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 지역에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있다 . /뉴시스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 지역에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3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국화꽃 등이 놓여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핼로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밤, 서울 이태원 거리에서 일어난 사고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참사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는 1일 기준 155명이다. 서울 거리 한복판에서 발생한 참사는 국민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 주최 측 없는 행사의 안전관리 매뉴얼 부재

“모든 국민은 안전할 권리가 있다.” 재난및안전관리기본법 제7조에 의해 선포된 안전관리헌장 서문에 등장하는 문구 중 하나다. 안전관리헌장은 2004년 정부와 국민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협력해 안전한 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천강령이다. 

지난해 3월 행정안정부가 발표한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 첫 페이지엔 안전관리헌장이 제일 먼저 담겼다. 총 다섯 개의 실천강령 중 두번째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민의 안전기본권을 보장하는 안전종합대책을 수립하고, 안전을 위한 투자에 최우선의 노력을 하며 어린이, 장애인, 노약자는 특별히 배려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이태원 참사 현장에선 국민의 안전기본권이 보장되지 못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음에도 뚜렷한 주최 측이 없다는 이유로 세밀한 안전관리 대책 수립 및 인파 통제 관리 절차는 없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지자체단체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축제를 개최할 시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그 밖에 주최 측이 개최하는 지역 축제 역시 안전관리에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 

지난해 발표된 행안부 ‘지역축제 안전관리 매뉴얼’에는 축제기간 중 순간 최대 관람객이 1,000명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축제에 대해 중앙행정기관의 장·지방자치단체의 장·민간 등이 안전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심의를 받은 뒤 축제를 진행해야 한다는 지침이 담겼다. 혼잡사고 등 안전사고 발생에 대비 단계별 조치계획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해당 안전관리매뉴얼은 참사 당일, 적용되지 않았다. 뚜렷한 주최 측 없이 상인 및 시민들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일어난 행사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날 이태원에는 최소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다. 

대규모 인파에 따른 안전사고 위험이 존재했지만 이를 예방할 매뉴얼은 부재했다. 이 때문에 이번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안전관리 매뉴얼 부재’가 지목되고 있다. 아울러 행정당국 및 지자체, 경찰당국의 안일한 행정에 대한 책임론도 부상하고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정부, 지자체, 시민 모두 엄중하게 받아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하성 교수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우리 사회가) 군중 밀집에 따른 사고에 대한 위험성 인식이 낮았다. 과거 몇 차례 사고가 있었지만 자주 일어난 일이 아니다보니 많은 인파가 몰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인식이 부재했다. 관련 대처법이나 시스템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참사는 누가 한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정부는 안전대책 매뉴얼 마련이 미비했고 지자체는 안전관리 점검 및 감독을 제대로 못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시민들도 질서 유지에 있어 높은 인식을 가졌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도 안전관리대책을 마련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공 교수는 “주최자가 없지만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행사가 있는지를 점검하고 관련 법 정비를 통해 안전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 안전관리 대책·시민 안전교육 함양 필요 

재난안전문자 활용 체제 점검도 필요하다고 지목했다. 서울시는 참사 당일인 지난달 29일 오후 11시 56분께 ‘용산구 이태원 해밀톤호텔 앞 긴급사고로 현재 교통통제 중. 차량 우회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재난안전문자를 보냈다. 사고가 발생한 지 1시간 40분이 지난 뒤였다. 뒷북 재난안전문자 발송이라는 지적이 쏟아진 이유다.

사고 발생 전에 재난문자를 활용해 시민들에게 위험성과 행동요령을 미리 알렸다면 사고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공 교수는 분석했다.

여기에 인파 혼잡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시민들의 안전의식 함양과 교육 등도 필요하다고 봤다. 안전 질서가 확립되기 위해선 관련 제도 정비 뿐 아니라, 시민들의 참여가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안전관리헌장 실천강령엔 “모든 국민은 가정, 마을, 학교, 직장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안전수칙을 준수하고 안전 생활을 적극 실천한다”는 내용이 첫 번째로 등장한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문화가 성립되려면 시민 스스로 철저한 안전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말이다.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놓은 국화꽃이 놓여 있다. /뉴시스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놓은 국화꽃이 놓여 있다. /뉴시스

그렇다면 군중이 몰려 안전사고 위험이 있을 시 시민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공 교수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발표한 내용을 참고삼아 △우선 두 손을 가슴 앞에 두고 다리를 단단히 고정하기 △군중의 힘에 저항하지 말기 △군중의 힘이 소강상태가 됐을 때 대각선으로 파고들어 가장자리로 향하기 △벽에 도달했다면 기둥 등을 잡고 두 다리로 버티려 노력하기 △쓰러졌다면 몸을 공처럼 말아 보호한 뒤 가급적 빨리 일어나기 등을 대처법으로 제시했다.

◇ “당신의 잘못이 아니예요” 

이번 참사에 따른 심리적 트라우마 극복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과제다. 우선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을 피해자 유가족과 주변인, 참사 생존자의 트라우마 회복을 위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 인근에 서울시통합심리지원단의 심리지원 현장상담소가 운영되고 있다. /뉴시스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 인근에 서울시통합심리지원단의 심리지원 현장상담소가 운영되고 있다. /뉴시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지난달 30일 성명서를 통해 “대규모의 사망과 부상이 발생한 재난 사고 피해자의 치료, 해당 지역의 안전 확보 등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특히 중요한 것은 생존자와 유가족, 목격자, 그 외 관련된 많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마음의 고통,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생존자는 참사 후 불안과 공포, 공황, 우울, 무력감, 분노, 해리증상 등 트라우마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며 “고통이 심하고 일상생활이 힘들다면 즉시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유가족은 원망과 분노, 죄책감에 휩싸일 수 있다”며 “갑작스러운 사고와 죽음이 고인의 잘못도, 나의 잘못도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주위 사람들은 생존자와 유가족을 혐오와 비난으로부터 보호해줘야 한다”고 짚었다. 아울러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진심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지지와 위로가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마음 안정화 기법으로 △심호흡 △복식호흡 △착지법 △나비포옹법을 제시했다. 이 중 나비포옹법은 갑자기 긴장돼 가슴이 두근대거나 괴로운 장면이 떠오를 때, 자신의 몸을 좌우로 두드려 주고 ‘셀프 토닥토닥’ 하면서 스스로 안심시켜주는 방법이다.

정부는 유가족과 부상자, 목격자 등을 위한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참사와 관련된 정신심리 상담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상담 전화(1577-0199)를 통해 받을 수 있다. 

이번 참사에 일반 시민들 역시 큰 심리적 충격을 받았다. 우울감 등 심리적 고통이 느껴진다면 참지 말고 심리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시사위크>는 이번 참사로 세상을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 이번 참사 관련해 심리적 고통이 있는 분들은 전문가와 상담을 받으세요. 심리 지원 핫라인 전화☎(1577-0199)를 통해 상담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 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근거자료 및 출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2021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
2021.03.09 행정안전부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 대응을 위한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성명서
2022.10.30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안정관리헌장
2014.02.13. 행정안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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