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 10월 1일부터 16일까지 미국 연방 정부의 일부 기능이 폐쇄된 셧다운(Shutdown) 사태와 채무불이행(Default)의 위기에 관해서는 들어봤겠지? 오버마의 건강보험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하고 대법원에 의해 합헌 결정이 난 후에도 공화당이 계속 반대하는 것을 보면서 저들은 왜 예산안까지 합의해주지 않으면서 정부의 발목을 잡는지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보험이 없는 나라가 선진국들 중 미국이 유일한 나라인 건 자네도 알고 있겠지?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미국이라면 무조건 좋게 보는 분들이 많아서 미국이 우리도 실시하고 있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 믿지 않을 사람들도 많을 것일세. 공화당에서 반대하는 ‘오바마케어’는 지금까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약 5,000만 명(미국 인구의 16.3%)의 사람들에게도 내년 1월 1일부터 건강보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지. 그래서 내년 예산에 그 비용이 반영되어야 하는데 그걸 공화당이 반대하니 예산안을 합의할 수 없었네. 전체 국민이 모두 혜택을 보는 의료보험제도를 공화당은 왜 반대하는지 궁금하지? 여기서 이념의 문제가 등장하네.

많은 학자들과 보수 언론들이 이제 이념은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미국의 셧다운이 이념의 문제라니 조금 혼란스럽지? 자네도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말은 들어봤겠지. 쉽게 말하면,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니 아무런 쓸모가 없다는 뜻이야.

1950년대 말에 다니엘 벨 같은 자유주의적인 사회과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기 시작했다가 1968년 있었던 전 세계적인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시위로 꼬리를 내렸지만, 1990년대에 동구권의 멸망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네. 프란시스 후쿠야마 같은 정치학자는 자유주의가 사회주의를 누르고 승리했으니 이제 이념은 필요 없다는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기도 했지. 이른바 세계적인 석학이 그런 주장을 했으니 우리 기득권 세력들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우리나라의 보수 언론과 학자들도 90년대부터 이런 이데올로기 무용론을 열심히 전파하고 있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고.

그런데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인 미국에서 철지난 이데올로기 논쟁이라니 뭐가 좀 이상하지 않는가? 이데올로기가 뭔가? 한 집단이나 개인의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게 이념이지. 게다가 어느 사회나 하나의 공동체를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사고체계가 필요하다네. 물론 옛날에는 공포나 폭력, 또는 종교가 그런 역할을 했었지. 하지만 개인들이 자신의 양도할 수 권리를 주장한 근대가 시작되면서부터는 그런 식으로는 사회유지가 어려워졌다네. 그래서 지난 300여 년 동안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등 다양한 이데올로기들이 출현하게 되었다네. 이 정도면 이념이란 게 내가 싫다고, 아니 뭔지 모른다고, 나랑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도 아니란 걸 짐작하겠지? 우리가 자주 듣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것도 근대 이후 나타난 다양한 이념들 중 하나이거든.

그러면 이번 미국의 셧다운이 왜 이데올로기의 문제일까? 미국의 공화당은 개인의 권리를 극대화하고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소극적 자유’를 중시하는 정당이지. 여느 보수 정당과 마찬가지로 공화당 안에는 많은 분파가 있는데 요즘 미국 공화당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집단이 티파티(Tea Party) 계열이지. 1773년 영국의 조세정책에 항의해서 보스턴 항구에 차가 담긴 상자를 내던졌던 ‘보스턴 티파티’ 사건에서 따온 이름이라는 건 자네도 금방 알겠지. 그들은 연방정부가 국민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이라네. 그래서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의료 행위에 국가가 부자들에게서 빼앗은 세금을 갖고 개입한다는 것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공적 보험의 확대는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고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는 거야. 국가나 사회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에게 전국민의료보험체제는 사회주의적인 제도로 보일 수밖에 없지. 그래서 그들은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라고도 비판한다네. 우리나라의 극우주의자들이 DJ를 빨갱이라고 비판했던 것과 비슷해. 요즘 우리 사회에서 조금만 개혁적인 이야기를 해도 ‘종북’이라고 매도하는 것과도 비슷하고. 아마 그런 사람들의 눈에는 내가 자네에게 하는 이런 말도 우습지만 ‘종북스럽다’고 말할지도 몰라.

이념이라면 이해하기도 어렵고, 자신의 삶과 별로 관련이 없는 형이상학적인 뜬구름 잡는 헛소리로만 생각하며 살아온 자네에게 미국연방정부의 셧다운을 이념의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내 편지가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날마다 먹고 사는 행위 자체가 이념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말게. 기득권을 가진 세력들이 올바른 역사, 경제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교과서 개편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가 뭐겠나?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주는 이념이 뭔지 알고 있는 거지. 서민이나 중간층들은 이념은 시대에 뒤떨어진 폐물이라고 그들로부터 배운 것을 그대로 믿고 있고…. 세상 우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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