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오전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장에서 열린 2013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문재인 위원이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이 국정원 댓글의혹 사건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트위터 퍼나르기와 관련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문 의원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불공정한 선거’로 규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는 23일 ‘박 대통령의 결단을 엄중히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지난 대선이 불공정했고 미리 알았든 몰랐든 박근혜 대통령은 그 수혜자”라며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의원은 또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면서 “박 대통령은 직시해야 한다. 본인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회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처해 있는 이 엄중한 사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며 “박 대통령이 문제 해결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즉각 실천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국정원과 경찰은 물론 군, 국가보훈처까지 대선에 개입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났다”며 “국정원의 대선개입 정도는 기소된 것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게 확인됐고, 군사독재 시절 이후 찾아보기 어려웠던 군의 선거 개입은 경악스럽다”고 말했다.

문 의원이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은 ‘대선의 불공정’이란 부분이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 ‘대선 불복’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새누리당이 문 의원의 성명서 발표 직후 ‘대선 불복론’을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성명서를 발표한 문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대선 불복’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문 의원은 기자들에게 “선거 다시 하자는 것은 아니다”며 “왜 자꾸 선거 불복을 말하며 국민들과 야당의 입을 막으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대선 개입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정원을 개혁하라는 국민과 야당의 당연한 목소리까지 대선 불복이라며 윽박지르고 있다”면서 “민주주의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민주당 지도부도 문 의원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나서서 이 문제를 거론하기엔 상당한 부담이 따랐다. 새누리당에서 ‘대선 불복’ 문제를 이슈화 하면 되레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대선후보였던 문 의원이 이 문제를 공식 제기함으로써 국정원 댓글 사건과 군 대선 개입 문제 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설령 국민들에게 ‘대선 불복’으로 일부 비쳐질지라도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2013 국정감사에 참석하기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문 의원은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및 수사 압력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며 '박 대통령의 결단을 엄중히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SNS에 게재, "지난 대선이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불공정했다. 박 대통령의 문제 해결을 위한 결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은 이미 끝났고 박 대통령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다. 이 문제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 뿐 아니라 국회의원 선거와 차기 대선에서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관권선거’의 악령을 이 기회에 확실하게 청산하겠다는 게 민주당 지도부의 생각이다.

또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문 의원도 ‘자신이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위험을 무릎쓰고 입을 연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의 갖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되찾지 못했다’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불만을 일부 잠재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사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선에서 패배하자 한동안 ‘멘붕’을 겪었다. 어렵기는 해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자 민주당이 패배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실망은 곧바로 ‘분노’로 바뀌었다. 유리한 국면에서도 승리하지 못한 당시 대선후보였던 문 의원에게 불만이 표출됐던 것.

하지만 국정원과 군 등이 나서 불법선거를 조장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자 문 의원도 ‘정면승부수’를 던지게 됐다.

국정원장 교체와 선거에 개입한 사람들의 처벌을 통해 일정 부분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면죄부’를 받고자 하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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