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안녕하신가? 요즘 우리 사회의 화두인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에 관해서는 알고 있지? 안녕하지 못한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안부를 묻고 응답하는 암울한 분위기의 연말일세. 왜 우리 사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이렇게 집단우울증을 앓아야 하는지….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대통령과 정치에 대한 실망이 우리 사회를 더 암울하게 만들고 있는 것 같네. 어떤 보수 논객은 ‘불길한 망국 예감’을 말하고 있더군. 100여 년 전 조선처럼 대한민국이 침몰할 수도 있다니 연말이 더 우울할 수밖에 없네 그려. 그래서 오늘은 국민들의 ‘안녕’에 무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세. 
 

'독재자의 딸’이어서 싫어했던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네. 그분은 지난 1년 동안 ‘안녕’하셨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구먼. 요즘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분도 별로 안녕하지 못할 것 같네만. 한국갤럽이 지난 주 전국 성인 남녀 1207명을 상대로 실시한 12월 3주차 정례 여론조사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48%로 나타났더군.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4월 46%를 기록한 이후 7개월여 만이라고 하네. 반면에 부정평가는 지난주 35%에서 6%포인트 오른 41%였네. 
 

다른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뷰가 지난 18일에 전국 만 19세 이상 휴대전화가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박 대통령이 국정 수행을 '잘못하고 있다'가 48.3%로 '잘하고 있다'는 44.3%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네. 작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다는 응답자의 19.2%도 ‘잘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더군. 경제민주화와 복지 증진 등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공약들에 속아 지지했던 중산층들이 돌아서고 있다는 신호지.
 

1년 만에 이렇게 지지율이 급락한 이유는 뭘까?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부정적으로 평가한 사람들은 소통 미흡(20%), 공기업 민영화 논란(14%), 공약 실천 미흡과 입장 바뀜(13%), 독단적 (11%), 국정 운영이 원활하지 않음(11%) 등을 지적했더군.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처럼 역시 불통이 가장 큰 문제였네.  
 

자네는 이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난 국정원을 포함한 국가기관들의 선거 개입이라고 생각하네. 국기문란 행위이거든. 그런데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그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던 것 같네. 지난 8월 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대통령은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고 선거에 활용한 적도 없다”고 말했네. 자신이 지시하거나 부탁하지 않았으니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래서 자신이 사과할 문제도 아니라는 말씀이지. 그런데 그 말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액면그대로 믿겠나? 자신이 직접 지시하지는 않았을지 모르지만 도움을 받은 건 사실 아닌가? 앞에서 언급한 리서치뷰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지난 대선 직전 국정원 댓글 의혹에 대해 경찰이 사실대로 밝혔다면 박근혜 후보 투표층의 12.9%가 '문재인 후보를 찍었을 것'이라고 응답했더군. 이를 지난 대선에서 두 후보가 얻은 득표율에 반영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은 51.55%에서 44.9%로 낮아지고, 문재인 후보는 49.02%에서 54.67%로 상승해 문 후보가 박 대통령을 앞서게 된다는군. 이래도 국가 기관의 덕을 보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으련만…. 
 

자네나 나나 60년 가까이 살면서 실제로 경험했듯이, 한 번 거짓말을 하면 그 거짓말을 덮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지난 1년간 대통령과 여당 사람들 잘못 꿴 첫 단추 때문에 고생하는 걸 보면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더군. 불법 선거운동 비판에 대한 그들의 응답을 보게.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불법적인 공개,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전교조와 전공노에 대한 탄압, 검찰총장과 수사 팀장 찍어내기 등 모두가 무리수들이지.  처음 잘못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시행착오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국정원의 불법선거운동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 조치를 단행했으면 이렇게 비생산적인 국정운영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네. 분명 도움을 받았으면서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려니 만사가 더 꼬일 수밖에 없었지. 게다가 방귀 뀐 놈이 성질낸다고, 불법 선거운동을 특검에서 조사하자는 야당과 시민들을 ‘대선 불복’이라고 겁박하거나, ‘종복’으로 몰고 있으니 세상이 시끄럽고 민심이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지.    
 

“저에 대한 찬반을 떠나 국민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습니다. 과거 반세기동안 극한 분열과 갈등을 빚어 왔던 역사의 고리를 화해와 대탕평책으로 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모든 지역과 성별과 세대의 사람들을 골고루 등용하여 대한민국의 숨은 능력을 최대한 올려서 국민 한 분 한 분의 행복과 100%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소망입니다.”
 

1년 전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에 발표했던 당선인사의 일부분이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화해와 대탕평책을 통해 국민대통합을 이루겠다는 포부였지. 난 박 대통령을 찍지 않았지만 저 말들을 믿었다네. 역사의 어떤 국면에서는 보수정권이 기득권층의 저항을 달래가며 국민대통합을 이루어낸 나라들도 있으니까 말일세.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난 참 순진한 사람이라는 비아냥거림만 듣고 있네. 내가 속은 건가? 야당을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이면서 대통합이 이루어질 수는 없겠지. 많은 국민들 생각도 비슷한 것 같네. 리서치뷰 여론조사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과 취임사에서 약속한 국민대통합이 잘 이뤄지고 있다고 보느냐, 아니면 더 나빠졌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18.5%만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답한 반면, 과반이 넘는 57.3%는 ‘더 나빠졌다’고 응답했고 ‘별 다른 변화가 없다’는 20.1%, 무응답은 4.1%였다네.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우리 사회에 다시 정치가 실종되어버린 것 같네. 정치가 왜 필요한지를 모르거나, 정치를 비효율적인 시간과 국력 낭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네. 종편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도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기는 것 같고.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다층적이고 복잡할수록 그런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하는 게 필요한데, 대통령과 정부 여당은 오히려 그런 갈등을 증폭시켜서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배제하려고 하고 있네. 
 

박 대통령이 지난 19일 새누리당 지도부와 청와대에서 만찬을 했다는 ‘썰렁 개그’를 보면서 혼자 웃었네. (식인종이 어떤 사람을 잡아 그 사람의 다리가 맛있을 것 같아서 한쪽 다리를 잘라서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 다리가 의족이었다.) 난 대선 승리 1주년 만찬에서 대통령이 한 그 개그를 그분의 무의식적인 고백처럼 들었네. 아버지처럼 대통령이 되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지. 원칙을 지키는 불통은 자랑스러운 불통이라고 말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요즘 골치 아프다는 하소연처럼 들리더구먼. 내가 너무 오버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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