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는 10만㎢ 남짓의 국토에서 극명하게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사람들이 너무 밀집한데 따른 각종 도시문제가 넘쳐난다. 반면 지방은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드는데 따른 농촌문제가 심각하다. 모두 해결이 쉽지 않은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 수 있는 방안이 있다. 바로 청년들의 귀농이다. 하지만 이 역시 농사는 물론, 여러 사람 사는 문제와 얽혀 복잡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사위크>는 청년 귀농의 해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여기, 그 험로를 걷고 있는 용감한 90년대생 동갑내기 부부의 발자국을 따라 가보자. [편집자주]

많은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마침내 집과 땅을 구할 수 있었다. / 박우주
많은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마침내 집과 땅을 구할 수 있었다. / 박우주

시사위크|청양=박우주  큰 벽에 부딪힌 우리는 먼저 귀농한 분에게 다시 연락했고, 지금 빈집을 구할 수 없는데 방법이 없을지 물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우리의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꿀팁’이 된 답을 들었다. 

“이장님들을 공략하라.”

월요일 아침 일찍 면사무소에 가면 이장님들이 모여 회의할 때가 있다는 말을 들었고 박카스 한 박스를 사서 두 군데 면사무소를 들렀다. 

“이장님들 안녕하세요! 저희가 귀농을 해보고 싶어서 왔는데요. 혹시 주변에 아시는 빈집이나 빈땅 있나요?” 

들은 체도 안하고 가는 분들도 계셨고 “왜 왔냐, 없다”라는 분들도 계셨지만 몇몇 분들은 관심이 있으신 듯 우리를 불렀다. “밥은 먹었어? 일단 밥이나 먹어.”

마침 이날 면사무소 2층에선 잔치를 하고 있었고, 밥을 얻어먹었다. 밥을 다 먹으니 이장님들이 우리를 다시 불렀다. 그리곤 차에 타라고 하셨고, 난생 처음 트럭 옆자리에 앉아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향했다.

빈집이었다.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농사지을 땅도 집 바로 옆 땅 주인이 임대를 놓는다고 하면 그 땅을 쓰면 된다고 하셨다. 곧 전화를 거셨는데 그 땅은 임대 놓을 생각이 없다고 하셨나보다. 그래서 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이번엔 다른 이장님 차를 타고서. 그곳은 집은 굉장히 넓은데 농사지을 땅이 텃밭 수준이었다. 

다시 면사무소로 갔다. 또 다른 이장님이 오셔서 지금 날이 너무 추우니까 일단 바로 옆에 자신의 집이 있으니 그리로 오라 하셨다. 그 이장님 댁에서 약 2시간 정도 설교를 들었다. 대부분 우리를 안쓰럽게 생각하시는 말씀이었다. 집이 너무 따뜻했다. 문득 궁금해 여쭤봤다. 

“이장님, 겨울에 보일러비는 얼마나 나오세요?” 

“한 달에 50만원 넘게 쓰지.” 

충격이었다. 부모님 집에서 먹고 자며 내 돈으로 무언가를 내고 살아 본적이 없었던 우리에겐 너무 큰돈이었다. 

이장님들을 공략하라는 선배 귀농인의 조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꿀팁이 됐다. /박우주
이장님들을 공략하라는 선배 귀농인의 조언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꿀팁이 됐다. /박우주

어쨌든 그렇게 당장은 별다른 소득 없이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혹시 집과 땅이 나오면 꼭 연락을 달라고 말씀드렸다. 며칠 뒤 두 차례 연락이 왔다. 하나는 빈집과 빈땅이 있는데 빈땅은 하우스가 있어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이었다. 다만, 하우스 시설이 돼있다 보니 임대료가 비쌌다. 

다른 하나는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주셨고, 직접 가서 집과 땅을 봤다. 문이 닫혀있어서 같이 보내준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더니 한 어르신이 오셨다. 이 분은 유 선생님으로, 우리의 은인 중 한 분이다. 어르신께선 대문을 열어주시곤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셨다. 몇 년 전까지 누가 살았는데 이제는 안 산다고 하셨다. 

겉으로는 외양간 같은 곳이 있어 허름해보였는데, 집 내부는 완벽했다. 앞서 봤던 빈집들과 달리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었다. 집에서 나가자마자 펼쳐지는 1,000평정도 되는 땅은 농업을 경험하고 수익을 낼 수도 있는 환경이었다. 우리의 상황과 필요에 딱 맞았고, 이곳을 너무나도 원했다.

이곳저것 찾아다니다 너무나도 원하는 집과 땅을 만나게 됐다. /박우주
이곳저것 찾아다니다 너무나도 원하는 집과 땅을 만나게 됐다. /박우주

이 곳은 종중(같은 선조를 둔 후손들의 단체) 땅이고, 종중을 대표하는 분께서 관리를 하고 계셨다. 실제로 시골 땅은 종중 땅이 굉장히 많고, 그렇다보니 쉽게 팔거나 개발하지 않는다. 그 분은 용인에 살고 계셔서 우선 연락을 드려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시간이 남아 그 마을 이장님 댁을 찾아갔다. 1월말이면 농한기라 대부분 집에 계셨다. 이장님 사모님과도 인사를 나눴고, 이날도 약 2시간 동안 설교를 들었다. 동네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는데, 이 마을엔 따뜻한 분들이 많구나 생각했다. 

그동안 여러 시골분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게 많다. 가장 큰 것은 수도권에 살았을 땐 느껴보지 못했던 정이다. 또 몇 십 년을 농사만 지으셨던 분들이라 그런지 심심해하시고, 새로운 것도 좋아하셨다. 그것을 우리가 채워줬기 때문일까. 그 분들과 빠르게 가까워 질 수 있었다. 한편으론 젊은 사람들이 귀농을 한다고 하니 불쌍하게, 또 안타깝게 보시기도 하셨다. 그게 우리에겐 큰 도움이 된 거 같다.

약속된 날, 빈집을 관리하시는 분을 만나기 위해 용인으로 찾아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종중 쪽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오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곤 가장 중요한 임대료를 들었다. 생각보다 비쌌다. 우선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자리를 나섰다.

너무 마음에 드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임대료가 높아서 고민이 컸다. 무엇보다 우리는 당장 수익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아꼈어야 했다. 다시 연락을 드렸다. 말로 하면 조리 있게 할 수 없을 것 같아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다.

농업을 살려보고, 청양을 살려보려고 큰 꿈을 가지고 도전하려고 합니다.

당장 수익이 없어서 말씀하신 보증금과 임대료는 큰 부담이 됩니다.

가격을 조정해주신다면 정말 열심히 해서

잘 살고 청양을 알리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런 내용의 아주 긴 메시지를 진심을 담아 솔직하게 보냈다. 그 분께선 종중 분들과 상의를 해보겠다고 하셨다. 

결과는 보증금이 몇 천에서 몇 백이 됐고, 월세도 아주 저렴하게 낮아졌다. 심지어 처음엔 고칠 게 많을 거라며 1년 치 월세는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진심이 통했다.

계약서를 쓰러 다시 용인을 갔다. 드디어 우리가 살고 농사지을 집과 땅의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게 2018년 2월 초다.

그렇게 우리는 귀농의 첫 과제인 집과 땅을 구했다. 일단 가장 급한 큰 산을 넘은 거다. 그런데 우리에겐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있었다. 바로 결혼이다. 반대가 심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 후 상견례 일정도 잡고, 결혼식 날짜도 잡았다. 순서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부부의 귀농 시작이었다.

박우주·유지현 부부

 

-1990년생 동갑내기

-2018년 서울생활을 접고 결혼과 동시에 청양군으로 귀농

-현재 고추와 구기자를 재배하며 ‘참동애농원’ 운영 중

blog.naver.com/foreveru2u

-유튜브 청양농부참동TV 운영 중 (구독자수 4만)

www.youtube.com/channel/UCx2DtLtS29H4t_FvhAa-v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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