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체제’ 구축 위한 실탄 마련 차원 분석 지배적
일감몰아주기 증여세 피하고 합병 시너지도 기대 '1석3조'
합병비율 따라 일반주주의 주주가치 훼손 논란도 우려

▲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헌릉로 현대자동차그룹 본사에서 열린 ‘2014년 시무식’에 참석해 미소짓고 있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14일 오후, 현대건설 주가가 급락했다. 이날 현대건설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엠코와 합병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주식시장이 요동친 것이다. 이날 현대건설의 주가는 전날 대비 5.1%나 주저앉았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합병 시너지를 계산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번 합병의 진짜 ‘목적’에 대해서도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당사의 주요 종속회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엠코와의 합병을 검토 중이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결정 시점 또는 1개월 내에 재공시하겠다.”

지난 14일 현대건설은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설에 대한 조회공시 답변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동안 가능성으로만 제기돼 오던 현대차그룹 내 건설 계열사들의 합병이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오르며 공식화된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두 회사의 합병시기는 오는 4월께로, 현대엠코가 현대엔지니어링을 흡수하는 방식이다.

◇ 건설업계 8위 규모 대형건설사 탄생 
 
업계에서는 두 회사의 합병이 가져올 시너지는 물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복심’이 무엇인지 계산기 두들기기에 분주하다.

일단 업계에서는 건설과 토목에 주력하는 ‘현대엠코’과 석유화학 등 플랜트 전문인 ‘현대엔지니어링’의 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시각이 많다. 두 회사가 합병되면 지난해 매출액이 6조원, 영업이익(추정치)이 5,000억원이고 자본총계가 1조6,000억원인 대형 건설사가 탄생한다. 매출 규모로 따지면 건설업계 8위 수준이다.

특히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은 주력사업이 겹치지 않아 합병 시 부작용도 적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회사 측도 “건설 분야 계열사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합병의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두 회사의 ‘결합’을 단순히 ‘시너지’ 차원으로만 보고 있지 않다. 현대엠코의 최대주주가 정의선(25.06%) 현대차 부회장이라는 점에서 두 회사의 합병 배경에 현대차그룹의 승계 문제가 얽힌 것으로 분석하는 시각이 많은 것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띠고 있다. 정 부회장이 이 같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16.86%를 매입하는 게 사실상 가장 빠른 길이다. 하지만 이 방법대로라면 약 5조원 가량이 자금이 필요하다. 정 부회장이 글로비스 지분(31.88% / 약 2조7,000억원)과 현대엠코 지분(25.06% / 약 5,000억원)을 갖고 있지만 3조원 수준에 불과해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  ‘1석3조’ 얻은 정몽구 회장

그런데, 만약 지분율이 높은 현대엠코를 현대엔지니어링과 합병한 후 합병회사를 상장하거나, 또는 현대건설과 추가합병하게 되면 정 부회장의 지분 가치는 급상승하게 된다.

현재 정 부회장 개인의 현대엠코 지분가치는 5,000억원 가량으로 추산되는데, 합병과 이에 이은 직상장이 실현될 경우 합병회사의 지분 가치는 1조원 안팎까지 늘어날 것으로 증권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특히 현대건설을 통해 우회상장까지 하게 되면 정 부회장이 다른 계열사 지분을 공격적으로 매입할 수 있는 실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마련한 재원으로 지배구조상 가장 약한 고리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인다면 정 부회장 입장에선 경영권 승계를 위한 가장 안전한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이번 합병의 궁극적인 배경이 정 부회장이 보유한 현대엠코의 지분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 결국 경영승계를 위한 ‘실탄 만들기’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현대건설을 이용한 경영권 승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수순이다. 

지난 2010년 현대건설이 M&A 시장 매물로 나왔을 당시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이상호 박사는 “현대엠코를 현대건설과 합병한 뒤 상장하면 대주주들이 주식매각을 통해 엄청난 현금을 챙기게 될 것”이라며 “이 자금을 지주회사가 될 계열사(현대모비스나 글로비스) 지분 확보에 쓰려는 의도”라고 전망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합병으로 ‘일감몰아주기’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게 됐다.

다음달 시행되는 개정 공정거래법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총수가 있는 대기업에서 총수일가의 지분율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계열회사에 일감을 몰아줄 경우 과징금을 부과한다. 현재 현대엠코의 총수일가 지분율은 35.06%로 규제 대상에 해당하지만, 합병 이후에는 20% 밑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여 규제를 피할 수 있다.

후계구도를 위해 오래전부터 밑그림을 그려온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입장에서는 ‘두 마리 토끼’가 아니라 ‘1석 3조’의 이득을 보게 되는 셈이다.

▲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양재동 사옥.
◇ ‘합병비율’ 최대 변수될 듯

이제 관건은 두 회사의 ‘합병비율’을 어떻게 산정할 것이냐다.
 
특히 전문가들의 분석대로 이번 합병이 경영권 승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정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엠코에게 유리한 구도로 합병비율이 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현대엔지니어링의 대주주(75%)인 현대건설에 투자한 일반주주의 주주가치 훼손이 불가피해진다.

만약 시장의 예상치보다 낮은 합병비율이 산정된다면 현대건설 주식(9.89%)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 입장에서도 주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고 주식을 헐값에 넘겼다는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여기에 현대건설 주식을 보유한 일반주주의 반발까지 겹칠 경우 합병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 14일,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 합병 소식에 현대건설 주가가 급락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현재 업계에서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제시한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엠코의 합병비율이 1:7~1:10 사이에서 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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