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빌 게이츠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뉴욕 한 빌딩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빌 게이츠 빌앤멜린다게이츠재단 이사장과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영국·미국·캐나다를 순방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또 논란에 휩싸였다. 순방 초기 영국에서는 ‘조문 없는 조문 외교’라는 비판을 받더니, 미국에서는 한일·한미정상회담이 당초 예고된 것과는 달리 잠시 ‘만남’에 그쳤다는 것이다. 또 윤 대통령의 일정이 수시로 변동되는 모습도 보였고, 급기야는 비속어를 섞은 ‘막말’까지 나왔다. 

◇ 대통령의 외교 일정 ‘수시로’ 바뀌다

처음부터 석연치 않았다. 외교 일정은 통상 상대국과의 관계를 위해 동시에 발표한다. 그런데 지난 15일 대통령실이 한미·한일정상회담을 발표했을 때, 정작 미국과 일본에선 발표가 없었다. 오히려 일본은 불쾌감만 드러냈다. 실제 한미 정상은 ‘48초’ 환담, 한일 정상은 ‘30분’ 회담을 했고 그나마도 한일정상회담은 일본에서 ‘간담’(懇談)이라고 보도됐다. 정식 회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사전 브리핑을 통해 알려준 일정이 계속 변동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순방 초기에 야권으로부터 ‘조문 없는 조문 외교’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조문이나 참전용사 국민포장 수여식도 현지 일정으로 인해 예정된 것보다 하루 밀렸다.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현지 교통상황 때문’이라고 해명했고, 수많은 국가가 한꺼번에 영국에 몰린 상황인 점을 감안해도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었다. 

경제 외교·세일즈 외교 일정으로 마련된 K-브랜드 엑스포와 한미 스타트업 서밋 행사에 불참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이 자리에 불참한 것은 갑작스럽게 조 바이든 대통령 주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했기 때문이다. 앞서 대통령실 핵심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경제 일정에 대해 “대통령이 세일즈맨이 돼 (투자)유치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윤 대통령의 불참으로 의미는 퇴색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 일정이 갑자기 생긴 것도 석연찮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원래 회의 참석 대상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의에 초청을 받게 됐고, 해당 행사에서 짧은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지난 5월 바이든 대통령 방한 때 윤 대통령에게 글로벌 펀드 참여를 요청한 바 있었다. 그럼에도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던 것은 의아한 대목이다. 

◇ 한미회담이 48초 조우?

다시 한미·한일정상회담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 15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두 회담에 대해 어떻게 예고했는지 살펴보면 “워낙 많은 나라가 참여하고, 또 다양한 부수 외교 일정이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정상회담 일정이 유동적이기는 하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현재로서는 한미 정상회담, 한일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해 놓고 시간을 조율 중에 있다”고 밝혔다. 

같은날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도 “미국·일본과는 양자회담을 하기로 일찌감치 서로 합의해 놓고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강조했다. 통상 외교 일정은 양국이 만나기로 ‘확정’됐을 때 발표하는 게 관례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한미·한일정상회담은 확정적으로 열리는 것으로 인식됐다. 

두 회담이 열리기로 했던 21일(뉴욕 현지시간) 새벽까지도 정상회담 일정은 제대로 공지되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그럼 만나지 말자’는 반응을 보였다는 보도에도 대통령실은 반응을 극도로 자제했다. 

결국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진행된 한일 정상 간 만남은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 관련 회의가 열린 빌딩에 찾아가서 이뤄졌다. 일본의 무례한 반응에도 대응을 자제하다가 기시다 총리가 참석한 행사 장소에 찾아간 셈이다. 이러니 야권에서는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나왔다. 기시다 총리와의 만남은 뉴욕에 동행한 순방기자단에도 미리 공지하지 않아, 회담장에는 한국 취재진은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다. 

또 한미정상회담은 아예 이뤄지지 않았다. 대통령실은 분명히 사전에 ‘얼굴을 마주 보고 진행하는 양자 회담’이라고 설명했는데, 현실은 달랐다.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만남은 ‘양자회담’이라고 할 수도 없고, ‘약식회담’조차도 되지 못했다. ‘48초의 조우’에 가까운 것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뉴욕 일정이 축소되면서, 한국과의 회담 일정도 바뀌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대통령의 외교 일정이 사전에 발표된 일정과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48초와 30분. 이 시간 동안 어떤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이번 순방의 가장 핵심 일정이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고,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YTN ‘뉴스Q’에 출연해 ”(사전에) 발표한 것이 제대로 안 된 것에 대해서는 외교적으로 준비했던 외교부라든지 이런 준비 부서가 그건 책임을 물어야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 타국 의회 겨냥한 비속어 막말 사태

이 와중에 윤 대통령의 ‘비속어 막말’ 사태가 벌어졌다. 윤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이 초청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X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 

미국이 글로벌펀드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예산을 움직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글로벌펀드는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그렇기에 ‘미국 의회’(국회)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 바이든 대통령의 체면이 깎일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문제는 행사장을 나서는 길에서 일어났다. 아직 타국 정상 등 여러 주요 인사들이 모여 있는 데다 카메라 취재도 진행 중인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이같은 말을 했고, 이는 취재 중인 카메라에 그대로 포착됐다. 이에 해당 영상은 바로 온라인 상에 퍼졌고, 관련 보도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현실과 동떨어진 해명만 내놓았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무대 위에서 공적으로 말씀하신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말씀으로 얘기한 것을 누가 어떻게 녹음을 했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 진위 여부도 판명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사적 발언에 대해 외교적 성과와 연결시키는 것은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해당 발언은) 공적 발언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로 사적 발언이라 한 것”이라며 “그것을 어떤 회담과 관련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신 게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적절치 않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또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해당국(미국) 의회 인사들이 불쾌할 수 있다는 지적에는 “그 해당국이 어떤 나라를 얘기하는 지 잘 모르겠다”며 “글로벌펀드 공여금은 미국 의회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알고 있다. 우리가 3년간에 걸쳐 1억불을 공여하는 것과 미국 의회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야권은 즉각 비판에 나섰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과 김홍걸 무소속 의원은 22일(한국시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참사를 넘어선 대재앙 수준의 사건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같은날 오전 정책조정회의에서 “빈손, 비굴 외교에 이어 막말 사고 외교로 국격이 크게 실추됐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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