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지난 편지에서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의 한국 사회가 전혀 다른 세상이라고 말한 것 기억하지. 우리 나이 또래들은 대부분 공감하리라 믿네. 외환위기 이후에 절대빈곤층과 상대빈곤층의 비율이 증가했다는 것도 다 알고 있네. 하지만 그 빈곤의 내용이 이전과는 질적으로 크게 달라서 ‘신빈곤’이라고 부른다는 건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걸세. 이전에는 장애인이나 노인처럼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었지만, 외환위기 이후에는 일을 하는데도 가난하게 사는 근로빈민(Working Poor)이 늘어났다네.
 

신빈곤층은 대부분 외환위기 이후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의 유연화로 인해 불완전고용 상태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영세 자엽업자, 여성가구주, 청년실업자, 조기퇴직자 등이지. 일을 하고는 싶지만 일자리가 없거나, 일을 하고는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야. 이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문화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는 사람들이지. 그래서 이들이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네. 예를 들면, 지금  우리 사회의 교육 실태를 보게나. 예전에는 사회이동의 통로였던 교육이 이젠 부와 빈곤을 대물림하는 수단이 되어버렸네. 우리 사회학자들 용어로 계급 재생산의 기제가 되고 말았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건 이제 완전 신화가 되어버렸어.


이번에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사회조사 결과’에서도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더군. 그 조사에 의하면, 자신이 사회 경제적 지위가 하층민이라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46.7%로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높았다고 하네. 1988년에 36.9%였던 응답자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에 44%로 40%를 넘은 뒤 올해에는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46.7%로 늘어났다는군. 반면에 중간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에 60.6%에서 51.4%로 떨어졌더군.
 

게다가 계층 이동에 대한 기대도 줄어들었네. 자신의 노력에 의해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고 응답한 비율은 28.2%로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 57.9%의 절반 수준이었네. 자식세대의 지위가 향상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39.9%로 향상될 가능성이 낮다는 비율 43.7%보다 적었네. 그리고 국민의 59.8%가 고용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더군. 연령별로는 30대가 65.1%, 종사자별 지위로는 임금근로자가 64.5%로 고용 불안을 느끼고 있었네.
 

자신을 하층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리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에서 자살률이 증가하는 건, 물론 불행한 일이지만, 당연한 귀결이 아닐까? 실제로 며칠 전에 OECD에서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2012년 우리나라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33.4명으로 OECD 34개국 중 단연 1등이더군. OECD 국가 평균 자살률 12.6명에 비해 거의 3배 가까운 수치였네. 우리나라 자살률은 90년대 초반 이후 증가하기 시작했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에 급속하게 늘어났다. 1990년대 초반까지 인구 10만 명당 10명 이내의 자살률이었지만 2004년에 23.7명을 기록한 이후 계속 증가하여 30명이 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네. 
 

외환위기 이후에 자살이 늘어난 이유가 뭘까?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자살 충동의 원인으로 가정불화나 외로움보다 경제적 어려움을 꼽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고, 소득이 낮을수록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네. 20대와 30대도 지난 10여 동안 자살이 두 배 정도 증가했는데,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자살 충동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하는군. 
 

그런데 자네 OECD가 한국에 권한 처방이 뭔지 아는가? 그들은 한국에서 자살률이 높은 이유가 정신 치료 서비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더군. 다른 나라에 비해 정신 치료 서비스가 뒤쳐져 있고, 국가 보조도 대형 기관 위주라 지역 사회의 환자들이 도움을 받기 어려워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야. 게다가 정신 병원에 가길 꺼리는 한국의 문화도 문제가 있고. 물론 틀린 처방은 아니지. 하지만 결국 자살하는 사람 개인에게 문제가 있으니 그 개인만 치유하면 된다는 것 같아서 씁쓸하더군.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 신자유주의적인 승자독식 체제가 근본 원인이라는 걸 그들도 알고 있을 텐데…

그러면 다음에는 신자유주의가 왜 많은 문제의 근원인지 알아보세.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