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김재필(미 델라웨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교황 프란치스코가 2013년에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혔다는 소식은 들었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타임>은 교황이 지난 3월부터 “부와 빈곤, 공정함과 정의, 투명성, 근대성, 세계화, 여성의 역할, 결혼의 본질, 권력의 유혹” 같은 우리 시대의 주요 문제들에 관해 많은 관심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를 선정했다고 말했다는군. 교황은 또 페이스북에서 2013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로도 선정되었다네. ‘2013 페이스북 트렌드’에 의하면, 전 세계 가입자 11억9000만 명이 2013년에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교황 프란치스코’였다네. 

난 종교의 필요성을 아직 모르는 무신론자이지만, 사회문제에 관한 교황의 말씀을 가끔 언론에서 대할 때마다 내가 그런 문제들을 바라보는 시각과 매우 유사하다 걸 알았다네. 게다가 종교를 떠나 세계적으로 많은 주목과 존경을 받고 있는 교황이시니 그 분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고, 우리 시대에 관해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지. 그래서 교황이 아르헨티나 추기경으로 재직하던 시절, 저명한 종교전문기자인 프란체스카 암브로게티, 세르히오 루빈과 2년에 걸쳐 나눈 대담을 엮은 《교황 프란치스코》를 읽었네. 2010년 아르헨티나에서 처음 출판된 책인데, 2013년에 프란치스코의 교황 즉위를 기념해 재출간되었다네. 이번 편지는 그 책에 대한 나의 짧은 감상문이라고 생각하게나. 

내가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교황의 사생활이었네. 클래식 음악을 듣기 위해 라디오를 켜놓은 상태로 신문을 읽는다는 교황의 말을 듣곤 혼자 웃었네. 내가 신문이나 잡지, 소설 등을 읽거나 오늘처럼 자네에게 편지를 쓸 땐 항상 클래식 채널을 켜두거든. 독서와 음악 감상이 취미이고, 횔덜린의 시를 좋아하고,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한 베토벤 <레오노레> 서곡 3번을 들을 때마다 감탄한다네. 

내 블로그 이름이 ‘꽃과 음악과 시…그리고 삶’이라는 건 자네도 알지? 영적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교황이 나처럼 세속적인 사람과 매우 비슷한 취미를 갖고 있다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혼자 웃었다네. 게다가 교황은 젊었을 때 탱고를 매우 좋아하고 춤을 추는 걸 좋아했다네. 함께 춤을 추러 다니던 친구들 중 한 명이 애인이었다는군. 고위 성직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일상적인 습관과 취미들을 진솔하게 털어놓는 희수를 넘긴 할아버지를 내가 어떻게 신뢰하고 존경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자네도 교황이 77세 생일에 베드로 성당 부근의 노숙자들을 초대해서 아침 식사를 함께 했다는 뉴스는 보았겠지? ‘나는 가난이라는 부인과 결혼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가난을 실천했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자신의 교황 이름으로 선택한 분답지 않은가. 

교황은 인간이 가져야 하는 최고의 미덕을 “다른 이에게 자신의 자리를 내어주는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사랑은 온화함에서 오기 때문에 하느님께 항상 온화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네. 또 인간이 저지르는 죄 중 가장 극악한 죄는 뭐냐는 질문에는 ‘오만함’을 가장 혐오한다고 하더군.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게 이분이 말하는 오만의 정의일세. 

그러면서 “저는 이따금 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이라고 당연시하고 있는 제 모습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을 때 내적으로 큰 부끄러움을 느꼈고 바로 하느님에게 잘못을 빌었습니다. 이렇든 오만은 모든 사람이 부지불식간에 저지를 수 있는 큰 잘못입니다.”라고 덧붙이더군. 난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무척 부끄러웠다네. 온화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내 자리를 내어준 적이 별로 없었던 같네.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지 줄지는 모르는 철없는 아이가  나 아닌가. 또 조금 배웠다고 얼마나 많은 오만한 행동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구먼. 나의 오만함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빌 수밖에….

작년에 우리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었던 종교의 정치 참여에 대해 교황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소외계층과 민중의 삶에 많은 우려와 관심을 갖고 있는 교황은, 교회가 정당정치에 직접 관여해서는 안 되지만, 십계명과 복음서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 참여는 당연하다는 입장이네. 인권 유린과 착취 또는 배척 상황, 교육 또는 식량 부족 상황을 고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은 정당정치가 아니니 괜찮다는 거지. 

그러면서 말하네. “우리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면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저는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측면에서 정치를 하지만 정당에 속해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답합니다." 얼마 전에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서 사제들이 국정원의 불법적인 선거 개입으로 당선된 대통령의 퇴진을 주장했을 때,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들이 정교분리 운운하며 한 원로신부를 구속해야 한다고 펄펄 뛰던 일이 있었지. 그때 정의구현사제단을 ‘종북’으로 매도하던 일부 보수적인 천주교 신자들은 필요하다면 신발에 진흙을 묻힐 수도 있어야 한다는 교황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먼.

난 이 책을 읽으면서 교황이 지극히 소탈하고, 진솔하고, 겸손하고, 온화하고, 가정적이고, 검소한 성품을 갖고 있지만, 자신에게는 매우 엄격한 분이라는 걸 알았네. “이 세상을 떠날 때는 가능한 한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가고 싶다.”는 문장을 읽으면서는 내가 좋아하는 법정 스님을 생각했네. 불교든 기독교든 영적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분들은 세상을 보는 눈,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떠날 때의 주변 정리 등에서 비슷한 것 같네. 종교인들 중에서도 어설픈 사이비들이 죽어가면서도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챙기는 욕심을 부리는 거지. 교회까지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떠나는 일부 개신교 목사들을 보게나. 떠나는 모습이 추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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