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1대 국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 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편집자 주]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뉴시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지난 9월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의료계에서 ‘간호법’은 뜨거운 감자다. 대한간호협회 등 단체는 간호 인력의 처우개선 등을 이유로 간호법 제정에 적극 힘을 싣고 있지만, 대한의사협회 등 기관들은 간호법이 의료 환경을 역행한다는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견이 분명하지만 간극이 좁혀지지 않다 보니 양측의 주장은 공전하는 모습이다. 21대 국회 들어서 다시금 탄생한 간호법은 찬반이 맞부딪히며 여전히 멈춰있다.

◇ 계속된 도전… ‘간호법 제정’ 역사

‘간호법 제정’ 시도의 역사는 197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간호협회가 1951년 제정된 의료법이 간호사의 특수성과 독자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간호법을 단독으로 입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 정책간담회 및 공청회를 열고 의견 수렴에 나서는가 하면 ‘간호법 제정을 위한 서명 운동’ 등도 이뤄졌다. 

이러한 노력은 국회의 입법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2005년 김선미 전 열린우리당 의원과 박찬숙 전 한나라당 의원이 차례대로 ‘간호(사)법’을 발의하면서다. 국회에서 첫 논의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졌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해당 법안들은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폐기 수순을 밟았다. 20대 국회에서도 다시 한번 논의가 진행됐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김상희 당시 민주당 의원과 김세연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간호‧조산법안’과 ‘간호법안’은 상임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멈췄던 논의는 21대 국회에서 다시 시작됐다. 코로나19 등의 상황으로 의료 환경 개선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는 간호사의 ‘처우′를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특수한 상황’도 국회의 입법 논의를 부추긴 하나의 요인이었다. 당시 여야 3당(민주당, 국민의힘, 국민의당)이 앞다투어 법안을 발의했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 데다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간호법 제정에 힘을 실었다. 이 대표는 지난 9월 2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그는 “간호법 제정은 지난 대선 당시 여야 대선후보의 공통공약”이라며 “국민께 공히 약속한 대선공약은 함께 추진하자”고 강조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상 간호법 입법 시도 / 시사위크
국회의안정보시스템상 간호법 입법 시도 / 시사위크

◇ 21대 국회서 보건복지위 넘었지만 법사위 통과 ‘난항’

21대 국회에 발의된 간호법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과 국민의힘 서정숙‧최연숙(발의 당시 국민의당) 의원이 각각 발의했다. 지난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이 세 법안을 묶은 간호법(대안)이 통과됐다.  

무엇보다 ‘초고령 사회’의 도래 등 간호 서비스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간호 인력의 양성 및 관리를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 법안 발의의 주된 배경이다. 국회 보건복지위 대안의 제안 이유에 따르면 “2026년에는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고령 인구인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숙련된 간호사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대안은 우선 간호사 및 전문 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자격을 각각 규정했다. 아울러 ‘간호사의 업무’도 명확히 규정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간호사는 환자의 간호 요구에 대한 관찰·자료수집·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간호 요구자에 대한 교육 및 상담 △건강증진 활동 기획과 수행 △간호조무사의 업무 보조에 대한 지도 등도 규정에 포함됐다.

간호사의 처우 문제도 다뤄졌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간호인력 확보를 위한 정책·지원을 수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가 하면 △적정 노동시간 확보 △일·가정 양립지원 및 근무환경과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할 권리도 명시했다. 아울러 ‘태움’ 등 문제를 예방하고자 간호사에 대한 인권침해를 금지토록 하는 규정도 마련했다.

물론 입법 과정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이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게 펼쳐지면서다. 특히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대한간호조무사협회, 대한응급구조사협회 등 13개 단체는 ‘간호법 저지 보건복지의료연대’를 결성해 “보건의료질서를 붕괴시키는 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대안 통과를 두고 국민의힘이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라는 점을 이유로 회의장을 이탈하기도 했다. 사실상 여야간 대립 양상을 보인 것이다.

이렇다 보니 6개월 가까이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간호법을 입법한 김민석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 국정감사에서 “최종적으로 본회의까지 의결될 수 있도록 구체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거자료 및 출처
국회의안정보시스템 - 간호법안(대안)
2022.05.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회입법조사처 <입법과 정책> - 입법공백과 딜레마 : 간호법 제정지연의 분석
2020.08.31. 국회입법조사처
간호법 제정에 관한 검토
2022.03 민주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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