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제작된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기자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이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져서 개봉할 수 있을까’였다.

얼마 전 인터뷰 차 만났던 정애정 씨(삼성 백혈병 피해자 고(故) 황민웅 씨 유가족)도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룬 영화가 쉽게 만들어질 거라고는 아마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영화가 만들어졌다.

팟캐스트 방송과 몇몇 언론을 통해 제작 단계에서부터 알려졌듯이 이 영화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다.

출발은 역시 영화 속 주인공인 실존 인물 황상기 씨(삼성 백혈병 피해자 고(故) 황유미 씨 아버지)였다. 영화 제목처럼 그는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6년 넘게 외롭고 긴 싸움을 해왔고, 마침내 산재 판정을 받아냈다. 오직 딸의 억울한 죽음을 풀어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영화를 연출한 김태윤 감독에게 이어졌다. 아버지, 그리고 가족의 슬프고도 따뜻한 이야기가 김 감독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렇게 현실 속 이야기는 영화로 재탄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화는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스텝과 배우, 그리고 투자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많은 이들의 마음이 모여들었다. 영화의 취지를 들은 스텝들은 기꺼이 함께하기로 하겠다고 나섰다. 얼마든지 다른 영화에 참여해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이들은 뜻 깊은 일에 의기투합했다.

물론 중간에 헝클어진 일도 없지 않았지만 배우들 역시 대부분 시나리오를 읽고 흔쾌히 출연을 약속했다. 그것도 ‘노개런티’로 말이다. 주인공 박철민의 경우엔 “아빠, 이거 꼭 해야돼”라고 말한 딸의 말이 가장 컸다고 한다. 그의 딸은 숨진 고 황유미 씨와 비슷한 또래다.

 ▲아주 특별한 VIP 시사회에 참석한 관객들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모습.
무엇보다 현실적인 문제였던 투자금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채워졌다. 영화 제작 소식을 들은 시민들이 한푼 두푼 제작 두레에 참여한 것이다. 심지어 적금과 만기보험금, 결혼자금을 투자금으로 들고 온 이들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지금 ‘또 하나의 벽’에 부딪혀있다. 많이 알려진 ‘상영관’ 문제다.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 8일째인 지난 13일 관객 25만명을 돌파했다. 턱없이 부족한 스크린과 상영관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당초 주요 멀티플렉스 극장들은 내부 시스템에 의해 상영관을 배정한다며 ‘외압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영화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영관은 요지부동이다. 예매율 3위, 관객수 4위, 좌석점유율 1위를 차지했지만 스크린 수는 꾸준히 9위를 유지했다.

독립영화 극장이 아닌 이상 극장은 가장 먼저 수익을 추구한다. 오히려 과하게 수익만 쫓아서 문제일 때가 많은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수익을 포기하고 있다. 여전히 극장들은 내부 시스템을 운운하고 있는데, 만약 그렇다 해도 이건 배임이다.

지난 13일 신작들이 대거 개봉하면서 ‘또 하나의 약속’은 정말로 위기를 맞고 있다. 극장들에겐 좋은 구실이 생긴 셈이다. 어쩌면 이날만 기다리며 시간끌기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약속’의 엔딩크레딧에는 1만 후원자의 이름이 먼저 등장한다. 이 영화는 이들 후원자들과 영화를 기다린 사람들, 여러 스텝과 배우, 그리고 황상기 씨와 고(故) 황유미 씨의 마음이 모아져 완성됐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연기처럼 흩어지기엔 너무나 ‘위대한’ 영화다.

‘또 하나의 약속’이 지켜지는 곳, 그곳에 ‘또 하나의 가족’도 있지 않을까.

 ▲‘또 하나의 약속’ 제작진과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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