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는 난데없이 “차 빼” 소동이 벌어졌다. 삼성을 규탄하는 집회 장소에 삼성이 관광버스를 세워뒀기 때문이다.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끝에 집회 차량은 견인 이동 조치됐지만, 버스는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삼성과 경찰을 향해 절규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꾼’ 삼성이 집회 방해 고집만은 버리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집회는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집회 신고 장소 바로 옆 도로에 세워진 관광버스 때문이었다. 버스는 삼성전자 본관 앞에 2대, 맞은편 삼성생명 건물 앞에 1대가 세워져 있었고, 버스 기사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삼성이 집회를 방해하려고 일부러 버스를 세워뒀다”며 울분을 토했다. 기자가 해당 버스 업체에 문의한 결과 버스를 대여한 것은 삼성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해당 업체는 버스 이동 구간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관광버스에 자리를 빼앗긴 집회 참가자들은 삼성생명 쪽 버스 앞뒤로 2대의 차량을 세워둔 채 집회를 진행했다. 그러자 이번엔 집회 차량이 문제가 됐다. 삼성생명 쪽으로 들어가는 진출입로를 집회 차량 1대가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 관계자들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차량을 빼라고 요구했지만, 집회참가자들은 “집회를 방해하고 있는 버스부터 이동시켜야 차량을 이동하겠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양측의 실랑이가 계속되자 현장에 나와 있던 서초경찰서 정보계 형사가 나섰다. 형사는 “집회 차량과 관광버스 모두 이동하라”며 “이동하지 않으면 원칙대로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형사가 밝힌 원칙은 “버스는 불법주차니 구청에 연락해 처리하고, 집회 차량은 차량통행방해이므로 견인 조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이 집회를 방해하고 있는 버스는 묵인하고, 집회 차량만 이동시키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한 삼성 관계자는 교통경찰에게 해당 차량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삼성 본관 바로 맞은편에 집회 차량이 있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교통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집회 차량은 견인 이동 조치됐지만, 버스는 쭉 그 자리를 지켰다. 담당 형사는 “버스에 대해서는 관할 구청에 연락을 취했다”고 밝혔다. 구청에서는 몇 시간이 지나서야 나타나 ‘주차딱지’만 붙이고 떠났다.
집회 참가자는 “삼성이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치졸한 방법까지 동원하고 있다”며 “경찰 역시 삼성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변하지 않는 삼성의 ‘집회 방해’
사실 몇 년 전까지 삼성본관 주변은 집회의 ‘금기 구역’이었다. 악명 높은 ‘유령 집회’ 때문이다. 삼성이 본관 주변에 집회 접수를 선점하는 방법으로 수년 동안 다른 집회를 막아온 것은 이미 유명하다.
‘금기 구역’이 깨진 것은 지난 2012년 7월 23일이다. 법원이 서초경찰서의 집회 금지 처분을 정지해달라는 삼성일반노조의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집회를 막기 위한 ‘편법’이 사라지자 삼성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집회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김 위원장은 “가로수를 심고, 버스를 대놓고, 가로등을 수리한답시고 크레인을 갖다놔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크레인이 세워져있던 날은 이건희 회장의 생일이자 삼성본관에서 ‘자랑스런 삼성인 상’ 시상식이 열린 날이었다.
이에 대해 담당 형사는 “이전에 노숙농성을 했을 때는 삼성 쪽에서도 유가족이 있는 점을 감안해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에 다시 신고가 들어오고 있고, 우리의 역할은 시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회는 원칙적으로 인도에서만 가능하며, 집회 신고 때 차량을 포함하더라도 그것이 불법 주정차를 용인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삼성 측이 세워둔 버스의 집회 방해에 대해선 “집회 방해 논란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회 차량이 차량 통행을 막고 있는 것을 그대로 둘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