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코닝의 노사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코닝으로의 합병이 코앞에 닥친 삼성코닝정밀소재(이하 삼성코닝) 노조가 사측과 제대로 된 교섭 한번 하지 못한 채 소모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 이를 두고 노조 측은 사측이 노조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 하에 의도적으로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삼성코닝 노조는 지난해 11월 20일 뒤늦게 설립됐다. 지난해 10월 삼성코닝과 코닝이 포괄적 사업협력을 체결한 것이 배경이었다.

당시 삼성은 삼성디스플레이가 보유 중인 삼성코닝 지분 42.6%를 모두 코닝에 넘기면서 코닝의 전환우선주 23억달러가량을 매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부터 삼성코닝은 ‘삼성’이름을 빼고 코닝으로 완전 편입된다.

삼성코닝이 이런 중차대한 결정을 내리는 동안 회사의 주요 주체 중 하나인 노동자들은 전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에 일부 노동자들은 그 이유가 ‘무노조’에 있다고 보고 노조 설립을 결심했다.

◇ 교섭 장소 놓고 물러서지 않는 노사

노조가 결성된 지 두 달여가 다돼가지만 노조는 여태껏 사측과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하지 못했다. 노조활동의 기본이 되는 사무실과 전임자, 온라인 공간 등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5번의 교섭은 단 한 번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노조와 사측에 따르면 삼성코닝 노사는 지난해 12월 13일 아산사업장 인근 온양시내의 한 중국집에서 상견례 겸 첫 교섭을 가졌다. 그러나 그 이후부터는 교섭 장소를 두고 큰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결국 노조는 지난 8일 천안지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 따르면 노조는 상견례 이후 4차례 교섭에서 연차 사용을 전제로 근무시간 내 교섭과 사업장 내 교섭을 꾸준히 요구했다.

반면 사측은 2차 교섭 당시 모 호텔을 교섭 장소로 요구했고, 이후부터는 기숙사내 회의실을 요구하고 있다.

신영식 삼성코닝 노조위원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사측은 계속해서 외부나 기숙사에서 교섭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며 “임직원을 대표하는 노조인 만큼 사업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교섭을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노사교섭을 하는데 사업장 내 회의실조차 내줄 수 없다는 것은 노조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삼성코닝 사측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처음에 외부를 제안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노조가 반대해서 사내 기숙사에 있는 회의실을 교섭 장소로 제안했다”며 “법적으로 교섭 장소에 대한 규정은 없다. 노조 측이 요구하는 사업장 내 회의실은 평소 다른 임직원들이 업무를 보는 장소이기 때문에 독립된 공간에서 심도 있게 교섭을 진행하자는 취지로 기숙사 내 회의실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조 측은 이에 대해 “우리가 교섭 장소로 요구하고 있는 곳은 각각 독립적인 회의실이 마련돼 있어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교섭에 방해가 될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교섭시간도 문제다. 신 위원장은 “교섭시간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측면이 많다”면서 “노조 측 교섭위원이 6명인데, 교대근무로 인해 시간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측은 근무시간 중에는 교섭참가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교섭하려면 연차를 쓰라는 것이다. 심지어 노조위원장인 나는 구미사업장에 있어서 교섭 한 번 다녀오는데 족히 1박 2일은 걸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코닝 사측 관계자는 “근무시간 중 교섭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며 “노조 측도 연차를 쓰고 교섭을 하겠다고 해서 교섭시간은 정해졌으나 장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걸음마 떼기 힘든 삼성코닝 노조

현재 노조의 요구는 단순하다. 신 위원장은 “아직 노조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며 “최소한 노조사무실과 법으로 보장되는 노조전임자 등이 마련돼야 한다. 그걸 위해서 교섭을 하자는 것인데 장소 문제 때문에 전혀 진척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신 위원장은 “교섭 장소 문제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섭 장소부터 사측에 끌려 다니는 노조를 어떤 노동자가 의지하겠나. 또한, 외부나 독립된 공간에서 교섭을 할 경우 노조원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삼성코닝에서만 20년 넘게 일해 온 노동자다. 그는 “그동안은 노동자들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정당한 권리를 찾자는 뜻에서 노조를 설립했다. 앞으로 회사를 이끌어나갈 젊은 친구들에게는 우리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출발부터 사측의 견제가 너무 심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측이 노조 명단을 입수해 탈퇴를 종용하는 등 노조 활동을 철저히 방해하고 있다. 심지어 노조원들은 사내 온라인 게시판에 글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다. 노동청의 조정이 없으면 희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진정서 제출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사측 관계자는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쪽(노동청)에서도 교섭 장소에 대한 문제제기를 어렵게 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사측 관계자는 “사측은 노조와 문제를 일으키기 보다는 잘 협의하고 싶은 입장”이라면서 “하지만 아직 노조가 뭘 요구하는지 조차 듣지 못했다. 담당 직원에 따르면 노조 측은 퇴근 시간쯤 돼서 일방적으로 교섭 장소 등을 통보한다고 한다. 사측도 노조 측이 교섭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밝혔다.

삼성코닝은 오는 15일이면 코닝에 완전히 편입되기 시작해 2월쯤 마무리 될 예정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노사갈등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신 위원장은 “현재 인사담당자들의 인식을 보면 삼성이란 이름을 뗀다 해도 갈등이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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