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연미선 기자  올해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발생한지도 벌써 11개월이 지나가지만 글로벌 공급망 악화의 여파는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는 국내 물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7월까지 가파르게 상승곡선을 그리던 소비자물가지수는 이제야 숨을 돌리는 모양새다.

식품업계에선 원재료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제품 가격인상 행렬이 이어졌다. 지난 8월부터 농심을 필두로 한 가공식품 가격인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를 놓고 소비자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눈초리도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슈링크플레이션 현상까지 등장했다.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은 줄어든다는 뜻의 ‘Shrink’와 지속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의미하는 ‘Inflation(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제품 가격은 유지하는 대신 제품 크기 및 용량을 줄이거나 품질을 낮추어 생산‧판매함으로써 기업이 간접적으로 가격인상 효과를 거두게 되는 것이 슈링크플레이션이다. 경제현상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전략에 가깝다.

최근 국내 식품기업들의 ‘용량 줄이기’가 이어지면서 슈링크플레이션이 화두에 올랐다. 지난달 중순부터 오리온은 초콜릿바 ‘핫브레이크’의 가격(1,000원)을 유지하면서도 용량은 줄여 생산하기 시작했다. 기존 50g에서 45g으로 5g 줄인 수준이다.

앞선 9월에는 농심이 ‘양파링’ 용량을 84g에서 80g으로, ‘오징어집’ 용량을 83g에서 78g으로 줄였다. 마찬가지로 가격은 그대로였다. 같은 달 서울우유협동조합은 토핑 요구르트 ‘비요뜨’의 용량을 143g에서 138g으로 줄였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인플레이션 뒤에 숨은 인플레이션이라고도 불린다. 명시적인 가격 변동과는 다르게 용량을 줄임으로서 실질적인 가격이 오르는 경우 소비자가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편법을 사용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체감이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저항을 피하면서 동시에 가격인상을 이루고자 하는 식품업계에 소비자들은 날선 반응을 보였다.

한 커뮤니티에서 소비자들은 “얼마 전에 과자를 사먹으려다가 아담한 사이즈가 돼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란 적이 있다” “슬쩍 줄여서 못 알아봤다. 꼼수 아닌가”라며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또 다른 커뮤니티에서는 “이 정도면 10g당 가격 표시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씁쓸한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제기되는 ‘꼼수’라는 비판에도 기업에게 지울 수 있는 것은 ‘도덕적 책임’밖에 없다. 공정거래법 제2장 제5조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용역의 대가 즉, 가격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결정 또는 변경하는 행위 등 남용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명시돼있지 않아 적용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식품업계가 우려하는 생산비용 상승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도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또한 일반적인 법감정으로 보아도 슈링크플레이션은 불법적인 행위는 아니다. 다만 소비자가 상대적으로 무감각한 용량을 줄임으로서 가격인상 효과를 얻고자 하는 행위에는 문제가 있다. 소비자에겐 그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생산비용이 올라서 가격을 인상했다면, 생산비가 감소했을 때 가격도 내려야 하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한 번 올라간 가격은 다시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기업은 신중해야 한다. 연이은 가격인상에 소비자 저항을 받을 것 같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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