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정몽열 KCC건설 사장이 비상장 계열사의 등기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22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열 KCC건설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15일 ‘KCC자원개발’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났다.

▲ 정몽열 KCC건설 사장.
회사 측은 “책임경영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등기임원에서 사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사장이 이름을 뺀 회사가 예사롭지 않다. 그동안 ‘일감몰아주기’와 ‘오너 일가의 부 축적을 위한 수단’ 등으로 항상 도마 위에 올랐던 기업이기 때문.

정 사장이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KCC자원개발’은 1990년 12월 설립된 고려시리카가 전신(前身)으로, 현재 경기도 가평과 강원도 영월에 사업장을 두고 유리의 주원료인 규사·백운석·카이스마트 등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다.

이곳에서 선별된 고품질 규사는 KCC에서 생산하는 유리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KCC자원개발에서 생산하는 광물들은 거의 대부분 모회사인 KCC에 공급하고 있다. 2012년 기준, 전체 매출(333억원)에서 KCC가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이를 정도다.

◇ 오너 일가의 회사  ‘KCC자원개발’

이 회사의 지분 관계를 살펴보면 더 흥미롭다.

KCC자원개발의 최대주주는 모회사인 KCC(60%)다. 그 외 40%는 오너 일가가 보유하고 있다. 정상영(1.263%) KCC 명예회장을 비롯해 그의 세 아들인 정몽진(38.6%) KCC 회장, 정몽익(0.1%) KCC 사장, 정몽열(0.04%) KCC건설 사장 등이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KCC자원개발의 최대주주인 KCC의 지분을 정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어 이 회사는 사실상 정씨 일가의 개인회사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외부에서는 KCC 오너 일가가 비상장 계열사인 ‘KCC자원개발’에 일감을 몰아주고, 이를 통해 오너 일가의 배를 불리고 있다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실제 KCC자원개발은 다음달 14일부터 시행예정인 일감 규제 대상에 올라 있다. 일감 규제 대상은 총수일가 지분율이 20% 이상(상장사 30%), 내부거래액이 매출액의 12% 이상(거래액 200억원 이상)인 경우가 해당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정몽열 KCC건설 사장이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것이 KCC자원개발의 이 같은 상황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사실 KCC건설과 KCC자원개발은 거래관계가 거의 없다. 게다가 정 사장의 지분도 0.036%에 지나치 않는다. 가장 확실한 연결고리라면 정 사장이 KCC자원개발의 ‘등기임원’이라는 점이다. 또한 KCC 오너 일가 중 KCC자원개발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정 사장이 유일하다.

등기이사는 기업이 민형사상 또는 상법상의 법률적 판단을 받아야 할 경우, 1차적인 책임이 있는 자리다. 기업의 투자 및 인수합병 등 경영활동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을 하는 이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특히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를 이사회에서 승인하는 것을 감안하면 총수 일가 등기임원들은 바로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 사장으로선 KCC자원개발에 대한 지분이 0.036% 뿐이지만, 등기이사로서의 자격이 족쇄 혹은 부담으로 느껴졌을 가능성이 적지 않았을 것이란 얘기다.

▲ KCC건설.
◇ 석연찮은 등기임원 사퇴

무엇보다 정몽열 사장 입장에선 KCC자원개발과 관련, 광업권 헐값 매입 의혹이 여전히 꼬리표처럼 따라 붙고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한국증권신문’ 보도에 따르면 KCC자원개발은 강원 영월군 북면 소재지 석회석 광업권을 지난 1995년 1월 한일석회제조(주)로부터 매입한 뒤, 2000년 3월 14일 정몽열 KCC건설 사장에게 매각했다. 이 회사의 주력사업에 필요한 석회석 광산의 광업권을 오너일가에게 ‘고스란히’ 넘긴 것인데, 당시 정 사장은 KCC자원개발로부터 당시 광업권을 800여만원에 취득한 것으로 알려진다.

해당 광업권은 70년대 후반 당시 2억원의 가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2000년, KCC자원개발은 수억원을 호가하던 이 광업권을 무려 1억9,000만원 넘는 손해를 보면서까지 정 사장에게 넘긴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KCC자원개발은 이후에도 정 사장에게 ‘조광료’ 명목으로 2003년 1억8,819만9,000원의 광업권 사용료를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3억~7억원에 이르기까지 지난  10여년 동안 수십억에 달하는 비용을 지급했다.

결국 정 사장의 부 축적에 일조하기 위해 KCC자원개발이 필요한 광업권을 넘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경제시민단체에서는 이를 ‘회사 기회 유용’이라고 꼬집는다. 

사정이 이쯤되다 보니, 정 사장의 등기임원 사퇴를 단순히 ‘책임경영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KCC건설 측은 “KCC건설은 KCC자원개발과 거래가 전무하며, 정몽열 사장의 지분은 약 0.04%로 미미한 수준”이라면서 “이번 등기이사 사임은 단지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기기 위한 것으로, KCC자원개발의 일감몰아주기 논란 등의 문제와는 전혀 무관하다. 특이 히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경우 ‘특수관계인’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상황으로, 정 사장의 등기임원 사임과는 전혀 무관한 상황”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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