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을 방문할 때마다 절감했던 건 평양과 지방 사이의 엄청난 격차다. 사회주의 건설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평양의 대형 건축물과 과도하게 넓은 도로 등에 비해 지방은 도 소재지나 제법 규모 있는 지역도 변변한 시설조차 갖추지 못한 곳이 적지 않다.

평양 내에서도 중심인 중구역이나 몇몇 거점 개발지역 외에는 시골이나 다름없다.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만 외곽으로 나가면 만경대구역 등에 펼쳐지는 빈한한 북한 경제의 실상과 만날 수 있다. 평양은 체제선전을 위한 ’쇼윈도 도시‘란 느낌을 갖게 한다. 살림살이도 크게 차이가 나는 모습을 보인다. 북한이 2008년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실시한 인구센서스 결과를 보면 평양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658∼2,715달러로 황해남도(719∼1,213달러)에 비해 최대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물론 도농 간 격차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부분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경우 그 정도가 심한데다 김정은 체제 들어와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직후부터 평양 건설에 역량을 집중하며 과학자거리 등의 이름을 붙여 권력 핵심 지지층에게 아파트와 고급형 빌라를 나눠주고 환심을 사는 데 중점을 뒀다. 북한의 간판급 아나운서인 이춘희가 보통강 다락식 주택구라 불리는 집의 입사증(입주증서)을 받아들고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둘러보는 장면은 이를 잘 보여준다.

김정은 위원장은 뉴타운 형태의 몇몇 거점을 개발하는 사업을 벌여 초고층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기도 했다. 날림 건축으로 인해 건물이 붕괴하는 바람에 막 아파트에 입주한 주민들이 사망하는 참사를 빚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북한의 선전화보에 등장하는 이곳의 야경은 네온사인에 화려한 불빛으로 장식돼 어느 선진국의 도시에 와있는 듯 착각을 들게 할 정도다.

북한은 평양에 그럴듯한 건물이나 시설을 지은 뒤 이를 각 지방에도 본보기를 따라짓는 방식으로 확산시키는 정책을 취해왔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의 주요 건축 사업이나 건설 현장에 나와 연설을 할 때면 어김없이 “지방에도 이런 시설을 지어 인민생활 발전에 이바지 하도록 하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게 뜻대로 될 턱이 없다.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 입장에서 건설·건축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이런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 김정은 위원장이 지시한 사업도 제대로 추진되지 않는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가 막 번지기 시작한 2020년 3월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에도 번듯한 종합병원이 있어야 한다“며 착공식에서 첫 삽을 떴던 평양종합병원 건설이 대표적이다. 그해 10월 병원을 완공하라는 지시에도 불구하고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최고지도자가 지시한 이른바 ‘1호 사업’이 차질을 빚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그만큼 어렵고 힘들다는 얘기다.

지방은 지방대로 문제다. 관영TV나 선전매체에 드러나는 휘황찬란한 평양의 모습과 지방의 실정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지방 사람들의 소원은 평양에 살아보는 것이 됐고, 이게 여의치 않다보니 평양구경 한 번 하는 게 일생의 낙이 됐다. 도농 간 격차는 자연스레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을 보였다.

북한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나서 ‘지역 간 균형발전’을 촉구하고 나선 건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노동신문은 9월 29일자 1면 사설에서 “우리에게는 특정한 어느 한 부문이 100m 앞서나가는 것보다 전반이 다 같이 손잡고 10m 전진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역과 부문, 단위들의 균형적인 발전을 보장하자면 일꾼(북한에선 간부를 의미)들이 비상한 목표를 내세우고 의미 있는 성과, 뚜렷한 진일보를 이룩해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이런 북한의 프로파간다가 현실화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지방 발전을 위한 건설 사업은커녕 평양 발전을 꾀하기도 쉽지 않은 국면이란 점에서다. 무엇보다 식량조차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만성적인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는 건 물론이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고삐가 늦춰질 기미가 없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이후 핵과 미사일에 올인했다. 6차례의 핵 실험 중 4차례가 김정은 체제 들어 이뤄졌다. 올 들어 잇단 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선 건 물론이고 9월 25일부터 보름간에 걸쳐 이른바 전술핵 운용훈련을 내세운 연쇄 도발이 이뤄졌다. 7차 핵실험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한국과 국제사회는 전례 없는 수준의 대북제재를 경고하고 나섰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에 진입한 국면인데다 전술핵 사용을 위한 교리까지 지난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통과시킨 김정은 위원장이지만 경제는 만신창이 상태다. 특히 민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고민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평양에서도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긴급조달을 위한 비상조치를 취해야 했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 등은 북한 인구의 40%인 1,100만 여명이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자체적인 역량으로 평양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이루고 주민들의 먹는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보다 바람직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실정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는 난망해 보인다. 무엇보다 핵과 미사일에 체제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상황에서 민생 문제를 챙긴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의 건축·건설이나 인민생활을 발전시키기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세워 이행한다는 건 더 그렇다.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핵과 미사일에 매달려 체제의 파국을 향해 내달릴 것이냐 아니면 비핵화를 통한 체제 생존을 꾀할 것이냐 하는 마지막 갈림길에 북한은 서 있기 때문이다.

핵에 대한 집착만 버린다면 많은 기회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올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담대한 구상’에는 대북 인프라 지원 같은 프로그램이 담겨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 다를 게 없다는 프레임에 갇혀 단박에 걷어찰 게 아니라 한 번은 찬찬히 살펴보고 설명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현실성 없는 평양-지방 발전에서 벗어나 한반도 균형발전을 위한 안목에 눈뜰 수 있다.

구 소련이 수 만개의 핵탄두를 갖고도 왜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는지 김정은 위원장은 심사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핵은 체제를 지켜주는 수호신이 될 수 없고, 결국 중요한 건 경제라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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