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이 16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그리스도대학교에서 열린 홈플러스와 전국 풀뿌리 활동 NGO(비정부기구)인 '나눔과 기쁨'의 '행복한 빵 나눔' 협약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모두가 행복한 성장을 위해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

지난 12월 31일,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은 자사 임직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의 신년 메시지를 전달했다.

도 사장은 이날 이메일을 통해 임직원의 노고를 격려하면서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고객·직원·사회 모두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성장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을 실제 현장에서 실행하는 임직원의 행복”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그의 신년 메시지를 두고 곱지 않은 시각이 많다. 말은 그럴싸한데, 진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공통적 의견이다.

현재 홈플러스는 소위 ‘쩜오계약’으로 도마 위에 올라있다.

‘쩜오계약’은 0.5시간, 그러니까 30분 단위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1일 8시간, 주 40시간’ 근무제를 기준으로 하는데 비해, 홈플러스는 7시간 30분 계약을 맺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계산대 비정규직은 4시간 20분부터 7시간 30분까지 근무계약하고 있는 식이다.

게다가 노조에 따르면 회사 측은 6개월마다 한 번씩 근로시간 계약서를 갱신하면서 1일 기준으로 4.5시간, 5.5시간, 6.5시간, 7.5시간 등 총 4가지 근무제 중 1가지를 제비뽑기 식으로 정했다고 한다. 또 홈플러스는 비정규직 직원들의 시급인 5,450원~5,750원 사이에 5개 구간으로 단계를 나눠 10개 부서별로 차등 지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에는 ‘쩜이 계약’도 보편화됐다고 한다. 4시간 20분, 7시간 20분 등 근무 시간을 10분 단위로 계약하는 것을 말한다. 쩜오 계약의 경우 임금은 시급의 1/2, 쩜이 계약은 1/3이 지급된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매우 독특한 근무계약 형태인 셈이다.

 홈플러스 노조는 사측이 '0.5시간(30분) 계약제'를 폐지하지 않으면 오는 9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1일 밝혔다. 노조는 "홈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는 0.5시간제 도입으로 7.5시간 근로 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제로는 연장 수당 없이 8시간 넘게 일하고 있다"며 "근로 조건 개선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도록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0.5 시간 계약제’가 애초부터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을 보장해주기 위해 ‘선의의 입장’에서 도입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간을 잘게 쪼개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홈플러스 설명대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30분 단위 계약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들이 회사를 위해 추가로 사용한 10분, 20분의 시간에도 응당한 대가를 지급해 줘야 한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전문기관과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출근준비 평균 21분, 퇴근준비 평균 18분 이상이며, 무급으로 주어지는 식사시간 1시간은 실제로는 평균 31분이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인 노동시간은 8시간을 분명히 초과하고 있다. 그렇지만 홈플러스가 주는 임금은 딱 7시간 30분만큼이다.

실제 근로시간을 8시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1만6,000명에 달하는 홈플러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지 못한 금액은 112억8,960만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직원들의 30분치 월급을 아껴서 연간 수백억원의 이익을 남겼다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홈플러스가 30분 단위로 계약을 강요하는데는 또 다른 ‘꼼수’가 숨어 있다. 8시간을 넘기면 ‘전일제 노동자’ 조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전일제 노동자가 되면 회사 입장에선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해야 한다. 각종 비용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전일제 노동자의 경우, 해고를 하고 싶어도 근로기준법 등에 따라 제약과 절차가 복잡한 편이지만, 단시간 노동자는 해당 사업부문을 정리하는 것만으로 대량 해고를 손쉽게 할 수 있다. 홈플러스가 ‘반드시’ 30분 계약을 강요해야 하는 이유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라는 홈플러스 측 설명이 진심으로 들리지 않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홈플러스는 대형마트 매장이 100여개, 기업형슈퍼마켓인 익스프레스가 300개, 연매출액이 12조, 한 해의 영업이익이 5,000억에 이르는 국내 2위의 유통재벌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90% 이상은 비정규직이다.

과연 도성환 홈플러스 사장이 말한 ‘함께’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일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을 실제 현장에서 실행하는 임직원의 행복”이라는 그의 신년사는 도대체 누구를 가리킨 말일까.

사뭇 ‘도성환 식’ 사전에 담긴 ‘함께’라는 단어의 뜻풀이가 무척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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