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내가 정기구독하고 있는 잡지에서 대학생들이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완벽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서는 총 6820만 2000원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읽었네. 해외연수, 삼전공과 졸업 유예(9학기는 필수고 10학기는 선택, 복수 전공은 필수고 삼전공은 선택), 어학 공부, 컴퓨터와 한자 자격증, 자기소개서와 면접 컨설팅, 성형수술, 이력서 사진 등에 필요한 비용이라고 하는구먼.

자기 몸값을 올려 좋은 조건에 시장에 내놓아야 하는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이용해 신자유주의적인 인간형을 만드는데 성공한 국가와 자본이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을 것 같아서 씁쓸하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다고 모두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는 건 아니라네. ‘2013년 대졸 신입사원 채용 실태’에 의하면, 지원자 100명 중 11.5명만 서류 및 필기 전형을 통과하고, 최종합격자는 3.5명뿐이라네. 28.6 대 1의 경쟁률이라는군.

그들의 처지가 이러니 그들에게 사회적 관심은 없고 자기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한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난할 수도 없지. 미래가 불안한 그들에게는 그런 다양한 노력들이 매우 합리적인 반응이거든. 다만 그들의 취업을 그렇게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요인들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학생들이 점점 보기 힘든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럼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렇게 경쟁에 매몰된 원자화된 개인들의 세상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나? 1997년 말에 겪었던 IMF 외환 위기가 우리들의 사고와 삶에 미친 영향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것 같네.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인 구조조정으로 노동시장이 유연하게 되고, 주주 이익을 기업 경영의 최우선 목표로 생각하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네.

그 결과 대기업 등 경쟁력 있는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과 농업이나 영세 자영업 등 한계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서로 큰 차이를 보이는 양극화가 심화되었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런 위기가 이 땅에서 발생해야 했는지도 모른 채 겪어야 했던 경제 위기가 우리 사회를 질적, 양적으로 크게 변화시켜버렸지. 내 눈에는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의 한국 사회가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네. 그 중 가장 가슴 아픈 변화가 사회양극화의 심화와 그로 인한 사람들의 심성 변화인 것 같네.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노동유연화의 확대로 인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급증. 고용 없는 성장으로 큰 이익을 내면서도 종업원들을 감축하거나 아웃소싱 하는 대기업. 대학을 졸업하고도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청년실업자의 증가. 하루아침에 중산층에서 하류층으로 전락하는 친지나 이웃. 함께 일하던 직장 동료들이 제대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해고되고, 점점 늘어나는 개인 파산, 신용불량, 이혼, 가정의 해체 등 이전에는 듣고 보지도 못했던 비참한 현실들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이제 이 세상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접 느끼게 되었지. 한국 경제와 자신들의 미래가 매우 불확실하다는 불안감과 공포도 갖게 되었고.

자신들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상실감과 불안감에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보통 변화하는 현실에 적응하거나 아니면 그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네. 경제위기 이후 한국인들은 신자유주의가 요구하는 인간으로 자신이나 자식들을 변화시켜 불확실한 세상에서 안정성을 확보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다윈주의적인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고 승자가 독식하는 세상에서 도망갈 것인가를 스스로 선택해야만 했었네.

신자유주의는 변화에 잘 적응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까지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체제라네. 프랑스의 여류작가인 비비안느 포레스테의 말처럼,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회에, 그리고 그 사회를 지배하고 관리하는 경제구조에 도움이 되는 사람임을 증명해야 하네. 자신이 아무런 쓸모가 없는 이른바 ‘잉여 인간’이 아니라 '쓸 만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네.

신자유주의를 포함한 자유주의는 개인이 합리적이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노력만 하면 경제적,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네. 성공하지 못한 삶은 노력이 부족한 결과이기 때문에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거지. 그들은 국가에 의존하는 사람들을 ‘사회의 기생충’으로 의심하고 무시하더군.

무한대의 경쟁 상황에서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두렵고 불안할 수밖에 없으며, 미래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더욱더 경쟁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네. 그 결과가 경쟁과 이기주의로 가득 찬 대한민국이라네.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게나. 누가 더 악해지나 경쟁하고 있는 것 같지 않는가? 악한 자들이 더 큰소리치는 세상이네.

다음 편지에서는 이 신자유주의체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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