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316회 국회(임시회) 본회의에서 경제민주화 법안 중 하나인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대안)이 찬성 249인, 반대 1인, 기권 1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희망찬 새해가 밝았지만 재계의 표정은 썩 좋지 못하다. 새해부터 적잖은 규제들이 기업의 숨통을 조일 준비를 하고 있어서다. 기업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환경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들이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며 잔뜩 볼멘소리다. 특히 올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비롯해 ‘금산분리’ ‘상생법’ 등 지난해 국회 문턱을 넘은 굵직한 경제민주화 법안이 속속 시행을 앞두고 있는데다, ‘대기중’인 법안들까지 잔뜩 벼르고 있어 재계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재계는 우선 17일부터 시행되는 ‘공정거래위원회 전속고발권 폐지’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속고발 제도’는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의 고발권을 공정위에만 부여한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지난 1980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33년간 유지돼왔다.

하지만 이 제도가 폐지되면서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고발권이 감사원·조달청 등으로 확대됐다. 감사원이나 조달청, 중소기업청이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가 의무적으로 검찰총장에 고발해야 한다.

33년 만의 대변화에 재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이 제도가 시행되면 기업들의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형사고발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기업 입장에선 공정위뿐만 아니라 조달청과 중소기업청, 그리고 감사원 등이 불공정거래에 대해 고발권한을 행사할지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비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해당 제도가 ‘불공정거래 감시 강화’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대기업의 족쇄’로 변질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법안은 다음달 14일부터 발효된다. 지난해 한참 뜨겁게 논의되던 당시보다 많이 누그러진 상태로 통과되긴 했지만, 기업 입장에선 여전히 불편한 법안이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자산 5조원 이상인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 중 총수 일가 지분이 20%(비상장사)나 30%(상장사)를 넘는 계열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을 공정거래법상의 부당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토론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참석자들이 '경제민주화, 과연 경제활성화와 대립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그동안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대기업들은 발등에 불 떨어진 형국이다. 규제 기준이 많이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 때문이다. 

실제 최근들어 여러 대기업 오너 일가가 계열 광고대행사들의 보유 지분을 처분하고 있는 것도 이 법안을 신경 쓴 탓이다. 
현대차그룹의 이노션월드와이드는 정몽구 회장의 지분 20%를 각각 10%씩 정몽구재단과 사모투자펀드 스틱인베스트먼트에 처분했고,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도 보유한 그룹 계열 광고대행사의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식품회사인 농심 역시 자사의 광고대행 업무를 맡아온 농심기획의 지분을 100% 인수했다. 농심기획의 지분은 신춘호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과 장녀인 신현주 부회장이 각각 10%, 40%씩 보유하고 있었다.

이처럼 정부 규제가 강화되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 여론에 따라 오너 일가의 지분 매각 바람이 업계 전체로 확산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다만 일감몰아주기 과세대상에서 중소기업은 제외된다. 현재는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법인사업자면 모두 일감 몰아주기 과세대상에 포함됐다. 국회는 중소기업을 과세 대상에서 제외했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정상거래비율을 30%에서 50%로, 한계보유비율을 3%에서 10%로 상향조정했다. 간접수출도 일감몰아주기 과세에서 제외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되는 이날 ‘가맹사업법’도 함께 시행된다.

올해부터 시행될 가맹사업법 개정안에는 가맹본사가 가맹점의 예상 매출액 범위를 서면으로 제시해야 하는 의무와 가맹점 사업자 단체 구성을 허용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외식업계는 “그야말로 ‘규제 노이로제’에 시달릴 판”이라며 울상이다. 이미 지난 2012년 피자·치킨·커피·베이커리 등 주요 외식업종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의 출점제한 거리를 설정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모범거래기준이 시행중이고, 지난해에는 베이커리·외식업종에 대한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적합업종 지정, 올해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이르기까지 해마다 온갖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재계는 가맹점주 권리 보호는 이해하지만 ‘예상 매출 허위시 처벌’ 등의 조항은 벌써부터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 (사진 위로부터)지난해 9월 9일 경실련 및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 민변민생경제위 관계자들이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12년 7월 12일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와 이용섭 정책위의장을 비롯한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당론발의 법안들을 제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0일 오전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 토론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참석자들이 '경제민주화, 과연 경제활성화와 대립하는가?'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관련업계 일단 올해가 개정된 가맹사업법 시행 첫해이기 때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예전보다 사업하기가 어려워진 것만은 분명하다는 데 의견을 함께하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소유한도 축소’도 골칫거리다. 이 법안 역시 2월 14일부터 시행된다.
해당 법안은 금산분리의 핵심 법안이다.

시행을 앞둔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 등에 따르면 산업자본의 은행 주식보유한도를 9%에서 4%로 축소한다. 이는 2009년 은행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4%에서 9%로 늘렸다가 4년 만에 원위치 시킨 것인데, 당장은 영향을 받는 기업은 드물지만, 이번 조치로 산업자본의 금융회사 인수 등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재계에서는 1~2월에 경제민주화 핵심 법안이 대거 시행되면서 본격적인 ‘사정권’ 안에 들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첫 타깃이 누가 될 것이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긴장하는 분위가 역력하다.

물론 올해부터 시행되는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재계의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돼 원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화됐다는 평가지만, 기업 입장에선 절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과연 재계의 지적대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시행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족쇄가 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잘못된 비즈니스 관행을 바로 잡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될 지 각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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