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한 해의 시작을 알리는 꽃은 매화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꽃은 국화라고 말하네. 상강과 입동이 지난 지금도 옥상에 올라가면 국화의 탐스러운 꽃들을 볼 수 있으니 맞는 말일세. 오늘 아침 간밤에 내린 빗물을 흠뻑 머금고 있는 국화들을 보면서 꽃을 좋아하는 친구들 생각을 했네. 그래서 오늘은 국화 이야기일세.

국화는 동양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꽃이네. 국화의 조상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국화에 관한 전설과 관념이 맨 처음 만들어진 곳은 중국일세. 아마 국화의 잎과 꽃에 맺힌 이슬을 먹고 1,700년을 살았다는 주(周)나라 국자동의 전설이 가장 오래된 옛날이야기일 거야. 그는 나중에 이름을 팽조(彭祖)로 바꾸고 술에 국화꽃을 띄워서 국화주도 만들었다고 하네. 재앙을 물리치고 장수하는 비법으로 국화주를 마시는 풍습이 생겨난 것도 그때부터이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노년에도 활력을 잃지 않기 위해 국화주나 국화차를 마시는 걸 보면 국자동 전설이 아주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

국화(菊)는 오래 전부터 죽(竹), 매(梅), 난(蘭)과 함께 사군자의 하나였네. 중국 북송 시대의 유학자 주염계는 <애련설(愛蓮說)>에서 “국화지은일자야(菊花之隱逸者也)”라고 했어. 국화는 군자 중에서도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속세를 떠나 숨어 사는 은일자, 즉‘은둔하는 선비’의 고결한 기개(氣槪)를 가진 꽃이라는 거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원예서인 『양화소록』과 『화암수록』의 저자들인 강희안(姜希顏)과 유박(柳璞)은 소나무, 대나무, 연꽃과 함께 국화를 뛰어난 운치를 가진 1등 식물로 평가했네. 열 가지 꽃을 친구(十友)로 삼았던 중국 송나라 증단백(曾端伯)은 국화를 가우(佳友), 즉 ‘아름다운 벗’이라고 했지. 은일화(隱逸花)나 가우(佳友) 같은 별칭을 알고 국화를 바라보면 꽃이 훨씬 더 친근하게 다가올 걸세.

동서양을 통틀어 국화를 노래한 최초의 시는 중국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이 지은 연작시 「음주(飮酒)」의 다섯 번째 수일 걸세. 특히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採菊東籬下)/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보네(悠然見南山)”라는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구가 매우 유명해. 조선 후기의 화가 겸재 정선은 부채그림인 <동리채국도>와 <유연견남산도>를 그려 제5수를 그림으로 재현하기도 했지. 소나무가 있는 사립문 앞에서 국화를 따다가 남산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를 그린 그림이지. 그 다섯 번째 수 전체를 함께 읽어 보세.

“마을 변두리에 오두막 짓고 살지만/ 수레나 말의 소리 시끄럽지 않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마음이 초연하니 사는 곳이 절로 외지다오/ 동쪽 울타리 아래에서 국화를 따다가 한가로이 남산을 바라보네/ 저녁놀에 산기운은 아름답고/ 날던 새들은 짝지어 돌아오네/ 이 가운데 참뜻이 있으니/ 말하고자 해도 이미 말을 잊었네”

울타리 아래 핀 노란 국화를 따다가 남산을 바라보는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읊어 보게나. 저녁노을로 붉게 물든 하늘에는 밖에 나가 놀다 짝을 지어 집으로 돌아오는 새들이 보이네. 세속적인 욕심 다 버리고 이런 곳에서 국화와 함께 사는 사람에게 수레와 말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겠는가. 마음이 세속에서 멀어지면 어디에서 살든 사는 곳이 절로 외지는 법일세. 그런 사람에게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노년을 아름답게 살다가 저 새들처럼 왔던 곳으로 즐겁게 돌아가는 것밖에. 마지막 두 수는 『장자』의 ‘득의이망언(得意而忘言)’과 비슷한 의미이네. 삶의 참뜻을 알았으니 말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거지. 말이 많은 세상, 그만큼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 드물다는 증거일세.

국화를 길러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국화가 꽃을 피우는 걸 보려면 많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네. 다른 식물들처럼 봄에 푸른 잎은 나오지만, 꽃도 함께 피는 게 아니거든. 여름 내내 뜨거운 땡볕, 천둥 번개와 소나기, 초가을의 풀벌레 등과 놀며 해찰하다가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불고 이슬과 서리가 내리는 늦은 가을이 되어서야 꽃을 피우기 시작하네. 잎이 무성해진 후에도 거의 한 해의 반을 기다려야 꽃을 볼 수 있다는 거지. 반년은 인내와 끈기가 없으면 기다리기 힘든 꽤 긴 세월일세. 그렇게 오랜 기다린 후에 피는 꽃이니 국화를 보면 반갑지 않을 수가 없네.

조선 영조 때의 문신 이정보(李鼎輔, 1693~1766)가 온갖 꽃이 피는 봄을 그냥 보내고 나뭇잎 떨어지고 찬바람이 부는 계절에 꽃을 피우는 국화를 보고 ‘오상고절傲霜高節’이라고 크게 상탄했던 이유를 이제 알 것 같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동풍三月東風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느냐/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

‘서릿발이 심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외로이 지키는 절개’라니… 인생 말년을 사는 우리 노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 아닐까? 오늘 해질녘에는 옥상에 올라가 노란 국화꽃 하나 꺾어 들고 관악산이나 바라봐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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