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국가시스템엔 등록되지 않은 존재. 첩보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엔 태어났음에도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들의 존재가 학대피해를 통해서야 뒤늦게 확인되는 일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으론, 출생신고를 하고 싶어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존재한다. 2022년,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출생신고 제도 이대로 괜찮을까.

우리 사회엔 출생등록이 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존재한다. /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사회엔 출생등록이 되지 않아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존재한다. /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사건 1. 같은 아파트단지에 거주하는 이웃주민들에게, 특히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7살 A군은 심히 염려스러운 아이였다. 아직 어린아이임에도 저녁을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때우는가하면 밤늦게까지 혼자 놀곤 했다. 결국 방임 신고가 접수돼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조사 및 조치에 착수했다. 그 집엔 A군말고도 두 돌이 조금 지난 여동생 B양도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집 냉장고에선 남자아이 사체가 발견됐다. B양의 쌍둥이 남매였다.

사건 2. 119로 “아이가 죽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현장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간 경찰과 소방은 8살 여아 C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곳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40대 엄마도 있었다. 40대 엄마는 C양을 살해한 뒤 시신을 일주일 간 방치해뒀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다 결국 119에 신고하고 자신도 생을 마치려 했던 것이다.

◇ 출생신고 제도의 치명적 맹점이 만든 사각지대

엄마가 가해자, 아이가 피해자인 두 비극적인 사건엔 또 다른 중요한 공통점이 존재한다. 숨진 아이들이 모두 세상엔 존재하지만 국가 시스템엔 존재하지 않는 ‘미등록’ 상태였다는 점이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아 공식적인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없었다. 국가 차원에서 이들의 출생이 확인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사망을 통해서였다.

놀랍게도 이 두 사건은 먼 과거가 아닌, 불과 2년여 전에 벌어졌다. 뿐만 아니다. 두 사건 이전과 이후에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이 아동학대 사건 등을 통해 드러나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출생신고가 되지 않으면 보건·의료·교육 등 다방면에서 국가가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것들을 누리기 어렵다. 단적인 예로 학교에 가지 못한다. 자연스레 국가의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가정 등에서 각종 학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아이의 보건·의료·교육 등을 적절히 챙기지 않는 것은 애초부터 ‘방임 학대’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또한 학대 피해가 신속하게 확인돼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 쉽지 않고, 완전히 은폐될 수도 있다.

실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0월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332명의 출생신고가 안 된 아동들이 학대를 당했다. 학대 유형엔 모두 ‘방임’이 포함됐다. 방임학대가 277명, 정서·방임학대가 36명, 신체·방임학대와 신체·정서·방임학대가 각각 9명, 방임·성학대가 1명이었다.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동의 숫자는 그 특성상 정확한 파악 자체가 어렵다. 출생신고를 접수하는 지자체가 부모의 신고 외에 아이의 출생 사실을 확인할 공식적인 방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아이들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인 이유로 제도적 허점을 꼽을 수 있다. 현행법상 출생신고의 의무는 부모에게 있다. 출생한 날로부터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처분이 내려지기도 한다. 8촌 이내의 혈족이나 4촌 이내의 인척인 친족이 출생신고를 대리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부모의 신분증 등을 지참해야 한다는 점에서 출생신고의 주체는 분명 부모다.

이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아이는 사회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주체에 의한 출생신고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 속에,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는 사유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미혼모·미혼부 등의 혼외자녀인 경우가 있다. 아이의 출생 사실이 알려지길 꺼려하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두 사건 역시 피해 아동은 혼외자녀였다.

심지어 출생신고를 간절히 원하지만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미혼부가 친모 없이 출생신고 할 때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은 혼외자녀의 출생신고를 친모가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친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채 어떤 이유에서든 부재할 경우 친부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가 미혼부의 혼외자녀 출생신고를 가능하도록 한 ‘사랑이법’이 2015년 신설됐지만, 여전히 미혼부 혼자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국가가 모르는 아이들의 존재. 2022년에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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