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2년 9월 23일 그린피스의 조사탐사선 에스페란사(Esperanza)호의 활동가들은 이날 오전 전남 여수항 드라이 독에 정박중인 동원의 선망어선 그라나다(Granada)호 앞에 '동원의 파괴적 어업이 시작하는 곳'이라는 대형 배너를 걸었다고 밝혔다. 그린피스는 최근 한국의 대표적 참치캔 기업인 동원이 지속가능한 어업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사진=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제공)

동원산업이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다. 최근 유럽연합(EU)이 한국을 예비 ‘불법조업국’으로 지정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당초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던 동원산업이 정작 논란에서 비껴나서다.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한국과 가나, 쿠라사우 등 3개 국가를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했다. 예비 불법어업국은 수산물 수출이 통제되는 불법어업국의 전 단계로, 불법어업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국가를 말한다.

한국이 EU로부터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된 데는 해양수산부가 그린피스 등 국제 환경단체의 권고를 외면한 채 고립을 자초한 탓이 컸다.

EU는 이미 2010년부터 우리 정부에 한국 원양어선의 불법조업 근절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는 발 빠르게 움직이지 못했다. 특히 지난 4월엔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가 ‘한국 원양어업 불법어업(IUU) 실태’ 보고서를 통해 한국 원양업계의 불법어업 문제를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오히려 “우리나라 그린피스는 문제가 있다”며 그린피스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당시 해수부는 원양사업을 사양산업으로 규정하며, 죽어가는 산업에 규제를 추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발을 뺐다. 그린피스가 “유럽연합이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심상찮다”고 수차례 경고했음에도 해수부는 귀를 닫았다.

지난 7월 국회가 불법어업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 원양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긴 했지만, 그 배경에는 그린피스의 끈질긴 호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개정안을 발의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그린피스는 한국의 소중한 자산”이라며 “(시민사회단체가)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개발시대의 마인드”라고 해수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부활한 해수부는 서둘러 원양산업발전법을 개정하는 등 원양어선의 불법조업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으나 결과적으로 한발 늦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미온적 태도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국제기준을 무시한 채 불법조업을 자행한 원양업계가 없었다면 EU의 꼬투리 잡기도 불가능했다고 지적한다.

사실 이번 파문의 발단은 ‘동원산업’이다. 동원산업은 지난 4월 서부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해역에서 불법어업을 한 혐의로 라이베리아 정부에 벌금 200만 달러를 지불한 바 있다.

동원산업은 지난 2011년부터 서아프리카해에서 불법어업을 한 사실이 적발돼 국제적 망신을 샀다. 동원은 참치 선망어선 ‘프리미에’호와 ‘솔레반’호의 조업권을 사들이는 과정에서 현지 에이전시에 사기를 당한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결국 프리미에호는 불법조업 사실이 확인돼 어업정지 60일 처분을 받았다.

▲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아프리카 해역에서 불법어업 혐의를 받고 있는 동원산업의 참치원양어선 프리미에 호에 시위를 벌이고 있는 모습.


당시 그린피스는 동원의 프리미에호 사건을 대표 불법조업 사례로 지적하고 나서면서 한국은 국제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프리미에호처럼 원양에서 불법조업을 하다가 적발된 한국 국적 어선은 2009년부터 11월 26일 현재까지 공식 집계된 것만 19척에 이르며 드러나지 않은 불법조업 사례는 추정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다.

세계 원양업계에서 ‘무법자’로 낙인찍힌 한국 원양어선은 유럽연합(EU)의 예비 불법조업국 지정에 빌미가 됐다. 결국 국제기준을 무시한 채 불법조업을 자행한 동원산업과 불법조업 근절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인 당국이 EU의 희생양을 자초한 셈이다.

현재 비난 여론은 그린피스 잇단 경고를 무시하다 이 같은 사태를 맞은 해수부로 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동원산업은 다행히(?) 불똥을 피했다. “아마도 동원산업이 윤진숙 해수부 장관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있을 것”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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