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 보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골목길에 뻥튀기 기계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요새는 싹 없어졌다. 어디로 갔는가 봤더니 다 청와대로 갔다고 한다.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현실은 웃을 수만도 없다. 경제민주화-이것도 ‘뻥’이고, 중증질환 국가보장-이것도 ‘뻥’이고, 반값등록금도 ‘뻥’이고, 급기야 기초연금도 '뻥'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TV 토론 마지막 날 "모든 어르신에게 20만 원씩 드리겠습니다."고 박근혜 후보가 약속하자 문재인 후보가 재원 없이 어떻게 할 수 있느냐고 받으니 이에 대해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되받았던 장면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게 '뻥'이 되고 말았으니 이제 더는 신뢰니 원칙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년 대선은 복지 대전이었다. 대한민국의 현실, 65세 이상 어르신 가운데 만 명 중에 여덟 명이 자살한다. OECD 국가 평균이 만 명 중 한 명이 자살하는데, 대한민국 어르신은 여덟 배가 넘게 자살한다.

대도시 시내버스는 첫 차가 새벽 4시에 출발한다. 전국 방방곡곡 어디서나 첫 버스가 두 번째, 세 번째 정거장에 가면 다 만원이다. 모두 어르신이다. 다 어디 가시는가 했더니 청소하러 가신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첫 버스 타고 병원 청소, 학교 청소, 빌딩 청소하러 가신다. 이렇게라도 해야 호구지책이 되는 것이다. 전국에 40만 명이 청소하시는 어른이다. 이게 이분들이 젊은 시절 기다렸던 미래는 아니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65세 이상 615만 노인 중 45%, 백 명 중 마흔다섯 명이 의식주에 위협을 받는 빈곤층이다. 그래서 작년 대선에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을 복지국가로 끌고 가겠다, 경제민주화를 하고 적극적 복지정책을 하겠다."라고 했는데 국민이 깜빡 속은 거다. 많은 사람이 여기에 분노한다.

분명히 해 둘 것은 야당인 민주당 책임도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도 반성해야 한다. 사실 복지국가 비전은 민주당 당헌과 강령에 있다. 당헌에 ‘민주주의, 인권, 평화, 보편적 복지가 당의 목적’이라고 되어 있다. 자랑을 하자면 3년 전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당헌 개정안을 제출하고 이것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사람이 정동영이었다.

요즘은 없어졌지만, 옛날에 집에 누군가 밥을 얻으러 찾아오면 식구들 밥에서 덜어 주었다. 이런 게 동정심 복지고, 자선 복지라면, 찾아온 이를 위해 식탁에 의자를 놓아 주는 것이 권리로서의 보편 복지 철학이다.

어쨌든 경제민주화가 당 강령 1조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재산조차 못 지킨 작년 총선 대선이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구호는 박근혜 후보 차지가 되고 말았다. 민주당이 뺏겨 버린 거다. 자기 재산도 못 지킨 무능함에 대해 거듭 반성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것은 더 한심한 일이다.

민주당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의 당헌과 강령을 몸속의 자기철학으로 소화해 굳건한 깃발로 세우고 갔더라면 틀림없이 집권했을 것이고 오늘 같은 기초 연금 파기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건 지난 것이고,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최근 민주당이 상징 색깔을 파란색으로 바꿨다. 1955년 신익희 선생이 민주당을 시작할 때 빨간색이었다. 노란색과 초록색을 거쳐서 파란색으로 왔다. 새누리당이 작년 총선 때부터 느닷없이 빨간색을 채용한 데 따른 색깔 이동인 셈이다. 노란색은 민중의 힘, 저항을 상징한다. 초록은 생태, 생명, 환경을 뜻한다. 파란색은 민주주의와 희망, 푸른 대지를 상징한다. 미국과 일본의 민주당이 파란색 상징으로 집권했듯이, 한국 민주당도 파란색 깃발과 함께 신발 끈을 동여매고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싸움을 이겨내면 기회가 올 것이다.

민주주의와 민생은 하나다. 민생의 ‘民’ 자가 민주주의요, ‘生’이 먹고 사는 문제다. 그러니 민생이 곧 민주주의요 먹고 사는 문제다. 민생에는 두 가지 전제가 있다. 하나는 시장의 횡포, 전횡을 막는 것인데, 이것이 ‘乙’ 지키기다.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에 똑똑히 나와 있다. 두 번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들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주의 없이 민생은 없다. 국정원 사태 진실규명을 통해서 민주주의 회복에 나서는 것이 바로 민생을 살리기 위한 투쟁이다.

민주당에는 유산이 있다. 60년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워 온 빛나는 뿌리와 정체성이 그것이다. 민주주의와 평화체제 그리고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가 민주당의 정체성이다. 그런데 한 가지가 모자란다. 신뢰와 지지율이 좀 모자란다. 지금까지 신뢰라는 재산을 박근혜 대통령이 독차지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이것도 뻥, 저것도 뻥 하는 바람에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 민주당이 이것을 가져와야 산다.

어떻게? 그것은 민주당이 국민 앞에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이 전담기구를 설치해 조직적으로 여론 공작을 벌인 일은 중대 범죄다. 미국에서 CIA와 FBI가 선거에 개입했다면 어찌 되겠는가? 작년 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지에 대해 진실을 밝혀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도록 재발을 방지하는 장치를 만들고 대통령으로 하여금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하도록 만드는 약속을 지켜낼 때 제1야당의 신뢰는 올라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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