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실에서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회의실에서 국정감사가 열리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국정감사 첫날인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장은 파행에 파행을 거듭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참사’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반면 이를 막아서는 국민의힘의 노력이 맞부딪히면서다. 여야 간 힘겨루기 속에 반나절 가량 국정감사는 단 한 번의 질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정쟁 속에 ‘알맹이 없는 국감’만 되풀이한 셈이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국회 외통위 국정감사는 화약고 그 자체였다.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참사’라고 지적한 민주당이 이미 피감기관인 외교부에 대한 송곳 검증을 벼르고 나섰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달 29일 민주당이 단독으로 처리한 박진 외교부 장관에 대한 ‘해임 건의안’을 윤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야당의 분노는 고조됐다. 외교 현장에서 ‘국격이 실종’ 됐음에도 어느 누구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게 비판의 본질이다.

화살은 즉각 박 장관을 향했다. 민주당은 이날 외통위 증인으로 참석한 박 장관의 출석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야당 외통위 간사를 맡고 있는 이재정 민주당 의원은 회의 시작부터 “국회의 권위와 헌법정신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박 장관에 대한 회의장 퇴장을 요구하는 것이 민주당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에서 해임 건의안이 가결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의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당 외통위 간사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박 장관은 윤 대통령과 함께 이번 해외 순방에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며 “(민주당은) 이걸 갖고 빈손외교, 외교참사라고 얘기하며 열심히 일하는 장관에 대해 일방적으로 해임건의안을 통과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교부의 수장이 이 자리에서 우리 외교 정책과 성과를 소상히 국민에게 설명드리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민주당의 요구를 일축했다.

◇ 민주당 “굴욕적 외교” 국민의힘 ‘발끈’

국민의힘은 이같은 민주당의 태도가 ‘일방적 정치공세’라고 비판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말끝마다 외교참사 운운하는데 민주당의 억지에 의한 국익 자해참사인지는 국민들이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다수 의석 점유했다고 윽박지르는 게 정치공세지 국회의원의 자세인가”라고도 쏘아붙였다.

반면 민주당은 국정감사 시작 전에 정부 측이 외교 참사에 대한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야당’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명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여실히 드러냈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똑같은 일 했다면 국민의힘 의원들은 아무 일 없이 넘어가겠나”라며 “단 한마디 사과를 듣지 않고 그냥 정상적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 진행해야 하는가”라고 지적했다. 

이번 외교 논란이 대통령실과 외교부의 ‘준비 부족’에서 기인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날을 세웠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 조문하면서 왜 직접 참배를 생략했는가에 대해서 지난 위원회에서도 지적했고, 한미‧한일정상회담 두 가지 모두 실패했다”며 “이런 굴욕적이고 대통령으로서 정상이라고 할 수 없는 정상 외교하고 왔는데 야당에서 이런 문제 제기하기 전에 외교라인 책임 물어야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의원의 ‘굴욕적’ 발언은 즉각 공방의 씨앗이 됐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저하고 그제 일본 같이 다녀올 때도 그렇게 느꼈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실을 왜곡하고 선동하지 말라”며 “국감을 이렇게 난장으로 만들 건가”라고 쏘아붙였다.

여야의 공방이 극에 달하면서 오전 외통위는 개회 30여 분만에 정회를 선언했다. 회의가 오후 2시에 재개되고, 일단 박 장관의 ‘출석 여부’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여전했다.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오전 감사에서 정진석 의원의 발언을 거론하며 “지난주 초에 (정 의원과) 일본에 방문한 것은 맞다만 정 의원과 제가 일본 기시다 총리를 함께 만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정 의원님께서 사과를 하시든 다른 표현을 하시든 터무니없는 공세를 편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가 정회 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가 정회 된 후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뉴시스

◇ ‘비속어 영상’ 상영 놓고 다시 파행

공방은 또 다른 지점에서 불이 붙었다. 김홍걸 무소속 의원이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 영상을 상임위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에 윤재옥 위원장이 ‘여야 간사 협의 사항’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여태까지 모든 국감하면서 상임위 단위에서 영상이든 PPT든 필요한 것은 다 틀었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상민 의원은 “협의사항이 아니고 위원장이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전 국회의장 출신인 박병석 민주당 의원도 “본회의장에서는 영상은 틀 돼 소리는 안 들리게 하지만 상임위에서는 영상과 소리를 같이 트는 게 관례”라고 힘을 실었다.

하지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이 해당 영상이 ‘부적절할 경우’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면서 사태는 더 악화됐다. 민주당 의원들은 개별 의원의 ‘의정 활동’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문제가 될 만한 영상일 수 있다’(는 발언은) 동료 의원이 준비한 영상을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는 건가”라며 “간사의 권한을 넘어선 위험한 발언”이라고 쏘아붙였다. 조정식 민주당 의원도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나. 사전 검열하겠다는 것 아닌가”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항의했다.

공방이 지속되는 가운데 윤 위원장은 “의원님들의 의정활동을 제한할 의사가 추호도 없다”면서도 “다만 여야 간 입장차이가 있기 때문에 논의해 달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면서 회의는 한 시간 여 만에 재차 정회했다. 

한편, 여야의 날 선 공방 속에서 박 장관은 “저의 거취는 임명권자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며 사퇴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날 오후 속개된 국정감사 인사말에서 “평생 소신으로 외교는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되며 국익을 위해 초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장관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의 ‘외교 참사’ 주장에 대해서도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5개월간 우리 외교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번 순방 행사가 외교 참사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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