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쌀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산지 쌀값이 관련 통계 조사 이래 가장 큰 하락폭을 보이자 정부가 쌀 값 안정화를 위해 1조원 가량을 들여 45만톤에 이르는 쌀을 사들이기로 했다. /뉴시스
26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쌀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산지 쌀값이 관련 통계조사 이래 가장 큰 하락폭을 보이자 정부가 쌀값 안정화를 위해 1조원 가량을 들여 45만톤에 이르는 쌀을 사들이기로 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선민 기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26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를 주장하는 가운데, 국민의힘이 안건조정위원회라는 카드를 빼들며 일시적으로 저지한 셈이다.

국회 농해수위는 이날 오후 3시 전체 회의를 예고했지만,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토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 상정을 두고 여야가 충돌하면서 한 시간 이상 회의가 지연됐다. 이양수 국민의힘 농해수위 간사는 전체회의가 개의된 후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지금 양곡관리법에 대해 보다 깊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며 안건조정위원회 구성 요구서를 제출했다.

이에 소병훈 농해수위 위원장은 “국회법 57조 2항에 따른 안건조정위원회 회부 요청이 있었으므로 안건을 안건조정위원회로 회부하겠다”며 정회를 선포했다. 안건조정위원회는 의견차가 있는 법안을 다수당이 강행 처리하는 걸 막기 위해 최장 90일간 법안 심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 정부, 역대 최대 시장 격리 결단

쌀값은 지난해 10월부터 꾸준히 하락해 지난 15일 기준 20㎏당 4만725원까지 떨어졌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4.9%가 더 떨어졌으며, 통계가 작성된 1977년 이후 최대폭 하락이다. 이에 민주당은 ‘7대 우선추진 민생법안’에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포함시키고 이재명 대표의 지휘 아래 빠르게 추진해왔다.

하지만 농식품부는 공급과잉과 재정부담 문제를 들어 개정안에 반대 의사를 밝혔고, 국민의힘에서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포퓰리즘성 정책으로 규정하고 총력 저지하고 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양곡관리법에 대해 “양곡관리법을 바꾸면 잉여 농산물이 나올때마다 정부가 매번 다 사줘야되는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농사는 하늘이 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최소한의 개입을 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여당은 25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수확기 쌀 수급안정대책’ 브리핑을 통해 “올해 예상 초과 생산량인 25만톤 보다 20만톤 많은 총 45만톤을 시장에서 격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공공비축미 45만톤을 포함하면 올해 수확기에는 총 90만톤이 시장에서 격리되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시장격리 물량도 공공비축 물량도 역대 최대규모다.

김인중 농식품부 차관의 브리핑에 따르면 구체적인 계획으로는 우선 수요조사에 나선 후 매입 계획을 수립해서 시행하면 10월 20일 전후부터는 공공비축과 함께 시장 격리곡도 매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김 차관은 “이번 시장격리 조치를 통해 지난해 수확기 이후 큰 폭으로 하락한 쌀값은 적정 수준으로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향후 농식품부는 쌀값 및 쌀 유통시장 동향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수급 상황에 맞는 대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쌀값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근본적 대책’ 있어야 한다는 농민들

하지만 농민단체에서는 근원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은 26일 논평을 통해 90만톤 규모의 수매를 환영하면서도 “하지만 정부여당의 농정방향은 한 치도 달라진 것이 없다. 어제의 발표는 유례없는 쌀값폭락으로 농민들의 항의 투쟁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자 자칫 그 불길에 휩싸여 화상이라도 입지 않을까 두려워 내놓은 임시 수습책일 따름”이라고 근본적 대책을 요청했다.

전농은 “정부 발표가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으려면 오늘날 쌀값폭락을 불러온 양곡정책의 실패를 바로잡을 양곡관리법 개정 문제, 40만8,000톤에 달하는 막대한 수입쌀 문제에 대해 단 한마디라도 언급하고 이에 대한 대책도 내놨어야 한다. 또한 생산비 급등에 따른 농민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도 함께 내놨어야 한다”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장격리는 단순 미봉책일 따름이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일단 내놓은 대책은 신속하게 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 발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지금이야말로 쌀값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종합적인 쌀 대책이 마련돼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민주당도 이에 힘을 실었다. 같은 날 안호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정부 여당이 쌀값 안정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지만, 미봉책이라는 평가를 벗어나기는 어렵다”며 “지금의 쌀값 폭락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제도보완을 해야 한다”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안 대변인은 “민주당은 장기적인 쌀값 안정대책으로 선제적인 생산 조정과 사후적인 시장격리 제도를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양곡관리법 개정을 반대하며 농민의 생존권을 발목 잡고 있다”며 “선제적 생산 조정과 사후적 시장격리를 병행하면 쌀의 과잉생산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재정부담도 완화할 수 있다”고 문재인 정부의 쌀값 관리 사례를 들었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타들어 가는 농민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지금이라도 양곡관리법 개정에 적극 동참하기 바란다”며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의 의지를 밝혔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취임 후 첫 주문으로 양곡관리법 개정안 통과에 대한 총력전을 예고한 만큼, 일시적 미봉책에 넘어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에서 안건조정위원회 카드로 양곡관리법 개정안 처리에 일시적 제동은 걸었지만, 민주당의 강행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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