율 90% 

영국 케임브리지 지역에 본사가 있는 ARM은 칩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으로, 주로 컴퓨터와 모바일의 두뇌에 해당하는 CPU와 AP의 설계를 담당하고 있다.

당초 ARM은 1978년 케임브리지에서 설립된 PC 제조업체 ‘아콘(Acorn)’ 내에서 CPU를 설계·개발했던 그룹이었다. 이후 1990년 아콘과 미국 애플·VLSI이 조인트벤처(합작투자)를 통해 회사를 만들었는데 이 회사가 ARM이다.

2001년 아콘 폐업 후 분사한 ARM은 저전력 CPU 분야에 집중했다. 이를 눈여겨 본 애플은 자사의 포터블 미디어 플레이어 ‘아이팟’에 ARM의 CPU를 채택했다. 

2010년 스마트폰이 본격 등장하자 ARM의 AP 설계기술은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안드로이폰 모두에 적용됐다. 여기에 미국 펩리스(반도체 설계 후 파운드리에 생산 위탁) 기업 퀄컴은 ARM의 설계를 바탕으로 모바일용 AP 스냅드래곤을 설계·개발해 판매했다. 스냅드래곤은 과거 삼성전자의 갤럭시 S7 등에도 사용된 바 있다.

이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ARM은 현재 AP 설계 분야에서 전세계 시장 점유율 90%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를 올라 있다. 모바일 AP 설계과정에서 핵심기술인 ISA(명령어 시스템)가 필요한데 ARM은 ISA 분야 최고 강자이며 시장에서 ARM을 대체할 만한 경쟁사는 거의 없다해도 무방하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애플, 퀄컴 등은 아직도 ARM의 설계도를 바탕으로 각자 모바일용 반도체 칩을 재설계‧생산하고 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NVIDIA), AMD 등은 ARM이 보유한 지적재산권을 사용한 뒤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다. 

IT·반도체 업계 등에 의하면 ARM의 전세계 고객사는 약 1,000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갤럭시, 애플의 아이폰 등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 중인 스마트폰의 90% 이상, 태블릿 PC는 85% 이상이 ARM의 설계 기술이 적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5월 중순경 ARM은 2021년 회계연도(2021년 4월~2022년 3월) 동안 역대 최대 매출인 27억달러(한화 약 3조4,000억원, 당시 환율 기준)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년 매출 대비 35% 증가한 규모다.

같은 시기 라이선싱 수익은 전년에 비해 61% 증가한 11억3,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를, 로열티 수익은 전년 보다 20% 증가한 15억4,000만달러(약 1조9,000억원)으로 집계됐다.

◇ 좁혀지는 경쟁사와의 기술 격차…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초격차’ 전략 위협

삼성전자는 그동안 ‘반도체 기술 초격차’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 내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전략을 발표했다.

하지만 경쟁사들의 도약,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의 기술 격차, 중국의 ‘반도체 굴기’ 등은 삼성전자의 ‘반도체 기술 초격차’ 전략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미국 메모리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은 지난해 2020년 11월과 2021년 1월 각각 176단 낸드, 10nm(나노미터)급 4세대(1a) D램을 세계 최초로 양산했다고 발표했다. 올해 7월에는 세계 최초로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했다고 알렸다. 

또한 마이크론은 올해 안으로 10nm급 5세대(1b) D램을 세계 최초로 양산하겠다고 공언했다. 

전세계 낸드 시장 5위 업체인 마이크론은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는 기업으로 그동안 삼성전자에 비해 한 수 아래로 평가받았던 곳이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TSMC(대만 반도체 제조회사,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와의 격차도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대만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세계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1위는 TSMC로 53.6%를 차지했다. 2위를 기록한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16.3%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파운드리 분야에서 두 회사 매출도 크게 차이가 났다. TSMC는 올 1분기 175억2,9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반면 삼성전자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53억2,800만달러로 집계됐다. 

여기에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지난 2015년 이른바 ‘반도체 굴기(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를 천명한 중국은 자국 내 반도체 업체를 상대로 막대한 투자를 집행하고 있다.

지난 6월 블룸버그는 자체 집계한 통계 결과를 통해 지난 1년 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반도체 기업 20개 중 19개가 중국 기업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작년 중국 내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총 매출은 전년 보다 18% 늘어나면서 1조 위안(한화 약 193조원)을 넘어섰다. 

아울러 지난해 중국 반도체 기업이 사들인 반도체 제조장비 규모는 전년에 비해 58% 증가한 296억달러(약 39조원)를 기록했다.

최근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기 위해 이른바 ‘칩4동맹(미국‧대만‧일본‧한국)’ 체결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중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점을 고려해 업계는 이재용 부회장이 ARM 인수를 적극 검토할 것으로 예상했다 .

펫 겔싱어 인텔 CEO가 ARM 인수를 위해 삼성전자와 컨소시엄을 구성할 가능성이 제기됐다./뉴시스
인텔과 삼성전자간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 구성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진은 펫 겔싱어 인텔 CEO/뉴시스

◇ ‘독점 우려’ 미국·영국 등 주요 국가 경쟁당국 반대 최대 걸림돌

이재용 부회장이 ARM 인수를 추진한다고 해도 현실은 만만치 않다.

먼저 ARM의 인수가액이 우리 돈으로 1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현금성자산 125조원(올 1분기 기준)을 동원하면 충분히 인수 가능하나 현재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 등을 고려하면 다소 부담이 되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가 사실상 ARM 인수에 나설 경우 반도체 시장 최대 이슈로 떠올라 인수가액은 더 오를 수도 있다.

실제 지난 2020년 9월 엔비디아는 ARM을 400억달러(약 47조원)에 인수하려 했으나 인수 추진 과정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임에 따라 거래규모는 660억달러(약 79조원)까지 올라간 바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ARM 인수에 나설 경우 가장 큰 걸림돌은 세계 주요국가 경쟁당국과 경쟁사들의 반대다.

지난 2020년 엔비디아가 ARM 인수를 추진하자 인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퀄컴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일제히 기술 독점을 우려했다.

또한 ARM 창립자 중 한 명이었던 헤르만 하우저도 2020년 9월 “두 회사의 M&A가 영국의 기술 주도권에 치명적 피해를 입히고 더 나아가 ARM 자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주요 국가들의 경쟁당국도 두 회사의 M&A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작년 7월 영국 경쟁시장청(CMA)은 엔비디아와 ARM 간 M&A 관련 1단계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심각한 독과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문제삼았다.

뒤이어 같은해 연말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역시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경쟁을 저해하고 반도체 산업 내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며 반대 소송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결국 지난 2월 초 엔비디아와 ARM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는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양사의 선의에도 각국 규제로 거래를 완수할 수 없는 중대한 제약 사항이 발생했기 때문에 인수·양도 계약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 컨소시엄 구성 통한 인수 추진 VS ARM 상장 이후 지분 인수

한편 일각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과거 실패 사례를 거울삼아 단독 인수 보다는 인텔 등이 참여한 글로벌 컨소시엄을 구성해 ARM 인수에 나설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2월 중순경 펫 겔싱어 인텔 CEO는 외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ARM 인수 컨소시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후 지난 5월 30일 겔싱어 CEO는 한국을 찾아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양사 간 반도체 분야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업계는 이때 겔싱어 CEO와 이재용 부회장이 ARM 인수를 위한 컨소시엄 구성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반해 증권가는 삼성전자가 무리하게 ARM 인수를 추진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인텔이 ARM 인수 의사가 있기는 하나 컨소시엄을 당장 구성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며 “ARM 최대주주인 소프트뱅크가 최근 쿠팡 등 투자기업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역대 최대 규모인 약 30조원대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소프트뱅크는 ARM의 미국 뉴욕 증시 상장을 속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RM의 IPO가 성사되면 각 반도체 기업들의 지분 확보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전자는 ARM 인수냐 향후 지분 확보냐를 두고 여러 대안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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