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디지털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난 8월 말 KBS는 추적단 불꽃과 경찰이 ‘엘 대화방’의 주요 가담자를 쫓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피해자는 지난 N번방보다 더 어리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연미선 기자  지난 2020년 조주빈의 범죄가 드러나며 우리 사회는 분노했다. 이후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된 지 1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특히 어린 피해자들이 점점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 ‘미성년’ 피해자 증가… ‘왜’

지난 8월 말 KBS는 추적단 불꽃과 경찰이 ‘엘 대화방’의 주요 가담자를 쫓고 있다고 보도했다. ‘엘 대화방’은 N번방 사건 직후 생긴 성착취 텔레그램 방 중 하나다. ‘엘 대화방’은 하나의 텔레그램 방을 이용했던 N번방과 달리 산발적으로 열렸다가 닫힌다. 증거를 수시로 없애기 위해서다. 심지어 피해자 연령층은 더 낮아지고 범행은 더 잔인해져 국민의 공분을 샀다.

지난 4월 한국여성진흥원은 2021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운영 실적을 발표했다. 실적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지원을 요청한 피해자 수는 총 6,952명으로 연령을 밝히지 않은 46.4%(3,229명)를 제외하고 10대 피해자가 21.3%(1,481명)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20대 피해자가 21.0%(1,461명)로 뒤따랐다.

특히 미성년 피해자는 △2018년 8.4%(111명) △2019년 15.4%(321명) △2020년 24.2%(1,204명) △2021년 21.3%(1,481명)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연령을 밝히지 않은 피해자가 매해 4~50%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실제 미성년 피해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성년 피해자가 증가하는 것은 디지털 기술과 관련이 있다. 1020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불릴 만큼 정보통신 환경과 친밀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성장해온 이들에게 온라인은 더 이상 가상세계가 아니라 물리적 세계와는 또 다른 현실세계다.

디지털 성범죄 수사공조 및 입법제안 등의 활동을 하고 있는 비영리단체 ‘리셋(ReSET: Reporting Sexual Exploitation in Telegram)’은 본지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성년 피해자 증가세에 대해 “디지털 기기와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이용 연령은 낮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쉽고 거부감 없이 디지털 세계에 몸을 담그게 되는 것에 비해 기성세대가 디지털 세계 속 아이들의 문화에 무지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리셋은 이 상황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성폭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게 돼 디지털 세계에서 성범죄에 노출되는 피해 연령층은 더욱 낮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 “부모에게 알리겠다” 말에 ‘신고 포기’하기도

디지털 성범죄 미성년 피해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경찰수사규칙으로 인해 피해자가 신고를 포기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 

현행 경찰수사규칙 제11조에는 수사 진행 상황이나 수사 결과 통지에 대해 ‘고소인‧고발인‧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당 규정에 따라 경찰은 미성년 피해자 수사 시 법정대리인인 부모에게 알리겠다고 통보한다.

청소년 인권 전문가들은 이런 경찰의 통보를 미성년자는 위협으로 느낀다고 보고 있다. 십대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성범죄 피해자인 피해아동‧청소년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보호자에게 알린다는 경찰이나 가해자의 말을 협박으로 인식한다. 일반적으로 ‘부모에게 알리겠다’는 말이 보호보다는 비난과 질책의 의미로 더 크게 다가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스스로 보호자에게 알리기 전에 제3자에 의해 알려지는 것을 거부하고는 한다.

일각에서는 수사관의 보호자 통지가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행정적 편의를 우선시한 수사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경찰수사규칙 제11조의 4항에 따라 △고소인등이 통지를 원하지 않는 경우 △사건관계인에 대한 보복범죄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 법정대리인 등에게 통지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경찰이 임의로 통지를 결정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십대여성인권센터 법률지원단은 해당 경찰수사규칙에 대해 “아동‧청소년의 경우 법정대리인에게 통지하도록 의무를 부여한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짚으며 “피해자에게 통지한다면 법정대리인에게 통지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신고가 있어야만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다. 이에 십대여성인권센터는 정확하지 않은 보호자 통지 사항으로 아동‧청소년이 범죄 피해 신고에 주저하지 않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리셋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리셋은 해당 규칙에 대해 “신고 접수 이후 수사를 진행하기 위한 절차에서 법정대리인이 권리를 행사하는 것들이 상당부분 차지한다”며 “주 양육권자 외의 법률대리인‧피해상담사 등 신뢰관계자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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